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동성 비서와 놀아났다’는 여당의 비판에 시달렸던 안와르 이브라힘 PKR 총재. 동성애와 관련해 비서에게 고소됐던 안와르가 혐의를 벗게 됐다. 비서의 ‘은밀한 부위’를 정밀 검사했던 의사의 발언을 통해서다. 이미 인터넷 등으로 밝혀진 일이지만 드디어 공식 확인되면서 보궐선거 당선에 이은 ‘안와르 대세’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4일(목) 모하메드 오스만 압둘 하미드(Mohamed Osman Abdul Hamid)는  동성애 검사와 관련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핵심은 이렇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안와르 무혐의는 사실, 나는 정치적인 성향이 없다. 의사로서 직무를 충실히 했다. 그동안 말레이시아를 떠나 있었던 것은 무수한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권력자와 열혈지지자들의 압박이었을 것임)


고소자인 사이풀(Saiful)은 안와르 유죄를 주장한 이틀 뒤인 6월 28일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의사인 하미드의 의사 소견서가 유출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 혐의가 없다는 보고서 유출과 관련 그는 “소견서가 어떻게 유출됐는지 모른다. 의사로서 양심에 반하는 일은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고소자에게는 민간병원이 아닌 국립병원으로 가서 재검을 받으라는 의견까지 개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소자는 경찰서로 향했고 같은 날 안와르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두 달 넘게 지속된 공방이 마무리된 것은 안와르가 ‘여당을 야당으로 만들겠다’는 시한(9월 16일)을 열흘 남짓 남겨두고서다. 안와르는 의사의 공식 소견으로 1998년에 이어 두 번째로 동성애 파문에 휩싸인 어렵지 않게 ‘늪’에서 빠져나온 셈이다. 동성애가 확인됐으면 그는 꼼짝없이 20년을 감옥에서 보내야할 처지였다. 그는 물론 야당을 탄압하기 위한 정부의 음모였다고 주장한다.


음모였는지 사실이었는지는 당사자를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 것이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http://www.merdeka.kr


 불운한 제 2인자.
촉망받던 권력 서열 2인자에서 남색과 부정부패 혐의로 복역한 뒤 반정부 투사가 된 엘리트. 안와르 이브라힘 전 말레이시아 부총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모하메드 마하티르 전 총리의 총애를 받다가 서구식 자본주의 도입에 적극 나서는 등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용도 폐기됐다.


올해 59세인 안와르 전 부총리는 1999년 남색과 부정부패 혐의로 복역한 뒤, 반정부 투쟁의 기수가 됐다. 한때 말레이시아를 뒤덮었던 ‘레포르마시’(개혁)의 아이콘이 되기도 됐다. 2004년 9월 출소한 뒤 남색 혐의는 벗었으나, 그에게 부정부패 혐의는 벗지 못했다. 그 여파로 2008년 4월까지 참정권의 제한을 받게 됐다. 현 정부가 오는 연말쯤 조기 총선을 강행하면, 현행법 아래에서 안와르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


간헐적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가 자신의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예고하면서 현 정부에 대항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정치 행위를 금지한 정부 조치의 부당함을 지적하고자 올해 안에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안와르 전 부총리는 3월 10일 오는 6월에 있을 ‘말레이시아 정의당’ 총재 경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 정부의 정치활동 금지 조치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사 표시인 셈이다. 한때 자신과 함께 마하티르 이후의 후계자 경쟁을 벌였던 압둘라 바다위가 총리로 재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던진 강수이기도 하다.


그가 간접적으로 출마 의사를 드러내면서 자신의 참정권을 제한한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서 밝힌 견해가 눈길을 끈다. “내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사법권을 이용한 부패 권력의 행태였을 뿐”이라며 “나는 투쟁할 것이고, 나는 현 정권을 무시할 것이다”


박종현 기자의 Truly Asia, 말레이시아 http://merdeka.itviewpoint.com




 



안와르 이브라힘(Anwar Ibrahim), 여당의 2인자였다가 ‘개혁’(Reformasi)을 외치는 시민 행렬을 이끌었던 야당 인사다. 1997-98년 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외환위기 당시, 그 대처 방안을 두고 당시 총리였던 마하티르와 다른 견해를 유지해 서방의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직 총리에게 대항해서 성공할 힘을 그는 갖추지 못했었다.

안와르는 당시 확실하게 2인자로 자리를 잡았다고 섣부른 판단을 내려 마하티르와 구별되는 노선을 취했다가 철저한 정치보복을 당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인근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장기집권자 수하르토 대통령이 1998년 5월 실각하는 것을 보며, 용기를 냈다가 도리어 배척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안와르는 마하티르측의 철저한 보복으로 남색과 부정부패 혐의를 받아 15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다가(남색은 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압둘라 바다위 총리가 집권한 이후인 2004년 석방됐다. 자신과 함께 2인자 경쟁을 펼치기도 했던 바다위 총리가 베푼 정치적 배려의 결과였다.


석방된 이후에도 안와르는 발언권 강한 야당인사의 길을 걸어왔다. 2009년 이전에 실시되는 총선을 앞두고 최근 안와르가 발언권을 높이고 있다. 아내인 아지자 이스마일(Azizah Ismail)이 이끄는 인민정의당(People's Justice Party)의 행사에 참여해 그가 12월 17일 내놓은 일성은 무슬림과 비무슬림간의 갈등 문제였다.


정부의 잘못된 처방으로 무슬림과 비무슬림 모두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했다. 각종 차별을 당하는 비무슬림들은 소외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무슬림들은 무슬림대로 불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무슬림과 비무슬림간의 갈등은 최근 연이어 발생한 인도계 남자 2명의 사망 사건에서 더 커졌다. 유족들이 인정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슬람 법정은 인도계 남자들이 생존 당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고 판결을 내렸다. 유산 문제와 장례 절차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이 판결은 단순히 유족들만의 문제가 아닌 무슬람과 비무슬림간의 논쟁으로 비화됐다. 소수파로서 기독교도와 힌두교들은 불만을 드러냈지만, 종교문제와 인종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금기시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정서상 더 이상 이에 대한 진척이 없었다.


안와르는 이 틈을 비집고, 각종교집단간 혹은 다른 문화집단간에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그의 제안이 당장 효과를 볼 가능성은 없지만, 2009년 실시될 선거를 앞두고 화두 잡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안와르가 야당인사로서 정국을 주도할 제대로 된 아젠다(Agenda)를 지속적으로 찾아내 이끌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은 말레이시아 정국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문이다. balipark <박종현 기자의 Truly ASia, 말레이시아-merdeka.itviewpoint.com>


참고 : Channel News Asia

Anwar Says Ethnic Relations Precarious, Signals Political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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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ALA LUMPUR: Malaysia’s ex-deputy premier Anwar Ibrahim on Sunday sa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