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시간대였기 때문일까. 활기참보다는 나른함이 가득 묻어났다. 어색했다. 많이 낯설었다. 그러고 보니 실로 오랜만에 서울의 지하철을 탔다. 학창시절에야 지하철이 주요 교통수단이었고, 말레이시아에서도 경전철을 제법 이용했지만 서울의 지하철은 친숙함에서는 꽤 멀리 도망가 있었다. 취직한 뒤부터는 버스를 타거나 손수 운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간혹 바쁜 아침과 저녁 시간에 지하철을 타기는 했어도 낮 시간에 지하철을 탄 기억은 별로 없다. 더욱이 최근 1년 사이에는 가뭇없다.
저녁 시간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만, 쓸쓸함이 전동차를 가득 메웠다. 이럴 때는 전동차에서 상품을 파는 장사치라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이 품어내는 소리와 열기가 이 ‘축 가라앉은 분위기’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말레이시아의 경전철이 오히려 그리웠다. 열대의 나라인데도 그곳은 오늘 내가 경험한 것과 같은 분위기는 풍기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내 경험치 내에서는. 그래서 잠시 슬픔이 밀려들었다. 전화하는 소리마저도 이날은 들리지 않았다. 덕분에 고요함 대신 스산함이 또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세 번째 역을 지나면서였다. 더욱 나를 슬프게 만든 장면이 연이어 펼쳐졌다. 마치 무언극 시리즈처럼. 주인공은 나이 70대 후반은 족히 돼 보이는 어르신과 몸이 불편한 아주머니의 간절한 요구를 애써 외면한 젊은 승객들이었다. 의지도 없고 여유도 없는 젊은 승객들을 보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심지어 경로석에 앉아있던 20대 학생은 가방을 올려놓고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자리 양보를 말하는 할아버지의 청을 못 들은 체 하고 있었다. 여러 명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서야 그는 경로석을 떠났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중년층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석에 앉아있는 어른들은 몸이 불편한 아주머니가 앉을 자리를 찾는 모양을 보여도 반응이 없었다.
불현듯 이제는 씁쓸한 경험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린 아이를 안고 손잡이를 잡은 채 버스를 탔던 적이 있었다. 자리에 앉은 이들은 거울을 보거나 휴대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 손은 손잡이를, 한 손은 아이를 안고서 흔들리는 버스에서 다리에 힘을 주고 있는 이 불안해하는 30대 아저씨에게는 전혀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무덤덤한 그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 앞 자리에 앉은 그들이 미안해할까’ 염려해서 발자국을 옮겼던 방금 전의 행동에 피식 웃음을 던졌던 때가 떠올랐다.
아주머니가 전동차 출입문을 사이에 둔 좌석 양쪽을 거의 지나칠 때가지도 승객 들은 그 누구도 선뜻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순간 목덜미에서 울컥한 게 느껴졌다. 양보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몫이었다. 파키스탄이나 중동쯤에서 온 듯해 보이는 아저씨가 저 멀리서 일어났다. 그는 양쪽에 7명씩 앉아있는 14명의 승객 중 양보의 미덕을 발휘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앞으로 기회가 생긴다면 서양인으로 보이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더 잘해 줘야겠다.
물론 나는 안다. 이 날 내가 본 장면은 일반적인 서울 지하철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약속 때문에 전동차에서 급하게 내리고 식사를 하면서도 이 유쾌하지 않은 마음은 계속됐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은 버스를 탔다. 오후의 나른함 속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을 먹고서 말이다. 어서 말레이시아로 돌아가고 싶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http://merdek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