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카이리의 발언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UMNO를 포함한 연립 여당 BA는 아직도 전국 13개 주 중에서 8개 지방 정부를 장악하고 있기도 합니다.
과반을 넘었지만 여당의 확실한 패배
그런 때문인지 국제부의 동료 기자도 묻더군요. 과반을 훨씬 넘는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패배했다고 여기는 문화가 심히 궁금하다고요. 하지만 독립 이후 헌법 개정이 가능한 의석을 보유했던 연립 여당의 과거 역사와 그러한 정치 문화가 관행적이었던 말레이시아 정치 구조를 생각하면, 여당이 과반 의석을 점유한 것에 만족해야 했던 이번 선거는 확실하게 여당이 패배한 것입니다. 그 여파는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총리에 대한 사임 요구가 이어질 것이고, 무엇보다도 민족에 기반을 둔 정치 체제에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졌지요.
선거 이전에 야당 주정부가 있던 지역은 끌란딴(Kelantan) 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거 이후에는 5곳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기존의 끌란딴에 페낭, 슬랑오르, 페락, 끄다(Penang, Selangor, Perak, Kedah)가 추가됐지요. 그것도 비교적 경제 수준이 높고 주의 영역이 넓은 지역들입니다.
BA는 1969년 인종 폭동 이후 연방 의회 의석의 2/3 이상을 석권하며 늘 여유롭게 정치활동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헌법 개정을 할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이게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불가능한 게 생겼다는 말레이시아 정치권에 ‘상징적 의미’가 자리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압둘라 바다위 총리와 사위가 패배의 단초?
무엇 때문에 여권이 이런 패배를 당한 것일까요. 우선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총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요. 압둘라 총리. 4년 전 그는 만인의 아저씨(Pak Lah)였습니다. 기대도 컸습니다. 개성 강한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에 비해서 다정다감하고, 부정부패 문화를 척결한 지도자로 보였습니다. 마하티르 전 총리가 22년 동안 권좌에 있으면서 고르고 골라 후계자로 낙점한 인물이었으니, 마하티르 지지자들도 그를 좋아했습니다.
총리의 '사위'
대신에 추악한 스캔들들이 이어졌습니다. 스캔들의 맨 머리에는 사위인 카이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3공화국 시절 차지철 경호실장과 5공화국의 장세동 안전기획부장을 그리 불렀나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을 가진 2인자라고요. 그렇습니다. 카이리도 ‘거침없이 날아다니는 사위’로 불릴 만합니다. 비판자들은 카이르를 가리켜 친인척 비리의 종합판으로 규정합니다. “걸어다니며, 말로 다 하며, 자랑이 끊이지 않는” 친인척 비리의 상징으로도 언급됐지요.
마노하란
소수 민족 집단의 고민과 야당의 유연한 선거 전략
UMNO에 대한 소수 민족들의 지지도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은 몇 년 전부터 스멀스멀 불거져 나왔습니다. 지난 2005년과 2006년 전당대회에서 UMNO 지도자들이 말레이 전통 단도인 ‘끄리스’를 높이 흔들었을 때 소수 민족 집단은 경악했다고 합니다. 여당이 유권자 비율이 높은 말레이 민족 집단에 점수를 따려고 다른 집단을 내팽겨 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집권당이 말레이 민족에 대한 우대만을 주창하자, 소수 민족을 포함한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걱정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 흐름이 이번 유권자 표심에 영향을 어느 정도 미쳤을 것이고요.
말레이 우대 정책에 불만을 가진 소수 민족 출신 유권자들의 불만에다가 최근의 범죄율 상승과 물가 불안, 압둘라 측근들의 전횡, 마하티르 전 총리의 압둘라 총리 불신임 운동 등이 이번 선거의 여당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는 앞서 몇 차례 언급했던 것들입니다.
이런 외부적인 요인 못지않게 이번 선거는 야당의 전략적인 고민이 표현되는 과정이 성공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우선 이슬람당인 PAS가 우선 DAP와 인민정의당(PKR)와 연합하면서 이슬람 색채가 가미된 목소리를 많이 탈색시켰습니다. 중국계와 인도계 유권자의 우려를 인지한 동시에 1990년대 후반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슬람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노력을 많이 한 것이지요.
여당의 ‘실질적인 패배’로 선거 결과가 규정되자, 말레이시아의 정국 혼란은 물론 거리 소요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했던 듯합니다. 민족충돌을 야기했던 1969년 5월의 악몽을 떠올린 것이지요. 그러나 일단은 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휴대전화를 통해서 갈등과 충돌을 유인하는 ‘악성 문자’가 유포되고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합니다.
안와르 이브라힘 부총리 다시 주목받다

안와르와 당선된 그의 딸
복권되지 않아 4월까지 정치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안와르 전 부총리는 사실 이미 정치활동을 시작한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여당이 안와르가 복권되기 전에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는 설이 있을 만큼 그에 대한 기대는 남다릅니다. 그가 이끄는 정의당은 실질적 의미에서 말레이시아 최초의 복합 민족으로 구성된 당입니다. 민족이 아닌 이념과 철학에 기반을 둔 당이라는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전문가와 외신 분석 등을 바탕으로 해서 향후 정국 전망을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말레이시아와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만 아니라, 교민들도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보다 냉철하고 차분한 시각이 필요할 때입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도 이 전후무후한 결과 앞에서 당황하고 있다고 하니, 외국인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Merdeka http://merdek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