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0년의 선택/공병호 지음/21세기북스/1만원


공병호 박사. 자유주의 경제관을 가진 저술가로 꽤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심오한 이론보다는 다작으로 독자들을 찾고 있다. 기업의 CEO(인티즌)와 자유기업원 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지금처럼 후한 평가를 내릴 수 없는 때도 보냈다. 평범할 정도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그랬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자유주의 저술가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경제 현장과 연구소 현장을 떠나 저술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뒤부터였다. 물론 그는 국내 대표적인 1인 기업을 가진 기업가이기도 하다. 공 박사는 저술활동과 강연 등을 하며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다른 부문은 아웃소싱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를 떠올릴 때는 여전히 저술가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 결코 저술가의 이미지는 경도된 생각이 아니다.


공병호 박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룬다. 직접 공병호 박사를 만나서 물어보았을 때, 그도 이러한 외부의 시선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당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갖고 있는 문화평론가와 언론에 대해서 그도 그 정도 이상의 비판 의식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책에서는 자신을 비판하는 진중권 교수의 논리를 재반박하기도 했다. 물론 독자들이 매번 그의 저서를 기다릴 정도로 일정 정도 이상의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매번 비교적 큰 출판사에서 책을 내놓는다. 대표적인 종합출판사인 <해냄>과 경제경영 책을 주로 내놓는 <21세기북스>가 그의 책이 주로 소통되는 주된 소통 출판사이다.


정리와 독서의 달인
공 박사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물론 나는 그의 끊임없는 탐구욕과 생산성, 특히 광범위한 독서 욕구와 이를 활용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신문의 기사와 졸저에서도 다뤘던 것이다. 많은 이들이 공병호 박사의 영향을 받아 개인의 경쟁력을 기르고,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은 그가 우리 사회에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 역시 공 박사의 글을 읽으면서 크게 감동을 받거나 깊이를 느낀 적은 별로 없다. 오히려 여러 이야기들을 ‘정리해 줘서 고맙다’는 심정이 앞서곤 했다. 어느 출판사의 편집자마저  공 박사는 새로운 이론을 소개하는 게 아니고, 그저 정리해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고 했다. 이 편집자는 물론 정리하는 것으로도 공 박사가 사회에 공헌하는 부분은 넓다고 했다. 나 또한 동의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대선에서 공병호의 힘이 통할까
신간 <한국 10년의 선택>은 좀 더 노골적이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개인적 취향과 사고 지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대선을 불과 두 달도 안 남겨놓은 책에서 이런 책을 내놓는 모습은 어쩌면 당당함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현 정부를 평등좌파로까지 규정하고 '평등좌파'와 '자유우파'의 싸움으로 이번 대선을 규정한 데에 이르러서는 불쾌한 기분을 굳이 감추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현 정부가 평등좌파라는 것에 도통 동의할 수가 없다. FTA를 추진한 현 정부가 좌파라는 것도 그렇고, 양극화를 더욱 부른 이 정부가 평등좌파라니. 공 박사는 개혁과 개방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현 정부의 정책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보인다. 나 또한 현재의 노무현 정부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평등’과 ‘좌파’를 묶어서 현 정부를 규정한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현 정부를 평등좌파라고 규정하는 것은 단어가 주는 인상 때문에 이미지의 효과를 아는 정치인들이 쓰는 표현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참여정부’를 외친 노무현 정부 때문에 ‘참여’라는 좋은 단어의 뜻이 왜곡된 것만큼이나 평등과 좌파의 뜻을 왜곡할 혐의가 다분해 보였다.  


평등우파 자유주의 저술가의 과장?
또 한 부문. 그대로 인용해보자. “역대 지도자들을 보면 임기가 끝나기 전 서둘러 남북정상회담을 여는 경우가 많다. 명분이란 늘 만들게 되는 것이기에, 구국의 결단이며 한반도 평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주장에 여론은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개인적인 영예를 누리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이는 명백한 과장이다.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지금까지 2번밖에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집권 기간에 이뤄졌을 뿐이다. 공 박사의 표현은 국민의 정부 시설에 이뤄진 남북정상회담까지 집권 기간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추진하려했다는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심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2000년 6월은 국민의정부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기도 전이다.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기간을 고려하면 집권 기간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선거 등을 고려해 추진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표현은 피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도덕성 정당성을 이른 대북문제’를 비판하고자 했던 공 박사의 처지에서는 이를 피하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정취적 취향으로 논란 부를 듯
영어 공용화 제안이나 공무원 수 감축, 노동문제에 대한 시각은 철학과 처지에 따라 찬반이 더 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읽는 이들의 정치적 취향에 따라 공 박사의 책은 ‘정치색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한국이 절박한 선택의 기로에 있다’는 그의 주장이 동의와 지지보다는 반발만 불러일으켰다. 그렇다고 많은 독자들의 인기를 끈 그의 전작들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번 책이 유쾌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고 싶을 뿐이다. 여전히 애정은 갖고 있다.


<밑줄 긋기>
p 87

드러커 교수는 미래 창조의 으뜸가는 방법으로 ‘체계적 폐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불필요한 걸림돌이자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진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조직적으로 폐기할 수 있어야 한다.


p 166

언젠가 비행기 안에서 문화재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유홍준 청장을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러저러한 얘기 중에 그는. “과거의 문화재를 보구하고 발굴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군가 저에게 앞으로 이 세대가 후손을 위해 길이길이 남길 문화재보호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가 남길만한 문화재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며 뒷머리를 매만졌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http://merdek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