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위해서 지난 8일에 실시된 말레이시아 12대 총선 결과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해보도록 하지요. 선거 결과로 UMNO를 비롯한 연립 여당인 BA 진영이 풀이 죽은 것은 확실합니다. 압둘라의 사위로 UMNO 청년위원회 이끌고 있는 카이리 자마루딘(Khairy Jamaluddin)도 “엄청난 패배”라고 인정했을 정도입니다.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카이리의 발언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UMNO를 포함한 연립 여당 BA는 아직도 전국 13개 주 중에서 8개 지방 정부를 장악하고 있기도 합니다.


과반을 넘었지만 여당의 확실한 패배

그런 때문인지 국제부의 동료 기자도 묻더군요. 과반을 훨씬 넘는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패배했다고 여기는 문화가 심히 궁금하다고요. 하지만 독립 이후 헌법 개정이 가능한 의석을 보유했던 연립 여당의 과거 역사와 그러한 정치 문화가 관행적이었던 말레이시아 정치 구조를 생각하면, 여당이 과반 의석을 점유한 것에 만족해야 했던 이번 선거는 확실하게 여당이 패배한 것입니다. 그 여파는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총리에 대한 사임 요구가 이어질 것이고, 무엇보다도 민족에 기반을 둔 정치 체제에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졌지요.


선거 이전에 야당 주정부가 있던 지역은 끌란딴(Kelantan) 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거 이후에는 5곳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기존의 끌란딴에 페낭, 슬랑오르, 페락, 끄다(Penang, Selangor, Perak, Kedah)가 추가됐지요. 그것도 비교적 경제 수준이 높고 주의 영역이 넓은 지역들입니다.


BA는 1969년 인종 폭동 이후 연방 의회 의석의 2/3 이상을 석권하며 늘 여유롭게 정치활동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헌법 개정을 할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이게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불가능한 게 생겼다는 말레이시아 정치권에 ‘상징적 의미’가 자리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압둘라 바다위 총리와 사위가 패배의 단초?

무엇 때문에 여권이 이런 패배를 당한 것일까요. 우선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총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요. 압둘라 총리. 4년 전 그는 만인의 아저씨(Pak Lah)였습니다. 기대도 컸습니다. 개성 강한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에 비해서 다정다감하고, 부정부패 문화를 척결한 지도자로 보였습니다. 마하티르 전 총리가 22년 동안 권좌에 있으면서 고르고 골라 후계자로 낙점한 인물이었으니, 마하티르 지지자들도 그를 좋아했습니다.


총리의 '사위'

그러나 비평가들은 말합니다. 압둘라 총리가 기대를 충족시켜준 분야는 없다고요. 거칠거나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만 하지 않았을 뿐, 그가 부정부패 문화를 없앴다고 믿는 국민들은 없습니다.


대신에 추악한 스캔들들이 이어졌습니다. 스캔들의 맨 머리에는 사위인 카이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3공화국 시절 차지철 경호실장과 5공화국의 장세동 안전기획부장을 그리 불렀나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을 가진 2인자라고요. 그렇습니다. 카이리도 ‘거침없이 날아다니는 사위’로 불릴 만합니다. 비판자들은 카이르를 가리켜 친인척 비리의 종합판으로 규정합니다. “걸어다니며, 말로 다 하며, 자랑이 끊이지 않는” 친인척 비리의 상징으로도 언급됐지요.


마노하란

이를 포함해 여러 이유로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지요. 여당의 선거 패배는 무엇보다도 중국계(전체 인구의 25%)와 인도계(전체 인구의 8%)가 등을 돌린 게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이를 상징하는 인물 하나 언급할까요? 민주행동당(DPA) 후보로 옥중 당선된 이가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인도계 주민에 대한 차별 철폐와 보상 시위를 이끌었던 힌두인권행동대(Hindraf)의 지도자였던 마노하란(Manoharan)이 바로 당사자입니다. 소수 민족의 권익을 위해 싸우다가 국가보안법 위반했다는 정부의 논리를 유권자들이 거부한 것이지요. 더 눈여겨 볼 대목은 인도계인 그가 중국계가 중심이 된 야당 후보로 나서 승리한 것입니다.


소수 민족 집단의 고민과 야당의 유연한 선거 전략

UMNO에 대한 소수 민족들의 지지도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은 몇 년 전부터 스멀스멀 불거져 나왔습니다. 지난 2005년과 2006년 전당대회에서 UMNO 지도자들이 말레이 전통 단도인 ‘끄리스’를 높이 흔들었을 때 소수 민족 집단은 경악했다고 합니다. 여당이 유권자 비율이 높은 말레이 민족 집단에 점수를 따려고 다른 집단을 내팽겨 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집권당이 말레이 민족에 대한 우대만을 주창하자, 소수 민족을 포함한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걱정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 흐름이 이번 유권자 표심에 영향을 어느 정도 미쳤을 것이고요.


말레이 우대 정책에 불만을 가진 소수 민족 출신 유권자들의 불만에다가 최근의 범죄율 상승과 물가 불안, 압둘라 측근들의 전횡, 마하티르 전 총리의 압둘라 총리 불신임 운동 등이 이번 선거의 여당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는 앞서 몇 차례 언급했던 것들입니다.


이런 외부적인 요인 못지않게 이번 선거는 야당의 전략적인 고민이 표현되는 과정이 성공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우선 이슬람당인 PAS가 우선 DAP와 인민정의당(PKR)와 연합하면서 이슬람 색채가 가미된 목소리를 많이 탈색시켰습니다. 중국계와 인도계 유권자의 우려를 인지한 동시에 1990년대 후반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슬람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노력을 많이 한 것이지요.


여당의 ‘실질적인 패배’로 선거 결과가 규정되자, 말레이시아의 정국 혼란은 물론 거리 소요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했던 듯합니다. 민족충돌을 야기했던 1969년 5월의 악몽을 떠올린 것이지요. 그러나 일단은 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휴대전화를 통해서 갈등과 충돌을 유인하는 ‘악성 문자’가 유포되고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합니다.


안와르 이브라힘 부총리 다시 주목받다

안와르와 당선된 그의 딸

그럼 이번 선거의 최대 승리자는 누구일까요? 여러 인물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서 다시 주목받는 이도 있습니다. 바로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입니다. 인민정의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안와르는 딸을 입후보시켜 여당 거물을 이기는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마하티르 전 총리로부터 축출된 안와르는 이번 선거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서방 언론은 안와르의 행보에 주복하고 있습니다.


복권되지 않아 4월까지 정치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안와르 전 부총리는 사실 이미 정치활동을 시작한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여당이 안와르가 복권되기 전에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는 설이 있을 만큼 그에 대한 기대는 남다릅니다. 그가 이끄는 정의당은 실질적 의미에서 말레이시아 최초의 복합 민족으로 구성된 당입니다. 민족이 아닌 이념과 철학에 기반을 둔 당이라는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전문가와 외신 분석 등을 바탕으로 해서 향후 정국 전망을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말레이시아와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만 아니라, 교민들도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보다 냉철하고 차분한 시각이 필요할 때입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도 이 전후무후한 결과 앞에서 당황하고 있다고 하니, 외국인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Merdeka http://merdeka.kr


독립 50년 정치사에서 연립 여당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저조한 실적을 거둔 여파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나 봅니다. 당장 주식시장이 큰 폭의 하락을 경험하고, 정부 정책의 지속성이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예전보다는 힘들다는 시각이 팽배합니다. 건설업도 예외가 아닙니다. 주가가 폭락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던 사업의 타격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선거 결과가 드러난 10일 건설업주인 IJM의 주식은 16% 이상 빠졌습니다. 원자재업체인 Gamuda와 UEM World의 주가는 더 빠졌습니다. 17%와 34% 하락했습니다.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한 경영자는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 건설업체의 주가가 하락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적어도 각종 사업들이 지연될 가능성이 농후해졌습니다. 5개 주의 정부들이 야당 소속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여건이 바뀐 것이지요. 새롭게 등장한 야당은 행정 경험이 별로 없어요. 이들이 행정 업무를 파악할 때까지라도 각종 인허가 사업들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지요. 반면 연방 의회의 영향을 받을 연방 정부야 기존 사업들을 이어갈 수 있겠지요. 특히 대형 사업은 국가적 사업이기에 큰 영향이 없을 것입니다.


12대 총선 이전까지도 해도 건설업종은 초호화 분야였습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경제 활성화 이론을 구축하면서 수십 억 달러의 예산을 활용하기로 했었습니다. 국가적으로 에너지와 관광, 농업의 중심지가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Merdeka http://merdeka.kr


야당의 약진으로 끝난 총선 결과는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총리에 대한 불신임으로 해석되는 모양입니다. 일부 국민들을 중심으로 압둘라 바다위 총리가 사퇴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역대 선거와 달리 여당의 2/3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선거결과가 알려지기 무섭게 이런 소문이 정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치 체제 변동에 대한 기대감도 반영된 소문일 것입니다.


소문에 기름을 부은 사람은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였습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압둘라의 사임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잘못도 인정했습니다. 지난 2003년 자신이 압둘라를 후계자로 지명한 것을 염두에 둔 듯 “확실히 잘못된 선택을 했다”며 “압둘라가 물러나야 할 때”라고 밝혔습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이어 “이제 우리는 매우 약한 정부 여당을 갖게 됐으며, 복합민족 사회에서 약한 정부는 많은 어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5개 주에서 패배한 여당 소식을 전하는 일간지 '우뚜산'

그러나 역시 여당에 흐르는 분위기는 현 총리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기류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압둘라 총리가 어려움에 봉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사임할 가능성은 없다고 총리실은 밝히고 입습니다. 여당 중진과 원로들도 압둘라 총리를 중심으로 난국을 돌파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연립 여당 지도자들은 선거 다음날인 9일 긴급회동을 갖고 여당 단합을 위한 방법과 난국 타개를 위한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압둘라에 대한 지지를 다짐하는 여당 당원들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공보처 차관은 “최고 통치자의 신상에 변화가 없다”며 “총리는 새로운 각료를 지명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는 “어느 특정인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으며, 우리 모두가 집단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립 여당인 국민전선(BN)의 최고위층들도 푸트라자야의 총리 관저에 모여 충성을 맹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같은 흐름을 반영한 듯, 압둘라 총리는 10일 국왕을 찾아보고 새로운 내각 구성을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Merdeka http://merdeka.kr


연립여당인 국민전선(BN) 체제가 들어선 이후 야당이 가장 크게 약진한 선거로 기록될 듯합니다. 말레이시아 12대 총선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BN이 연방 의회 내 다수당으로 남을 것은 확실하지만 북부 5개 주 의회 선거에서 패하는 등 이번 선거에서 대패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당 연립이 과반 확보에는 성공했지만 50년 동안 2/3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 온 관례는 이번 선거에서는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연립 여당 연방의회 2/3 확보 실패
민족 충돌까지 야기했던 1969년 5월 12일 총선에서 여당 연합이었던 동맹당이 패한 이래, 이번 선거는 여당의 가장 큰 패배로 기록될 듯합니다.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총리의 국정 장악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릅니다.


선거 결과가 속속 드러나면서 야당의 약진과 여당의 주도권 약화가 초래됐다는 데에는 이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여당의 일방 독주에 유권자가 등을 돌린 것으로 보입니다.


내각 참여 장관들 다수 고배

BN의 대패를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는 연립 여당에 참여한 14개 정당의 하나인 말레이시아 인도인 의회(MIC) 의장이 패배한 일입니다. 노동부 장관이기도 한 새미 벨루 의장은 지난 34년 동안 자신의 지역구에서 쉽게 당선되곤 했던 거물 정치인이었지만 이번에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내각에 참여했던 다른 세 명의 장관과 10명의 차관 등도 낙마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각료들의 낙마 소식을 전하는 일간지 '버리따 하리안'

반면 야당은 역대 어느 선거에서 보다도 승부욕을 보여주었고, 대안 세력이 되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야당이 눈에 띄는 결과를 얻는 가운데 특히 개혁 야당의 기치를 내건 민주행동당(DAP)의 성과가 두드러집니다. DAP는 이번 선거에서 다국적 기업이 다수 진출해 있는 페낭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페낭 지역이 확실한 변화를 경험할 가능성이 농후해졌습니다.


야당, 페낭과 슬랑오르 등 5개 주의회 장악

이슬람당인 PAS의 성과도 눈에 부십니다. 끌란딴을 다시 거머쥐었고, 끄다와 뻬락에 대한 관할권도 확보했습니다. 4개 주를 휩쓴 것이지요.


DAP와 PAS는 안와르 이브라힘의 정의당(끄아딜안)과 연합해 수도를 품고 있는 슬랑오르에서 세력을 크게 떨쳤습니다.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의 의석은 이 세 정당이 거의 다 휩쓸었습니다. 오래 전 한국에서도 선도였던 수도권의 여당 압승, 여촌야도의 선거결과가 재현된 것이지요. 정의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안와르 이브라힘 전 총리는 한껏 고무된 듯합니다. “내일 우리는 밝은 미래를 건설하기 시작할 것이며, 이는 말레이시아의 새로운 새벽이 될 것이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새 역사" 기염

연방 의회 전체 222 의석 중 BN은 140석, 야당은 82석을 확보했습니다. 해산 직전 19명의 의원만 확보했던 야당으로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린 것입니다. 이 같은 결과로 정국의 혼란과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페낭과 끄다 등 북부 5개 주에서 여당 연합이 몰락해서 여당의 정국 운영에 일정 정도 이상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를 긍정적인 변화의 요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잠재력을 실천해 낸다면 이번 선거 결과가 말레이시아 정치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입니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Merdeka http://merdeka.kr


이번에는 말레이시아 정치사를 짧게 정리해 봅니다. 말레이시아 여야 구조는 14개 정당의 연합인 국민전선(BA)과 3개의 주요 야당인 DAP, PAS, 정의당(Keadilan)을 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초대 총리에서 5대 총리까지.


독립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획득한 것은 1957년 8월 31일. 말레이 반도의 11개 주가 연합해서 독립 국가를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독립 당시 말레이시아는 세계 최대의 주석, 고무 생산국이었습니다.


당시 국명은 말라야(Malaya)였습니다. 독립 당시 끄다(Kedah) 주 왕자였던 뚠꾸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 총리가 첫 내각을 이끌었습니다. 다수 국민들은 초대 총리를 사근사근하고 친절했던 지도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가 재임하던 1963년 9월 16일 말레이 반도의 남단 싱가포르, 보르네오의 사바와 사라왁이 연방에 속하게 됐습니다.


독립 초기의 정치적 갈등과 충돌

연방을 이끌던 뚠꾸 압둘 라만 총리와 연방의 일원이 된 싱가포르의 리콴유는 정치 지향과 개인적 취향 때문에 여러 차례 마찰을 빚었습니다. 복합적인 정치 역학구도를 고려해서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탈퇴해 1965년 8월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사학자들은 싱가포르의 독립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진행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겉모양새야 연방축출이나 연방탈퇴로 포장될 수 있지만, 국민지지를 고려한 정치인들인 뚠구 압둘 라만 총리와 리콴유 모두 싱가포르의 연방 탈퇴를 반겼다는 분석입니다. 연방 차원에서는 혹과 같은 싱가포르가 떨어져나가서 좋고, 리콴유 입장에서는 중국계를 기반으로 했을 때 싱가포르 발전 모델을 장전시킬 확실한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뚠구 압둘 라만의 동맹당은 1969년 5월 12일 선거에서 크게 패하고 맙니다. 그 이튿날 말레이시아 역사가 잊고 싶어 하는 민족 충돌이 발생합니다. 말레이시아는 이를 ‘5-13 사태’로 기억합니다. 말레이와 중국계가 사이에 발생한 유혈 충돌로 인한 피해자의 총수는 여태껏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을 만큼 아픔이 큰 충돌이었습니다.  이 충돌로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연방 의회는 2년 동안 개원을 미루게 됩니다.


뚠구 압둘 라만 총리는 한때 스스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세 명의 총리 중 한 명”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유혈 충돌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됩니다. 후임은 압둘 라작 후세인 부총리였습니다.


통합 강화

압둘 라작 후세인 총리는 동맹당에 속한 3개 정당에다, 지금은 대표적인 야당인 PAS와 협력을 강화합니다. 그리고 1974년 총선에 나섭니다. 이 새로운 연립 여당은 이후 국민전선(BA)으로 이름을 알리며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선거 승리를 바탕으로 압둘 라작 후세인 총리는 팜오일 산업을 적극 장려하는 등 농업지향 정책을 펼쳐 나갑니다. 정력적으로 행정을 챙기던 압둘 라작 후세인 총리는 재임 중이던 1976년 1월 백혈병으로 숨을 거둡니다. 그의 후임자는 후세인 온 부총리였습니다.


BA의 일원이었던 PAS는 후세인 온의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와 결별을 선언하고, PAS에 대한 지지세가 강한 끌란딴( Kelantan) 주 공략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1978년 총선에서 PAS는 참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PAS가 끌란딴을 다시 획득한 것은 12년이 지난 1990년 총선에서였습니다.


마하티르 시대

유혈 혁명과 백혈병 때문에 2인자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던 말레이시아 정치권의 관례는 독립 4반세기가 가까워오던 1981년에도 재현됐습니다. 전임자에게 총리 자리를 넘겨받은 후세인 온 총리는 집권 5년만인 1981년 7월 건강을 이유로 마하티르 모하메드 부총리에게 권한을 넘겨주게 됩니다. 마하티르는 <말레이 딜레마>라는 책에서 초대 총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한 대 집권당 UMNO에서 추방되기도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 개인사를 뒤로 하고 이제 화려하게 UMNO를 이끌게 된 것입니다.


마하티르는 이후 22년 집권 기간 동안 국가 경제를 튼튼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자산업에서 자동차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1차 산업 중심의 말레이시아 경제를 2차 산업과 3차 산업 중심으로 뜯어고쳤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도로와 항만, 공항 등에 이르는 각종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해 말레이시아 발전의 든든한 초석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외환위기와 그 이후

1997년 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가 말레이시아 경제에도 숨통을 쥐었지만, 마하티르 총리는 철저한 자본통제로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갑니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와 달리 자력으로 확실하게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저력을 드러냅니다.


2003년 10월 31일. 마하티르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집니다. 전임자들과 같이 당시 2인자였던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부총리를 후계자로 지명합니다. 마하티르는 퇴임 이후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지만 후임자를 비판하는 등 정치적 발언을 꺼리지 않고 있습니다.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총리는 2004년 3월 실시된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BA가 전체 13개 주 중 12개 주를 거머쥐었으며, 연방의회 의석의 90%를 휩쓸었습니다. 당시 BA의 의석 점유율은 당시 득표율 63.8% 보다 훨씬 높은 것이었습니다.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총리는 2006년 4월 제9차 경제개발 개혁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2006-2010년 5년 동안 달성할 경제발전 청사진이기도 합니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Merdeka http://merdeka.kr



8일. 오늘은 말레이시아 12대 총선 투표일입니다. 연립 여당인 국민전선(BN)의 손쉬운 승리가 점쳐지지만 의석 점유율은 낮아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이번 총선의 핵심 사안들은 점검해 봅니다.


연방 222석, 주 의회 505석 선출

유권자는 1천90만 명으로 2700만 국민 총수에 비해 작은 편입니다.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투표 가능 연령은 21세 이상입니다. 연방의 하원 의석은 222석이며, 동시에 12개 주에서 505석의 주 의원을 선출합니다. 2006년 12월 주 의회 선거를 실시한 사라왁이 제외돼 전체 13개 중 12개 주에서 주 의원을 선출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임기는 5년인데, 총리가 의회 해산권을 갖고 있습니다. 총선의 비용은 2억 링깃으로 한화로는 600억 원에 해당됩니다. 이번 선거를 위해 투입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은 20만 명에 달했습니다.

선거 전날 밤까지 페낭에서 운동에 나선 총리


유권자들은 전국 7950개에 이르는 투표소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 투표를 할 수 있으며, 이른 시간 내에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여당은 이번 의회의 정기 임기보다 1년을 앞당겨 조기총선을 실시했는데, 이는 야당인사인 안와르 이브라힘의 복권 시기인 4월 이전에 선거를 치르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서방언론의 분석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유세전의 논쟁들

이번 유세전에서 여야가 주고받은 논쟁의 얼개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인플레이션. 유류와 식료품 값 상승에 따른 우려감이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항이었다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여러 차례 발표됐습니다. 두 번째는 민족 갈등과 이슬람화. 지난 해 하반기 이후 부쩍 늘어난 반정부 시위 등에서 보듯 말레이계를 제외한 중국계와 화교들은 소수자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말레이시아의 이슬람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민들도 관심이 높은
범죄율 증가. 암팡 등 교민 밀집 지역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노상에서 펼쳐지는 절도 등 범죄에 대한 국민적 우려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불안해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 압둘라 바다위 총리가 2004년 총선 유세에서 부정부패를 크게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실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도 큽니다.


이 때문인지 최근에는 시내 도로에서 시위대를 곧잘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선거 개혁을 주문하고, 고속도로 통행료 인상을 멈추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또한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고 인도계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라는 목소리도 최근 몇 달간 지속적으로 들리는 불만들입니다.

총선 소식을 전하는 현지 언론 우뚜산


주요 정당들

이번 선거에서도 역시 BN의 득세가 예상되는데 BN은 1957년 이후 말레이시아를 통치해 온 14개 정당의 연립체입니다. 여기에는 UMMO와 MCA, MIC 등 민족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들이 다수 가입해 있습니다.

야당으로는 이슬람주의를 부르짖으며 1999년 기세를 높였던
PAS(PAN-MALAYSIAN ISLAMIC PARTY)가 우선 눈에 뜨입니다. 지금도 북부의 끌란딴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정의당(꺼아딜안). 안와르 이브라힘과 그의 아내 완 아지자 완 이스마일이 이끄는 꺼아딜안은 특히 서방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개혁적이며 야당 성향의 중국계들이 지지하는 당은
민주행동당(DAP)입니다. 1966년 창당됐으며, 말레이 우대 정책에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습니다. 1999년 PAS와 연합해 야당 연합인 대안전선(AN)을 태동시키기도 했으나, PAS의 이슬람화에 거부감을 느껴 대안전선은 몇 년 안 돼 유야무야됐습니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Merdeka http://merdeka.kr


소문만 무성했던 말레이시아 총선 일정이 3월 8일로 확정됐지만, 선거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신문에서 정치 신인들과 유력 후보자에 대한 기사게재 양을 늘리고 있지만, 선거 몇 달 전부터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우리와는 많이 다릅니다.


말레이시아 조기 총선 3월 8일

압둘라 바다위 총리가 의회를 해산한 것은 지난 13일. 하루 뒤인 14일 선거관리위원회가 확정해 발표한 총선 일자는 8일. 후보 등록일은 24일까지입니다. 이번 국회의 원래 임기인 2009년 5월에 비해 14개월이 당겨진 것입니다. 차분히 준비한 듯, 역할 분담을 이뤄 다음 일정들이 발표되자 국내 언론보다는 외신들이 조기총선 배경을 약하게나마 분석합니다.


물가인상과 인도계 시위 등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조기총선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카드는 오래 전부터 품속에서 만지작거린 속이 보인 카드였습니다. 4월에 피선거권이 회복되는 야당 인사 안와르 이브라힘의 복귀를 피하려고 선거날짜를 선택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총리가 직접 나서 간단히 반박합니다. “그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나는 안와르 일 자체를 기억 못 한다.” 하지만 총리가 나서서 하는 해명이니, ‘조기총선 택일이 안와르와 직접 관계가 있다’는 말보다 더 선명하게 연관관계를 드러내는 말처럼 보입니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으로 여당 독주 확인될 듯

또한 선거운동 기간이 짧은 것은 공지의 사실입니다. 당연히 정부는 이 같은 의견을 반박합니다. 압둘 라시드 압둘 라흐만 선거관리위원장은 “후보자 등록 당일부터 선거운동을 펼칠 수 있으며, 이는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릴 충분한 시간이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선거운동 기간이 짧을수록 여당과 기존 정치인들에게 유리할 뿐, 야당과 정치신인들에게는 불리한 게 동서고금의 선거원리일 것입니다. 선거관리위원장의 발언이 좀 억지스럽지요. 부재자 투표 부정과 매표 행위 등 선거공정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이 또한 예상대로이지요.


배경은 이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결과는 예전과 비슷할 것입니다. 14개 정당 연합체인 국민전선(BN)이 이번에도 의석의 거의 대부분을 석권할 것이고, 나머지를 DAP와 PAS 등 야당이 나눠가질 것으로 보입니다. 역대 선거에서 말레이시아 유권자들은 단 한 번도 정권교체라는 모험을 시도하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일부에서는 유권자들의 뜻이 왜곡됐고, 집권 여당이 선거 때마다 부정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의혹을 보내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확인불가입니다.


당장 2004년 총선에서도 219개 의석 중 199개 의석이 여당연합의 몫이었으니, 할 말 다했지요. 이번 선거에서도 여당의 독주가 예상되고 있고, 총선은 형식상 요식행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몇 주간은 정국이 좀 소란할 것입니다.


몇 가지 참고사항 더 올립니다.

말레이시아 총선은 최소 5년에 한번씩 열려야 합니다. 총리는 자신의 임기 중에 의회의 해산을 국왕에게 요청하게 됩니다. 의회가 해산되면 60일 이내에 총선을 실시해야 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뽑는 의회의 의석 총수는 222석. 주 의회 의석 총수는 505석입니다. 


여당연합인 국민전선은 14개 정당의 연합체이며 2004년 총선에서는 전체 219석 중 199석을 차지했습니다. 나머지 19석은 야당에, 한 석은 무소속 몫이었습니다. 선거구 조정으로 이번 총선의 의석은 3석 늘어난 222석입니다. 여당 연합 국민전선은 말레이시아 13개 주 중 12개 주를 장악하고 있으며, 야당인 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은 1990년부터 북부 끌라딴의 집권세력입니다.


이번 총선에 등록된 유권자는 1092만 명입니다. 최근 총선의 투표율은 70% 초반 정도였습니다. 선거구제는 소선거구제로 최대 득표자가 당선되는 구조입니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http://merdeka.kr.


말레이시아에서 총선거가 올 연말쯤 실시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말레이시아 중앙선관위장은 차기 총선 일정을 확인해 줄 수는 없지만, 선거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장은 “선거 준비를 하고 있으며, 정당들이 물리적인 준비 시간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버르나마 통신 등 언론들은 달포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치면 총선 실시가 가능할 것이라며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고 있다.


법규에 따라 차기 총선은 2009년 이전에만 실시되면 된다. 그러나 집권당은 경기의 본격적인 하락기 이전에 총선을 실시하고픈 유혹을 느낄 만하다. 그래서 정치분석가들은 압둘라 바다위 총리가 2008년 초 이전에는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는 관측을 오래 전부터 내놓고 있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Merdeka http://www.merdek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