“행정구역 개편의 답안, 여수와 전남 동부에서 찾아라”
1997년 ‘3여(麗) 통합’이끌어낸 여수시, 순천·광양시와 논의 가시화
행정구역개편 논의가 지방 정부와 의회의 주요 관심사로 등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행정구역 개편의지를 밝히고, 이달 초 행정안전부가 자율통합 자치단체에 50억의 특별교부세 등을 지원하는 대책을 발표하면서 그 강도가 거세졌다. 행정구역 통합 논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로, 자율통합 논의에 나선 지역이 두 자리 숫자를 넘는다. 경기도 성남·광주·하남시를 신호로 수원·화성·오산시, 전남 여수·순천·광양시, 경남 창원·마산·진해시 등이 눈에 띈다.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공감보다는 정부와 지자체가 이끄는 상황에서 일부 우려감도 깊어지고 있다. 통합 후 공무원 정원을 10년 동안 보장하기로 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 언저리에서는 통합의 부정적 역효과보다는 긍정적 기능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계획대로 진행되더라도 통합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통합의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이들이라면 과거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다. 1995년 행정구역개편으로 도시와 농촌의 통합으로 경기 평택시·강원 춘천시 등 39개 도농통합시가 탄생했다. 1998년에는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이 합쳐져 여수시가 됐다. 81개 시·군이 합쳐져 새로 탄생한 도농통합시들 중 여수시는 지금도 주목을 받고 있는 도시다. 마침 이달 9일은 12년 전 여수 시민들이 전국 최초의 주민발의를 통해 ‘3여(麗) 통합’을 이끌어 낸 날이다. 1997년 9월9일 주민 합의로, 이듬해 4월 1일 통합시가 출범할 수 있었다.

통합 여수시 출범이  쉽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의 좌절 끝에 이룩한 성과였다.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성숙한 역량은 큰 힘이 됐다. 관 주도의 추진보다 민간 주도 논의의 중요성을 여수의 사례는 보여준다.

3여 통합 운동의 시발은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천 지역의 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여천산업단지의 배후도시 조성보다는 여수시에 편입이 지역발전에 이롭다는 의견이 개진됐다. 1976년부터 여천에 두었던 ‘전남 여천 출장소’가 1986년 여천시로 이름을 달리하면서 통합 논의는 줄어들었다. 1995년 지방자치제의 전면 실시를 앞두고 통합 논의는 다시 급물살을 탔다. 여수시와 여천시, 여천군이 자랑하는 개별 장점인 상업·금융시설과 산업시설, 농어업을 묶을 때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이번에도 상의 등 시민단체와 언론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주민투표에 붙였으나, 좌절만 경험했다. 1994년 3~5월 두 차례 주민 투표에서 여수시에서 97%에 이르는 찬성률을 확보했지만, 여천시(31%)와 여천군(34%)의 찬성률은 극히 낮았다. 지역 고유 명칭 소멸과 흡수통합을 우려한 주민들의 시각이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다가 1997년 율촌산단 조성 등 광양만권 개발 수혜를 인근 순천시나 통합 광양시가 가져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졌다. 출향 인사와 지역 언론계가 통합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상의와 문화계도 힘을 보탰다. 3년 전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여수시가 이번에는 통합 청사를 여천에 두기로 하는 등 양보안을 제시했다. 주민투표법이 제정되지 않은 1997년 당시 3개 시군은 주민투표를 했다. 투표율 45.3%에 찬성률 86.3%로 통합이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도 관은 대폭 양보했고, 민간 부문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초대 통합 여수시장으로 당선된 주승용 의원과 당시 3여 통합을 위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책위원장직이었던 한창진 여수시민협 공동대표의 말은 일치한다.

먼저, 주 의원의 말이다.
“주민들의 이익이 우선이었습니다. 통합 이후 주민들을 만족시키는 일들이 구체적이지 않을 때는 비판은 물론 자리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3여 통합이 안 됐다면 엑스포 유치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만약 2000년 전후에 순천 광양 여수가 통합했더라면 2012년의 엑스포도 중국 상해에 빼앗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대표의 의견도 비슷하다.
“행정통합을 위해서는 시민이 시정의 주체가 돼야 합니다. 각계각층의 시민이 전문성과 관심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제도화가 먼저 필요하지요. 통합 이후에는 가장 낙후된 지역에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3여 통합의 ‘과실’은 튼실했다. 통합 이후 목포와 순천을 많이 앞지르며 전남 제1의 도시가 됐다. 중복 업무와 행사 감소로 예산이 절감됐고, 국고보조금과 시도비 보조금도 크게 늘었다. 여수에 대한 인지도도 상승했다. 통합시 출범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여수엑스포) 개최권 획득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역효과도 만만치 않았다. 예상대로 고유지명을 잃어버린 옛 여천시와 여천군 주민들의 상실감은 크다. 통합 당시 약속과 달리 시청사가 운영되지 않고, 1청사(옛 여천시청)와 2청사(옛 여수시청), 3청사(옛 여천군청)로 흩어져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인구가 적은 옛 여천 지역에 1청사를 두고, 그보다 많은 옛 여수 지역에 2청사가 운영되고 있어 효율성과 행정력 낭비도 만만찮다.

외부의 시선은 여전히 따뜻하다. 청주와 청원, 마산과 창원 등 각 통합 논의를 이어가려는 지역에서는 통합 여수시의 사례가 단골 벤치마킹 소재로 등장한다.

통합 효과를 경험한 여수시는 이제 인근 순천시와 광양시를 묶는 도시통합에 관심을 두고 있다. 3개 도시가 통합되면 인구 72만명의 대도시가 된다.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초특급 도시가 탄생하는 셈이다. 여수시 입장에서는 3여 통합의 긍정적인 효과와 여수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도 인근 도시와 통합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3개 도시 통합 논의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고 있다. 여수는 지역 경쟁력 제고를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며, 순천도 지리적 이점 등을 내세워 적극성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광양시는 도시가 작아 흡수 통합될 수 있다는 주민들의 우려 불식이 우선이다. 해양 관광 도시로 희망을 찾고 있는 여수로서는 각기 교육도시와 공업도시로 입지를 다져온 순천 및 광양과의 통합이 지역의 미래를 밝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