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거주 한국인 가이드 강홍미 씨

“잘츠부르크의 매력은 포용성”

잘츠부르크를 다녀오면서 이곳에 30년 가까이 거주한 한국인 가이드 강홍미(51)씨를 소개받은 건 행운이었다. 그는 한국어와 영어, 오스트리아어로 활동할 수 있는 가이드로 이름이 나 있었다.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교직원으로 일하는 강씨는 “잘츠부르크의 매력은 지속성에 있고,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는 포용성에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한 세대 가까이 고국을 떠난 이의 한국어 실력이 여전해 보인다. “그렇지 않아요. 수십 년이 흘렀고, 그간 한국에 다녀온 게 한 번뿐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새로운 용어를 모르겠어. 1980년대에는 현금지급기라는 단어도 몰랐어요. 인터넷을 모른다는 넷맹이라는 단어도 몰랐는 걸요.”

변치 않은 한국어 실력은 관심과 노력 덕분이었던 것 같다. 한국인 여행자가 오면 모르는 것을 물었고, 인터넷을 통해 고국 소식을 꾸준히 접했다. 인구가 적은 오스트리아가 복지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제가 올 때인 1980년대 초반에는 이곳 사람들이 한국을 전혀 몰랐어요. 이제는 달라요. 저도 감동하는 걸요. 언젠가 고국의 한글 사이트에 접속해서, 오스트리아 연락처를 남겼더니 ‘불편한 게 없느냐’고 인터넷 업체에서 전화가 오는 거예요. 이런 자세로 세계인을 상대로 고객 감동을 불러일으킨다면, 한국에도 수십 개의 ‘잘츠부르크’가 만들어질 겁니다.”

잘츠부르크=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잘츠부르크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를 만나다

게트라이데 거리 예쁜 그림 간판들 눈길
모차르트가 외롭고 힘들 때마다 찾은 곳


잘츠부르크에서 도보 여행자의 발길을 잡는 곳이 게트라이데 거리다. 여행자가 방송국 카메라 기자라면, 이 거리에서 꽤 오랫동안 서성거릴 듯하다. 카페와 음식점, 기념품점 등이 거리의 양쪽을 가득 채웠다. 어느 가게 하나 모나지 않고 아기자기하다. 이곳에서는 눈이 피로하지 않다. 풍경을 보듯 눈이 호사를 누린다. 좁은 골목 사이로 보이는 예쁜 간판은 이곳 걷기 여행의 백미다. 네온사인에 휩싸인 다른 도시의 휘황찬란한 간판과 달리, 소박한 미를 간직하는 이곳이 한없이 정겹다.

◇모차르트 생가.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 잘차흐 강과 게트라이데 거리에서 가까운 이곳에서 살았다.
왜 그럴까. 모나지 않은 점도 좋지만, 글자보다는 그림으로 간판이 만들어진 게 재미있다. 그림으로 만든 간판이라. 오래전 글을 못 읽는 이들을 위해 상징성 강한 그림 간판으로 내건 게 계기가 됐다. 상인들의 프로의식이 이만 하면 어느 군주의 애민정신에도 뒤지지 않는다.

이왕 들어섰으니, 가게의 간판을 쳐다본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주전자 모양의 간판은 무엇을 나타낼까. 이방인 처지에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데 그림을 보고 상상한 그대로다. 주전자와 음료를 파는 가게다. 그렇다면, 가위 모양의 간판은.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 본다. 옷 수선 가게다. 그 옛날 이곳에 들어선 글을 못 읽은 사람은 한없이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당시의 예술가처럼 오늘날의 여행자는 이 거리에서 예술적 의미를 찾아본다. 생활 속에서 구현되는 디자인 예술이 따로 없다. 물론 이곳에는 서민들의 삶도 스며들었을 것이다. 정원의 거리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올 때마다 싫증이 안 난다는 게 이 거리의 장점이다. 수백 년 지난 가게의 간판만 수백 개가 넘지 싶다. 그래도 주의할 게 있다고 한다. 가게의 일부 후예들이 약간은 질 떨어지는 물품을 판매하는 일도 있다는 게 오래된 여행자들의 조언이다.

간판 구경을 마무리할 때쯤 잘츠부르크의 상징인 모차르트의 생가를 접했다. 그의 원래 이름은 테오필루스 모차르트. 그러다가 ‘신의 총아’라는 뜻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로 이름을 바꾼다. 14세 때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여행은 이처럼 한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을 온전히 바꿀 수 있다.

모차르트 생가는 4층짜리 노란색 건물이다. 그가 태어난 때는 1756년 1월 27일. 25세까지 잘츠부르크에 머물렀던 그가 생가에서는 17년을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1917년 국제 모차르테움 협회가 그의 생가를 인수하면서 생가의 기능이 바뀐 것. 1층에서부터 4층까지 곳곳에 그와 가족이 사용한 듯한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의 유물이 보인다. 거장의 체취는 이렇게 후대에 전해진다.

◇그림으로 내건 간판이 아름다운 잘츠부르크의 게트라이데 거리. 아기자기한 간판들이라 자주 쳐다봐도 눈이 피곤하지 않다.
기념관에서는 각종 연주회도 열린다. 그중 7월과 8월의 토요일 밤에 들려주는 ‘더 베스트 오브 모차르트’ 콘서트가 인기 최고라고 한다. 촛불을 켜 놓은 채 듣는 모차르트 음악은 어떤 선율일까. 눈 내리는 겨울의 선율과는 다를 것이다. 오스트리아와 잘츠부르크가 문화 산업의 핵심과 출발지로 삼을 만한 곳이다.

오스트리아의 공적인 기관만 그런 게 아니다. 모차르트 음악의 공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바로 모차르트 효과(모차르트 이펙트)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아이들이 영특해지고, 수리과학 실력이 좋아진다는 믿음 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의 연구이다 보니, 신뢰도도 높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고독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선율을 남긴 것과는 별개로. 그 고독에 생전의 모차르트는 잘자흐 강의 흐르는 물길 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봤다고 한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그가 찾은 곳이 게트라이데 거리였고, 잘자흐 강이었던 셈이다. 35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온 힘을 다해 대작을 만든 과정은 고독에 뿌리를 둔 것인지도 모른다. 그를 느끼고 온 뒤에 듣는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바니’의 선율이 이전과는 다르다.

잘츠부르크=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눈 속에 파묻힌 古都… 중세의 정취 오롯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가는 기차는 빈의 베스트반호프(Westbahnhof 서부역)에서 타게 됐다. 잘츠부르크까지 가는 동안 중간에 내려 여러 도시를 둘러보고 싶은 생각이 간질간질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이라면 중간역에서 내려 곳곳을 둘러본 뒤 다음 기차를 타도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일행에서 홀로 빠져 나와 시간이 한정돼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기대했다. 목적지인 잘츠부르크가 이 아쉬움의 상당 부문을 채워줄 것이라고. 그게 아니라면 고작 하루 일정으로 잘츠부르크행 기차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호헨부르크성에서 내려다보는 잘츠부르크 시내 전경. 하얀 눈이 내리자 천년 고도가 잘차흐 강과 함께 은은한 분위기 속에 잠겨 있다.
폭설로 기차는 출발 시각이 20분 늦춰졌지만, 여행자의 마음은 푸근하다. 차창 밖에 내리는 눈을 보니 동유럽의 겨울이 연상됐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차창 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 내리는 오스트리아 농촌을 쳐다보다가 3시간도 안 돼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미리 약속해 둔 한국인 가이드 강홍미씨가 기다리고 있다. 1983년 한국을 떠나, 4반세기 넘게 잘츠부르크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10명이 안 되는 한국 교민 중의 한 명이다. 잘츠부르크에는 동양인이 별로 없다. 일본과 중국에서 온 이민자들과도 친하게 지낸다고 했다. 한정된 시간을 고려해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오스트리아에 합병되던 1816년 잘츠부르크는 작은 공국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8세기 이후 가톨릭의 대주교와 추기경이 종교와 정치 부문에서 수장 역할을 하면서 가톨릭 문화의 중심지로 역할을 다해왔다. 잘츠부르크의 시작은 기원전 15년 고대 로마 사람들이 정착한 주바움(Juvavum)이란 마을에 두고 있다. 20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다.

눈 속에 파묻힌 잘츠부르크는 유럽에서 가장 변하지 않은 도시처럼 보인다.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 동양의 이방인이 보기에는 한없이 안정돼 있다. 현대의 시간 속에 예전의 공간이 함께하는 듯한 느낌이다. 중세풍을 연상시키는 좁은 거리와 성당, 대학, 가게…. 예쁜 도시다. 체코의 프라하와 함께 잘츠부르크를 ‘북쪽의 로마’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잘츠부르크의 요새라 불리는 호헨부르크성은 걷기에 적당한 경사도를 지녔다. 육중한 문(위)를 열고 들어가면 중세의 모습이 펼쳐진다.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무료해 할 것 같다. 동양에서 온 여행자야 그렇다 치지만 유럽에서 온 관광객도 심심할 수 있다. 이런 느낌을 주는 도시에 해마다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츠부르크에서 오스트리아 남성과 결혼해 자식 둘을 이곳 대학에 보낸 강홍미씨의 설명은 이랬다. “잘츠부르크의 외관은 변하지 않아요. 오래된 간판들, 예술가가 살던 집들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게 이곳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은 까닭은 하루 평균 10회, 1년 평균 4000회 이상의 각종 축제와 행사가 이곳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지요.”

계획하지 않고 방문하면 괜한 수고를 할 가능성이 농후한 다른 지역과 달리, 잘츠부르크는 무작정 방문해도 즐길 게 있다는 이야기다. 콘서트와 음악회 관람은 그 좋은 사례들이다. 18세기 이후 모차르트의 도시로 알려진 곳은 이렇게 특징을 드러낸다. 연중 계속되는 각종 행사는 모차르트 탄생 250년을 기념한 2006년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올해 1월 말에도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 탄생주간 축제’를 열고 있었다. 이 축제는 해마다 2월 초까지 이어지는 음악회다.

그래서일까. 잘츠부르크는 음악의 선율이 흐르는 듯하다. 모차르트가 이곳을 알리기 전에는 소금이 알렸다. 소금(Salz·잘츠)의 성(Burg·부르크)답게 잘츠부르크는 ‘오래된 신선함’을 미덕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소금을 실어 나르는 역할은 한 ‘소금물이 흐르는 강’ 잘차흐 강에도 피아노의 선율을 타고 눈이 내린다. 다리 위로 멀리 성곽인 호헨부르크도 눈에 모습을 감추었다.

400년 넘는 공사로 1400년대에 완성된 오래된 성답게 웅장하다. 맑은 날에는 알프스산맥이 보인다는 설명에 눈 오는 날 굳이 성곽에 올라가 본다. 천년의 고도와 하얀 낭만을 실은 백년설.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마침 성 위로 올라가는 리프트를 가동하지 않고 있었다. 성곽을 찾아 30분 동안 거니는 기쁨을 누렸다. 성 안에는 공무원 신분의 주민 10여명이 거주하면서 업무를 보고 있다고 했다.

◇미라벨 정원의 나무와 건물들도 백설로 외피를 두르고 있다.
높은 성채에서 보니 방금 지나온 미라벨 정원과 안드레 성당이 사이좋게 눈에 들어온다. 궁전을 품에 안은 미라벨 정원은 바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 영화팬의 가슴에 남아 있는 곳이다. 마리아와 아이들이 ‘도레미송’을 부르던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넓은 정원에 성도 보인다. 17세기 잘츠부르크 대주교였던 볼프 디트리히 폰 라이테나우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 알트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여인을 사랑하는 힘이 후대에 이런 화려한 문화를 남긴 것이겠지. 미라벨 정원을 찾았다. 눈 내리는 정원의 언덕에 올라 뷰파인더에 담는다. 그때의 영상이 떠오른다. 마침 빙판길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잔 모래와 자갈을 거리 곳곳에 뿌리는 이가 있다. 제설을 위해서 염화칼슘보다는 자주 이용되는 게 모래와 자갈이라고 한다.

대성당이 있는 쪽은 구시가에서 잘차흐 강 건너편으로 신시가지가 보인다. 그러고 보면 잘차흐 강은 잘츠부르크의 한강이다. 다만 차이점은 신시가지는 우리의 강남이 아니다. 새롭게 들어선 게 아니다. 단지 수백년 전부터 그리 불렀다. 변하지 않는 도시이니, 잘츠부르크에 개발 열풍이 몰아쳤을 리는 없다. 지금도 인구는 16만명 남짓이다. 도심에 자가용이 지나다닐 수 없는 전통을 간직한 잘츠부르크가 그 인구보다 수십 배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이유일 것이다. 잘차흐 강은 하얀 눈발 속에서 지금도 모차르트의 선율을 타고 도시를 나누며 흐르고 있다.

잘츠부르크=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