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정치를 만나다/박홍규 지음/이다미디어/1만2000원


이다미디어가 만든 책은 신뢰가 간다. 독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한 권의 책에서 꽤 많은 상식과 이야기를 전해 준다. 이번에 접한 이다미디어 출판사의 책은 <예술, 정치를 만나다>이었다.


저자는 박홍규 영남대 법대 교수이다. 책을 통해 사회 참여를 하는 지식인이다. 법학 관련 책으로 백상예술대상도 받았다. 그러나 법학 교수이지만 수십 권이 넘는 예술 관련 책을 낸 저자로 더 인식된다. 내가 접한 그의 책들도 예술 관련 책들이 다수였다. 법학자가 예술 관련 서적들이라니.


저자는 끼리끼리 문화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

고매해 보이기는 하나 좀 어울리지 않을 성도 싶다. 그러나 그 비밀은 그가 함께 공저한 어느 책을 통해서 풀렸다. 몇 해 전 출간된 <젊은 날의 깨달음>에서 밝힌 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 조정래와 손석춘, 정혜신, 박홍규 등 10명 가까운 공저자들이 젊은 시절을 들려주면서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전한 책이었다.


이 책에서 보면 그는 ‘20세기 감옥에서 꿈꾼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을 규정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연결하는 장소는 1961년 쿠데타 발행 이후 어느 경찰서 뜰이다. 교원노조 사건으로 구속된 아버지가 경찰서 마당에서 강제로 삭발되는 장면과 겹쳐 오른다고 했다. 어린 그가 무엇을 느꼈을까. 짐작 가능한 부분이다.


어린 시절 그는 산골짜기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맘껏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그는 각종 모임과 집단의 유혹에서 벗어나 있다. 친구와 스승들 대신 그림과 음악과 책을 동무삼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끼리끼리 문화’를 배격하는 고독한 지식인의 모습으로 겹쳐진다.


예술로 무지한 나로서는 박 교수의 설명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우선이었다.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면서 따라가는 것마저도 버겁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을 요약하고 이해하는 수밖에.


에필로그 결어 부분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이란 본질적으로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당연히 권력에 대항하게 마련이다. 반면 예술의 거대한 고객은 여전히 국가와 기업이다. 20세기 초의 전위예술이 가졌던 전위성이 없어진 이유도 결국 국가와 기업에 통합되어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이 그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기업에 의한 통합을 거부해야 한다. 또 어떤 권력에 의존해서도 안 된다. 아울러 정치가 낳는 권력이 문제이므로 예술이 투쟁하고 부정해야 할 대상도 권력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라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주장이다. 정치에서 자유로운 예술은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그가 자세히 설명한 루벤스와 괴테, 바그너, 베르디, 피카소, 채플린, 사르트르, 레논도 정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때로는 투쟁하고 무관심했지만, 때로는 체제와 이념의 수호에 이용당했던 게 이들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정치와 예술의 불륜을 넘나들었던 바그너와 정치의식이 뚜렷했던 베르디의 차이를 알게 됐다. 권력과 권위를 거부한 아나키스트와 자유롭게 살대간 존 레논의 삶을 더욱 평가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그나마 그가 언급한 이들은 박 교수가 애정을 갖고 지켜본 인물들일 것이다. 가령 철저히 제국주의의 모습이었던 셰익스피어에 비해서 이들은 평가받고 있는 게 분명할 것이다. 좀 더 예술과 예술인에 관한 책들을 접해 볼 생각이다.


p 34

바로크는 풍요와 활기, 역동, 감정, 장중 등 19세기 낭만주의 이미지의 선구이기도 했다. 곧, 르네상스는 18세기에, 바로크는 19세기에 각각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로 부활한 것이었다.


p 90

괴테는 예술과 정치, 예술가와 정치가로서의 삶을 잘 조화시킨 모범으로 루벤스와 함께 예술사에서 특별한 경우로 자리매김했다. 루벤스와 마찬가지로 괴테도 아주 예외적인 사례임은 물론이다. 괴테가 살았던 18세기에도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권력에 종속된,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p 100

히틀러가 <니벨룽겐의 반지>를 비롯한 바그너 오페라에 열광했고, 그 오페라의 세계를 현실에 실현하고자 일으킨 것이 제2차세계대전이었다는 점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p 136

베르디가 역사와 현실에서 소재를 구한 것과 달리, 바그너는 신화에서 그 소재를 구했다. 또한 베르디가 애국적이고 정치적인 오페라를 낙관주의 입장에서 쓴 것과 달리,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영향을 받은 비관적 허무주의자였다는 점도 두 사람을 구분하게 하는 점이다.


p 237

국가 권력이 강하면 지식인은 약하게 마련이다. 자코뱅이나 나폴레옹의 시대, 또는 볼셰비키와 나치의 시대에 지식인은 정치에 융합하거나 복종하거나 아니면 그 공포 속에 살면서 지하로 숨어들었다. 반면 정치가 약하면 지식인은 두각을 나타내 정치를 장악하기도 했다.


p 273

비틀스는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최고의 인기와 최대의 영향력을 끼쳤고, 특히 레논과 매카트니는 가장 뛰어난 작사와 작곡의 콤비였다. 그 어느 대중예술가의 인기의 상승과 함께 하강을 경험하지만 비틀스는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상승뿐, 하강이 없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http://merdeka.kr


 

마하티르 빈 모하메드 전 총리와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현 총리간의 갈등이 점차 노골화되는 것 같군요. 두 사람간의 공개적인 갈등 표출은 한 달 넘게 계속돼 왔습니다. 주로 마하티르 전 총리가 현 총리를 비판하는 모양을 보이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국영통신사인 Bernama와 일간지들의 보도를 보면, 마하티르는 토요일인 8월 12일에도 바다위 총리를 비판했습니다. 수도 쿠알라룸푸르 외곽 골프장에서 마하티르는 자신을 따르는  UMNO 의원들에게 현 정부의 족벌주의와 부정부패를 언급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후계자로 고른 바다위 총리가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며,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제대로 갈 길을 찾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군요. 또 300만 UMNO 당원에게도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마하티르 전 총리
바다위 현 총리


직전 정부를 비판하며 딛고 올라가는 게 후진국 정치의 전형적인 형태인 것은 사실입니다. 또 퇴임한 통치자가 현직 국가수반을 비판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낯선 것만은 아닙니다. 위 사진에서 누가 더 힘이 있어 보입니까. 물론 일부러 크게 띄운 현 총리이겠지요. 하지만 길게 보면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특히 말레이시아의 상황은 유별나 보입니다. 1981년부터 집권한 마하티르가 2003년 총리직을 물러나면서 바다위를 후계자로 지명했고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기 때문입니다. 바다위는 바로 1949년 UMNO에 입당했으며 20년 이상 장기 집권한 마하티르가 직접 고른 후계자입니다.


둘 사이의 갈등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Mr Clean’의 이미지가 있는 바다위가 오히려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자신의 재임 시절 만들어놓은 국가사업에 바다위 총리가 제동을 걸고 있는 것에 대한 마하티르의 불만이 드러난 것일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연결하는 다리 건설을 취소한 것도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바다위 총리의 사위인 카이리 자말루딘이 ‘ECM Libra Avenue’ 은행의 주식 1002만주를 매각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위의 친구도 같은 주식 1626만주를 매각했습니다.


정황으로 볼 때 마하티르의 바다위 총리 비판은 일정부분은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마하티르는 올해 초 이뤄진 ECM Libra와 Avenue Capital Resources Bhd의 합병에 의구심을 표해왔는데, 바다위의 사위는 2005년 12월에 920만 링깃(약 260만 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집중 매집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바다위의 사위는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했으며 올해 31세로 UMNO의 촉망받는 정치인으로 인정받아왔습니다.


범여권의 이전투구에 대해서 나집 라작 부총리는 “마하티르 전 총리가 현 총리를 실각시키려하고 있다”면서 “전 총리의 행동은 여당을 파괴하는 행위다”고 비판했습니다.
UMNO 내의 최대 계파인 마하티르와 바다위의 갈등의 전개 양식에 따라 말레이시아 정치권의 파고가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bali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