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강의/이영주 지음/더난 출판/1만2000원


이제 독자를 자극하지 않는 책은 설 자리를 잃어버린 것일까. 은은하고 담백한 책을 찾는 독자들이 여전하지만 책의 광고 문구들은 날로 정도를 넘친다. 책 표지부터 볼까. ‘1% 부자들만 아는 부의 법칙을 공개한다’고 한다. 뒤의 표지를 보니 ‘백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부의 법칙이 있다’고 강력한 느낌표(!)를 찍는다. 정말일까? 물론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도 안다. 서로 아는 처지이지만, 책을 만들려니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별로 효과는 없을 것 같다.


이번 주에 나온 신간 ‘부자 강의’를 거칠게 읽어 내려갔다. 오랜만에 접하는 한국 책. 그것도 쉬운 실용서적. 실용서적의 내용은 사실 머리에 잠시 잠깐 남았다가 이내 사라지는 것들이다. 창자를 뒤틀어지게 하거나 가슴을 데우는 그러한 매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실용 서적에서 ‘그대 머문 자리’와 ‘그대 떠난 자리’를 확인할 재간을 아직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부자강의도 그런 책들 중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이런 책들도 오래될 느낌과 순간의 각성은 충분히 제공한다. 그렇기에 독서의 매력이 있다.


내용을 좀 볼까. 얼개들이 대충 들어난다. 중간 제목들이 단순 경쾌하다. 부자강의 1 계획하라, 부자강의 2 분산하라, 부자강의 3 평생소득을 만들어라. 물론 편집자가 만든 문장들이겠지만, 세 문구는 확실하게 머리에 내려앉는다. 영원히 기억될지는 모르지만.


자, 이쯤 되면 이 책의 전체적 맥락과 앞으로 이끌어 갈 내용들이 대충 짐작 가능하다. 목적자금 등 계획 부문을 밝힐 것이고, 분산해야 시장 변동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할 것이고, 평생 소득을 이끌어 낼 장치를 마련하라고 조언할 것이다. 역시나 소제목들은 중간 제목들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례와 논리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글의 전개가 진행된다면 책을 읽는 처지에서 조금 안타까울 수 있다. 반전은 아니더라도 무엇인가 건져 올리면 독서의 느낌은 더 좋아지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는 ‘산’(産)을 건졌다. 157쪽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재산(財産)이라는 한자를 자세히 보면 재물 財자와 낳을 産자로 되어 있다. 재물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것, 영어로 말하자면 Asset이고, 낳을 産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산출물, 즉 Income이다.”


이어지는 169쪽에서 저자는 재산에 대한 개념과 권고 사항을 제시한다.

“개천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처음부터 자연이 만들어 놓은 개천, 즉 ‘산’(産)을 활용하여 욕심 부리지 않고 분수에 맞게 살아온 사람은 적은 산출물에도 기쁨과 만족을 느끼며 평생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남길 것도, 버릴 것도 없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은 이야기다. 이 페이지에서 내 뇌리에 확실한 남을 문구가 다가왔다. 어느 관광 가이드의 말이었다는데, “우리나라의 소는 사람이 키우지만, 뉴질랜드의 소는 자연이 키운다.”이다. 단순하면서도 내용이 있는 명문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아닌 내 가슴에 확실하게 남을 말로 보였다. 사람이 아닌 자연이 키우는 것들을 말레이시아에서도 보면서 부러워했던 처지이기에 더욱 그렇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Merdeka, http://merdeka.kr


지하철 헌화가/이종인 지음/즐거운상상


전문 번역가 이종인. 그의 이름을 확실히 인지한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와 <촘스키, 사상의 향연> 등 그가 번역한 책들을 읽었으면서도 말이다. 여태까지 140권의 책을 번역한 내공 깊은 역자이지만, 고작 몇 년 전에야 그의 이름을 알았다는 사실. 이는 역으로 내가 과문한 탓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내가 그의 이름을 각인한 결정적인 계기는 <번역은 내 운명>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번역은 내 운명>은 중견 번역자들인 강주헌, 권남희, 김춘미, 송병선, 이종인, 최정수 6인이 함께 내놓은 책이다. 이 과정을 되짚으면서 나는 다른 차원의 ‘대단한 발견’을 하게 된다. 여러 편의 훌륭한 번역서보다는 한 권의 공저 속에 들어있는 이름을 통해 이종인이 보다 분명하게 인식됐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 수준에서의 대한민국 번역가의 처지는 이랬다.


이 땅에서 번역가는 그리 녹록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아니다. 출판사에는 수억 원의 매출을 올려주고도 매절 계약으로 400만원의 인세 수입을 올리는 친한 선배도 본적이 있다. 그러나 이종인은 <지하철 헌화가>에서 솔직하게, 담담하게, 약간은 자신있게 말한다. “번역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다고.” 노력하고 천착한다면 가능할 일이지 싶으면서도, 일부에게만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다.

번역가의 아내도 처음에는 많이 못 미더워했나 보다. 그는 이를 솔직히 드러낸다. 솔직함이 주는 매력은 맑은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아내는...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신은 번역을 안 했더라면 굶어 죽었을 사람.”이라고 말했다. (p 47)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번역가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정지용의 시를 빌려, 편집자를 칭송한 대목이 정겨웠다. 정지용은 <백록담>이라는 시에서 “쫓겨온 실구름 일말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는 명구를 남겼는데, 미성 씨는 나의 번역에 그런 백록담이 되어 주었다. (p 64)


번역가의 번역 이야기도 좋았지만, 아내와 장모,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 단상들도 좋았다. 투박하지만 솔직한 대목 한 군데. “한번은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내가 졸리는지 내 어깨에 기대 왔다. 그 순간 아내의 머리카락에서 똥 냄새가 나는 듯했다. 나는 그 냄새의 역겨움보다는 아내의 고생이 먼저 생각나서 갑자기 목이 메어 왔다.” (p 43)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한 문장도 있었다. 어머니 열다섯 살 때 동네 여든 되신 할머니에게 놀러가니까 “아야, 그 하얀 이빨이며 붉은 입술이 너무 곱구나.”하고 말했었는데, 어머니 자신이 이제 그 할머니의 나이가 되었다며 세월의 빠름을 한탄하셨다. (p 123) 이 대목을 읽으면서는 눈물을 흘렸다. 가슴을 타고 내리는 뜨거움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몇 년 전 늦은 나이에 장가가는 막내를 앞에 두고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말씀과 어찌나 닮았던지. 세상은 모든 어르신은 그래서 모두의 스승이다.


나이 차는 꽤 나지만 그가 들려준 경험들과 교훈들이 인생 후배의 생각과 제법 닮았는지, 여러 번 놀랐다. 그 중 하나의 대목. 사람이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물속에 빠져 곧 죽게 되면 그의 짧은 인생이 고속 필름처럼 의식의 망막 위를 스쳐지나간다고 하는데 그녀도 자신의 인생을 고속필름처럼 되새겨 보았을까. (p 210) 그 순간 나는 20대 초반과 20대 중반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서울 남산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다가 브레이크가 파열돼 중상을 입었던 때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파도를 타다가 물속에 가라앉았던 때. 용케 살아나와 바다 모래와 물을 맘껏 먹고 보름을 고생했던 때가 있었다. 그 순간 내게도 짧지 않은 인생이 스쳐 지나갔었다. 


번역가이지만 산문도 참 잘 쓴다. 출판사의 편집자는 원고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을 때, 나는 웃어넘겼다. 하지만 이제는 동의한다. 잔잔한 느낌의 이 책을 읽고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을 듯싶다. 아쉬운 점은 소개될 길이 좁다는 점이다. 유명한 문인의 산문집도 소설이나 시가 아닌 다음에야 출판기자의 눈길을 잘 끌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떠올랐다. 우리 언론 현실에서 산문은 문학으로도, 출판으로도 분류되지 않아 좋은 글이 많이 알려질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할까 염려된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http://merdeka.kr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이승우 지음/마음산책/9800원


소설가인 이승우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의 글. 담백하게 써내려간 글이다. 소설을 쓰기 위한 태도를 알려주는 게 정겹다. 튀는 구석이 없고 성긴 데도 없다. 그저 잔잔한 기분을 얻을 수 있게 만든다.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이 이 책을 읽을 터이지만, 소설가와 소설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읽어도 좋겠다. 독서가들은 책은 2번에 걸쳐 완성된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소설가도 이 말에 확신을 심어 주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는다는 것은, 또는 왕가위의 <동사서독>을 본다는 것은, 그 소설과 영화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작가가 자기 소설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소설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독자가 그 책을 읽음으로써 완성된다. (p 23)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데, 글을 쓰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문인과 전문가들만이 책을 쓰던 때도 있었으나, 이제는 일반인들도 책을 맘껏 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책을 찾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이에 대한 진단도 명쾌하다.


소설을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소설을 쓰겠다는 사람은 늘어나는 이런 추세는, 아마도 단순한 수용자로서가 아니라 생산자로서 참여하려는 현대인들의 문화 욕구가 구현된 것일 테지만, 이런 현상을 문학의 민주화라고 칭하고 환영할 일인지는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p 166)


잘 읽어야 잘 쓰는 시대에 쓰기만 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됐다. 그래야 절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세계에 대한 해석을 담은 글을 만들 수 있다. 자기만의 글은 결코 우연히 탄생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책은 기억의 확장이며 상상력의 확장’이라고 말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도서관을 인류의 기억’이라고 했던 버나드 쇼에 동의한다. 물론 이 두 사람에 동의한 소설가 이승우의 견해에 동감한다. 그런 점에서 그가 서두에 한 말은 단순하지만 정답이다.


“지금 위대한 작가들도 그보다 앞선 위대한 작가들의 소설을 익으며 소설 쓰기를 읽혔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http://merdeka.kr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 240+1/미노 지음/즐거운 상상/1만2000원


조금은 색다른 여행서다. 터키의 낯선 곳에서 240박 241일을 지냈다는 방송작가 출신 여행자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다.


저자는 ‘미노’를 필명으로 가진 김미정씨. 그녀는 지난해와 올해 <미노의 컬러풀 아프리카 233+1>와 <미노의 별볼일 없는 유럽 숙소여행>내놓았다. 또 라틴아메리카 여행기도 곧 내놓을 예정이란다. 세계여행을 이뤄가며 자신만의 확실한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 240+1>는 그녀의 첫 책으로 첫 세계여행의 경험이 오롯이 드러난 책이다. 처녀 경험은 언제나 강한 느낌을 주는 법이다. 보고 느낀 대로 몸이 가는 대로 여행을 즐겼던 기분을 잘도 풀어냈다. 글을 써야겠다는 부담감도 드러나지 않은 게 책의 강점이다.

그녀가 전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참 많다. 한국 여성들이 인기 있다거나 터키에서 한국이 대접받고, 터키는 여행자에게 인정을 느끼게 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만의 매력으로 이를 전하기에, 독서의 흡인력은 훨씬 강하다. 직접 경험하면서 전하는 이야기는 생명력도 있고, 독자에게 호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자각했다.

본 대로 느낀 대로 전하는 그녀만의 매력은 참 많다. 그 중 하나 옮겨본다. 책을 읽지 않은 터키 사람들을 보고 기술한 그녀의 느낌 한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이스탄불에서조차도 버스나, 지하철, 공원이나 찻집 같은 곳에서 책을 읽는 터키인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터키에도 지식인들이나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을 텐데, 그들은 모두 학교나 도서관, 집에서만 책을 읽는 것일까?
터키 아이들은 ‘책 좀 읽어라’는 잔소리 대신 ‘이런 데서 책 읽으면 바보’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나 보다. 터키는 죽어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날마다 책만 읽는 사람보다 큰소리치는 행복한 나라다.


이야기가 있는 여행을 꿈꾸는 이들. 특히 여성 여행자들에게 눈길을 끌만한 책으로 보였다. 건조하고 메마른 감정을 가진 남성 독자인 나도 제법 재미있게 읽었다.

이제 약관을 넘은 25세 터키 청년 ‘나짐’과 미노의 시선을 주요 축으로 해서 벌어지는 시간과 의식의 흐름이 있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글을 다 쓰고 난 뒤에 추억을 맘껏 채워주었던 나짐의 갑작스러움 죽음 이야기 등은 중후한 30대 남성의 마음마저 아리게 하였으니.

미노 홈피에서 발췌, 케말 파샤 초상화

물론 사보 제작 등으로 다양한 출판 경험을 축적한 <즐거운 상상> 출판팀의 노하우도 큰 힘이 됐을 것이다.


장기간의 해외여행을 하는 동안 왕복 항공권을 끊은 적이 없다는 용감한 여성. 미노의 영혼을 사랑하며 그녀의 다른 책들을 접할까 한다. 그녀의 홈페이지
MINO의 이야기를 보니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하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http://merdeka.kr


호찌민과 시클로/이지상 지음/북하우스/1만3800원


베트남은 아세안의 호랑이다. 한국과 맺은 여러 인연으로 우리에게 주목받는 국가이다. 동남아시아 회원국 사이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나라이다. 그 눈길은 10개 회원국들이 자신과 서로에게 보내는 눈길이다. 베트남은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남아 국가들에게 부러움과 질시를 동시에 받고 있다.


아세안의 변화 상징 국가, 베트남

격세지감이다. 동남아국가연합인 아세안(ASEAN)의 눈에 비친 베트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세안은 도미노 이론의 확산을 배경으로 1967년 태동한 국제기구이다. 베트남 때문에 인도차이나를 비롯해 동남아 각국들이 공산화될 것이라는 게 도미노 이론이고 보면 베트남은 아세안의 과거와 현재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나라이다. 공산화를 방비할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기구, 아세안.


베트남은 오히려 1995년 아세안에 가입해 공동번영을 추구하고 있다. 아세안에

베트남 주요 지역

서 가장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는 나라가 베트남이다. 아세안이 이제 그 정치적 영향력을 억제하는 목적에서는 완전히 탈피한 것이다. 동남아 지역에 ‘정치적 기적’이 펼쳐진 셈이다. 거기에 덧붙여 베트남은 경제적 기적을 추구하고 있고, 정도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세계의 평가가 이를 말해준다.


이 때문에 나는 오래 전부터 베트남을 알고 싶었다. <호찌민과 시클로>는 정도 이상으로 내 관심에 답해주는 책이다.


여행가 이지상은 베트남을 제대로 알려준다. 가볍거나 감정적이지 않게, 묵직하게 베트남을 들려준다. 그리고 반성하게 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반성을 유도하지도 않는다. 독서에 방해를 주지 않는 정도의 인문적 지리도 습득하게 한다.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들려주는 선이 굵은 여행 이야기는 여행기가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1992년 12월로부터 3개월이 지난 이듬해 3월부터 2005년까지 4차례 베트남을 방문해 그 변화를 그려준다. 남에서부터 북으로 향하는 형식에다 제각기 다른 시간들을 융합해 냈다.


파병, 호찌민, 묵직한 주제를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그들의 속살을 어루만지고 그 아픔을 보듬는 과정이 나쁘지 않았다. 한국군의 참전을 애써 이해하려는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 그러나 그 분위기에서도 불현듯 불편함을 드러내는 상처의 기억들. 이지상에게 베트남은 시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달리 읽힌다. 베트남 속살을 만져보지 않은 사람은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호찌민을 바라보는 1990년대의 눈과 2005년의 눈, 그를 기억하는 하노이와 사이공의 서로 다른 기억들. 그의 치우치지 않은 안목이 좋았다. 그리고 베트남을 알기 위해서 여행 전후에 읽었던 책을 언뜻언뜻 언급하는 형식도 좋다. 감각적이거나 감성적이지 않아도, 문제의식을 무겁지 않게 담아낸 책이 주는 매력이 있다.


<밑줄 긋기>
p 191

베트남에 오기 전 읽은 책에서 본 사진들이 생각났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서 온 20대 초반의 앳된 우리 병사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찍은 사진들을 볼 때 가슴이 울컥했다. 나 얼릴 때는 다 큰 군인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어서보니, 애들이었다.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죽어간 ‘젊은 그애’들이 너무도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p 241

허, 고객이 직원에게 야단을 맞는 꼴이라니. 동유럽이나 중국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공산주의 국가에서 관료, 상점 여직원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일상이었다. 인민의 나라라는 곳에서 관료들은 인민에게 군림하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고 인민은 늘 주눅 든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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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의 여행 바이러스/박혜영 지음/넥서스/1만2500원


보편적인 여행서적은 유혹적이다. 떠나려는 사람은 물론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그 유혹의 향내는 강렬하다. 어느 특정한 문화권을 보여주는 책이나 여행 후의 감각적인 후일담을 드러내는 책들은 대개가 그러한 느낌을 선사했다.


<히피의 여행 바이러스>는 그런 점에서 독특하다. 이 책은 여행을 떠나라고 유혹하지 않는다. 여행을 재촉하기까지 하는 많은 책들에 비해 두드러지는 특색을 보인다고나 할까. 특정한 지역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특별한 주제를 갖고 생각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여행이라는 큰 제목 아래 20대 이후 접했던 세계 여러 곳에서의 경험을 편하게 서술해 놓았다. 현지를 꼭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은 일절 갖지 않은 채로. 그러기에 정보는 별로 없다. 그래도 그녀의 과거 삶을 부러워할 이들이 많을 성 싶다.


정보보다는 느낌과 생각을 담은 책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다지 긋지 않았다. 아니 긋지 못했다. 30대 초반여성의 감각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게 좀 더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아내는 느낌 좋은 책이라고 했지만, 나는 전혀 따라가지 못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제목에는 ‘히피’를 집어넣었으나, 그녀가 책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그리 자유스러운 모습도 아니었다. 여행을 자주 떠나는 이가 자유스럽지 않다니? 나의 평가에 이렇게 반박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반박은 말기 바란다. 그녀 말대로 꿈꾸고 행동하면 되는 게 여행이니까 말이다.


자유롭되 소박한 산책자
오히려 작은 것에 감동받는 소박한 산보 여행자의 모습이었다. 길에서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사람 향기 가득 묻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터키와 라오스, 베트남을 사랑하는 그녀가 좋아보였다. 여자 혼자 다니는 외로움과 두려움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 여러 지역의 고샅을 한가로이 누비는 모습을 그려준다. 그런 모습은 정겨운 풍경을 상상하게 만든다. 감각의 샘이 건조한 나는 전적으로 동감할 수는 없었지만, 감각적인 이들이 찾으면 환호할 듯싶다.


p 253

일분일초라도 빠른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내달리는 세상 속에서도 그 속도에 아랑곳없이 과거의 사연을 곱씹는 곳, 자본의 속도에 절대 밀리지 않는 당당함이 있는 곳. 세상 곳곳에서 자기만의 속도를 지켜나갈 헌책방들이 그립다.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 헌책방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멋이 스미는 공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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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아프리카/정은선 글-사진/이가서/1만2000원


31 일 동안 느낀 31 가지

여행기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여행기와 일기의 결합이라고 해야 할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작된 코치 여행 일정을 배경으로 그녀는 31개의 소주제를 나눠 31가지의 이야기와 느낌을 들려준다. 자신만이 담아두었을 수도 있는 속내를 풀어낸 것으로 봐도 좋을 성 싶다. 내게는 일기로도 보였으니까. 그래서일까. <아프리카에 두고 온 서른한 살>은 책의 형식과 조화를 이뤘다.


내용은 이랬다. 소주제가 있다. 아프리카 여행을 일정에 따라 설명한 뒤, 한국 직장에서의 경험, 대학 시절의 경험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경험이 아프리카에서 하루 여행에서 얻은 교훈과 다시 연결된다. 아프리카와 한국의 경험을 녹여 자신만의 교훈을 뽑아내는 과정이 녹록치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녀가 뽑은 31가지 소주제다.

1~10일: 나태, 질서, 당연, 예감, 선입견, 내숭, 짜증, 환상, 눈치, 열등의식

11~20일: 유행, 기대, 예민, 옛사랑, 작은 소리, 충동, 추정, 착각, 우상, 본능

21~31일: 두려움, 자만, 집착, 절망, 순수, 스트레스, 상실감, 부주의, 외로움, 영웅심, 이기주의


아쉬움-아프리카에서도 못 잊은 한국의 삶과 일터

아쉬운 점은 그녀가 아프리카에 두고 온 것만큼이나 많이 한국의 삶을 하나하나 기억해 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행 떠난 아프리카 현지에서. 그래서인지 전형적인 아프리카 여행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우먼 인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30대 프로 직장인의 내면으로의 여행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듯싶다. 아프리카를 보려는 이들보다는 자아로 여행을 떠나려는 여성들에게 권한다.


그렇다면 여행을 떠나서까지 한국의 삶과 대학 시절의 추억을 잊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현재 저자는 2007년 현재 한국 나이로 34세의 영화 마케터. 아프리카로 떠난 게 31세이었으니, 3년 지나 책이 나온 셈이다. 그 3년의 시간이 아프리카와 한국, 대학시절의 작은 주제들을 철두철미하게 연결시켰는지도 모른다.


30대 직장 여성이 아프리카에서 버리고 얻어온 것들
그러나 이해도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30대 여성이 여행에서 떠나온 일터를 잊어버릴 수는 없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니까. 많이 버리고 많이 기억하고 많이 얻고 온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웃음을 주기 위해 같이 실은 것 같은 가벼운 팁들도 좋았다. 30대 초반을 살아야하는 한국 여성들의 삶과 영화 마케터의 어려움을 짐작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프리카 여행기가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말이다. 여자 후배들에게 권해야겠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http://merdeka.kr



제목을 못 정한 책/김벌래 지음/순정아이북스/1만2000원


재미있었다. 감동 먹었다. 이렇게도 ‘자기를 확실히 보여주는 형식’으로 책을 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이런 솔직한 이야기가 여운도 오래 남는 법이다.

신바람 전도사
김벌래. 본명은 김평호. 1941년생. 그는 장인이었다. 동시에 인생을 신나게 사는 천년 청년이었다. 신바람 전도사 황수관 박사가 했던 것 이상으로 신바람을 가진 ‘쟁이’로 보였다. 그의 말처럼 창의적인 사람은 흥겨운 추임새와 신나는 환호가 가장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창의적인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우리같이 무덤덤한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규칙일 터다.


인간적인 소리에 취한 소리계의 거성
소리계의 거성. 이 순간 왜 박명수가 생각나는 것일까. 일단 이 부분은 건너가기로 하자. 그 다음 느낌? 그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학벌의 문제점을 낱낱이 지적했던 모습. 소리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몇 개월을 그 일에만 파묻히는 모습. 그것은 자신감 있게 할 것 하고 살아왔던 자만이 보여줄 수 것들이다. 그러기에 인간적인 감각과 감정을 환기하는 소리를 탄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말했다. “실패는 좋은 것이다”고. 실패에서 광고 소리의 세계에서 배려와 소비자의 성향을 읽어내는 것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고.


<제목을 못 정한 책>이 제목이었지만, 출판사가 이를 제목으로 정한 흔적은 없다. 저자의 의견이었던 듯 싶다. 제목으로 지을만한 것은 많아 보였다. 부제인 ‘사운드 디자이너 김벌래의 전투일지’를 변형해도 됐을 것이고, 좀 거창하게 ‘대한민국 소리 역사의 산증인’을 모티브로 해도 좋았을 성 싶다. 그도 아니면 ‘신바람 소리 인생, 나의 일터’도 과히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어느 경지자의 ‘실천한 삶, 인생찬가’가 더 어울리는 제목으로 보였다. 그도 아니면 <제목을 제대로 정한 책>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정한 제목은 기막혔다.


올림픽 굴렁쇠의 감동을 기억하는가
1988년 올림픽 폐막식에서 어린이가 등장하며 굴렸던 ‘굴렁쇠’의 감동을 기억한다. 그 배경음악을 김벌래 선생이 목숨을 걸듯 치열한 태도로 이뤄낸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로라하는 이들의 반대 속에서 전통의 소리 ‘다듬이’를 배경으로 삼았다는 것을 말이다. 많은 이들의 반대 속에서 ‘쟁이’ 정신을 보여줬던 그는 이를 가리켜 ‘세계를 상대로 사고를 친’ 것으로 기억했다. 멋진 말이다. 아니 기막힌 ‘소리’이다.


광고 소리의 산증인, 음향의 달인. 독서의 내용만으로도 그에게 숱한 별칭을 줄 수 있었다. 물론 나보다 앞서 많은 이들은 숱한 칭호를 줬을 것이지만. 그가 말한 88올림픽, 대전 엑스포, 월드컵 등 각종 행사와 일터에서 ‘소리’의 장엄함과 ‘우리다움’을 선사했던 과정. 그 부분들을 읽으면서 맘껏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얼핏얼핏 가슴이 아렸던 것도 숨길 수 없는 독서 후 느낌이었다.


그리운 엄마, 아버지
안타까웠던 부분은 더 있었다. 몸이 불편했던 어머니와의 추억. 29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의 기억이 추억이 될 때는 어떤 느낌일까. 전쟁 통에 평생 제대로 자기 삶을 살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측은함. 김벌래 선생은 경쾌하게 말했지만, 나는 그가 마음 저편에서 울고 있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아련한 마음과 한국의 ‘차별’을 이기고 주눅 들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김벌래 선생은 참으로 많이 ‘그것참’이라는 말을 뱉는다. 그것 참.


p 252

주머니보다, 머리보다 마음을 크게 불려야 한다. 배장을 키우면 자신감도 커지고, 자신감이 쌓이고 쌓이면 자부심이 된단다. 자부심이 생기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림이 없지. 청춘은 잔챙이 숫자로 현실의 이익만 계산하기보다는 배짱으로 도전해야 진정한 청춘이란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http://merdeka.kr


읽기의 힘, 듣기의 힘/다치바나 다카시, 가와이 하야오, 다니카와 순타로/열대림/9800원


일본 지식인들이 하나의 지점을 향해 3색 대화를 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 다치바나 다카시를 필두로(셋 중 제일 젊다. 1940년생) 가와이 하야오, 시인 다니카와 순타로가 읽기와 듣기에 대한 강연을 하고 심포지엄을 열었다. 고급 대화가 오간다. 현장에 참여한 청중은 수준 높은 세 명의 대화로 지적 만족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먼저 강연에 나선 사람은 심리학자인 가와이 하야오. 1928년생이다. 환자를 받는 카운슬러 입장에서 ‘듣기’와 ‘읽기’를 풀어낸다. 환자의 이야기를 정성껏 듣는 것은 듣기 영역이지만, 그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는 것은 읽기 영역일 듯도 싶다. 말하는 이가 가진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온전히 그와 동화돼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깨닫고 본받아야 할 지침이다.


다독가 다치바나 다카시도 읽기와 듣기는 ‘이해하는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는다.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책을 많이 읽어왔다고 밝힌다. 그가 저술한 많은 책들을 보면 그는 일본의 독서 전도사로 보일 정도이다. 책 한 권을 저술하기 위해 그 1000배가 넘는 책을 보고 인터뷰하기도 했다는 다치바나 다카시를 보면서 또 의욕을 다지는 이들이 있으리라. 그가 청중에게 전해준 용어 하나는 정보 투입배출비율. 이를 ‘IO비’(정보의 투입-Input-과 외부로 꺼내는 배출-Output-의 비율)로 명명하고,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100대 1의 IO비는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긍이 가는 말이다. 책 한번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읽고 오래 생각하고 깊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기에.


두 사람의 이야기에 비해 시인 다니카와 순타로(1931년생)의 말은 좀 어려웠다. 시인이어서인지 시를 많이 언급했을 테지만, 나는 그의 시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그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행간을 읽고 이해라는 것도 포함했다.


이들은 대화에서 읽기와 듣기는 결국 소통의 문제라는 데 공감하는 듯 했다. 문자가 인간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단점을 갖고 있는 데에도 동의하는 듯 했다. 결국 듣기와 읽기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인데, 그 이해라는 것은 결국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기회를 갖고 나중에 한 번 더 읽는다면 보다 철학적인 음미도 가능할 것이다. 


아주 작은 분량이지만 곁에 두고 자꾸 살펴볼 책이다. 읽기와 듣기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을 가능하게 했다는 데 점수를 주고 싶다. 각 분야 대가들이 강연을 하고 심포지엄을 개최한 모습. 이를 통해 저작물을 내놓는 것. 좋은 일이다. 우리에게는 언제쯤 이런 일들을 통해 훌륭한 저작물이 자리를 잡으며 독자를 찾아올까.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http://merdeka.kr


예술, 정치를 만나다/박홍규 지음/이다미디어/1만2000원


이다미디어가 만든 책은 신뢰가 간다. 독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한 권의 책에서 꽤 많은 상식과 이야기를 전해 준다. 이번에 접한 이다미디어 출판사의 책은 <예술, 정치를 만나다>이었다.


저자는 박홍규 영남대 법대 교수이다. 책을 통해 사회 참여를 하는 지식인이다. 법학 관련 책으로 백상예술대상도 받았다. 그러나 법학 교수이지만 수십 권이 넘는 예술 관련 책을 낸 저자로 더 인식된다. 내가 접한 그의 책들도 예술 관련 책들이 다수였다. 법학자가 예술 관련 서적들이라니.


저자는 끼리끼리 문화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

고매해 보이기는 하나 좀 어울리지 않을 성도 싶다. 그러나 그 비밀은 그가 함께 공저한 어느 책을 통해서 풀렸다. 몇 해 전 출간된 <젊은 날의 깨달음>에서 밝힌 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 조정래와 손석춘, 정혜신, 박홍규 등 10명 가까운 공저자들이 젊은 시절을 들려주면서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전한 책이었다.


이 책에서 보면 그는 ‘20세기 감옥에서 꿈꾼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을 규정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연결하는 장소는 1961년 쿠데타 발행 이후 어느 경찰서 뜰이다. 교원노조 사건으로 구속된 아버지가 경찰서 마당에서 강제로 삭발되는 장면과 겹쳐 오른다고 했다. 어린 그가 무엇을 느꼈을까. 짐작 가능한 부분이다.


어린 시절 그는 산골짜기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맘껏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그는 각종 모임과 집단의 유혹에서 벗어나 있다. 친구와 스승들 대신 그림과 음악과 책을 동무삼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끼리끼리 문화’를 배격하는 고독한 지식인의 모습으로 겹쳐진다.


예술로 무지한 나로서는 박 교수의 설명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우선이었다.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면서 따라가는 것마저도 버겁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을 요약하고 이해하는 수밖에.


에필로그 결어 부분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이란 본질적으로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당연히 권력에 대항하게 마련이다. 반면 예술의 거대한 고객은 여전히 국가와 기업이다. 20세기 초의 전위예술이 가졌던 전위성이 없어진 이유도 결국 국가와 기업에 통합되어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이 그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기업에 의한 통합을 거부해야 한다. 또 어떤 권력에 의존해서도 안 된다. 아울러 정치가 낳는 권력이 문제이므로 예술이 투쟁하고 부정해야 할 대상도 권력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라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주장이다. 정치에서 자유로운 예술은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그가 자세히 설명한 루벤스와 괴테, 바그너, 베르디, 피카소, 채플린, 사르트르, 레논도 정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때로는 투쟁하고 무관심했지만, 때로는 체제와 이념의 수호에 이용당했던 게 이들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정치와 예술의 불륜을 넘나들었던 바그너와 정치의식이 뚜렷했던 베르디의 차이를 알게 됐다. 권력과 권위를 거부한 아나키스트와 자유롭게 살대간 존 레논의 삶을 더욱 평가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그나마 그가 언급한 이들은 박 교수가 애정을 갖고 지켜본 인물들일 것이다. 가령 철저히 제국주의의 모습이었던 셰익스피어에 비해서 이들은 평가받고 있는 게 분명할 것이다. 좀 더 예술과 예술인에 관한 책들을 접해 볼 생각이다.


p 34

바로크는 풍요와 활기, 역동, 감정, 장중 등 19세기 낭만주의 이미지의 선구이기도 했다. 곧, 르네상스는 18세기에, 바로크는 19세기에 각각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로 부활한 것이었다.


p 90

괴테는 예술과 정치, 예술가와 정치가로서의 삶을 잘 조화시킨 모범으로 루벤스와 함께 예술사에서 특별한 경우로 자리매김했다. 루벤스와 마찬가지로 괴테도 아주 예외적인 사례임은 물론이다. 괴테가 살았던 18세기에도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권력에 종속된,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p 100

히틀러가 <니벨룽겐의 반지>를 비롯한 바그너 오페라에 열광했고, 그 오페라의 세계를 현실에 실현하고자 일으킨 것이 제2차세계대전이었다는 점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p 136

베르디가 역사와 현실에서 소재를 구한 것과 달리, 바그너는 신화에서 그 소재를 구했다. 또한 베르디가 애국적이고 정치적인 오페라를 낙관주의 입장에서 쓴 것과 달리,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영향을 받은 비관적 허무주의자였다는 점도 두 사람을 구분하게 하는 점이다.


p 237

국가 권력이 강하면 지식인은 약하게 마련이다. 자코뱅이나 나폴레옹의 시대, 또는 볼셰비키와 나치의 시대에 지식인은 정치에 융합하거나 복종하거나 아니면 그 공포 속에 살면서 지하로 숨어들었다. 반면 정치가 약하면 지식인은 두각을 나타내 정치를 장악하기도 했다.


p 273

비틀스는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최고의 인기와 최대의 영향력을 끼쳤고, 특히 레논과 매카트니는 가장 뛰어난 작사와 작곡의 콤비였다. 그 어느 대중예술가의 인기의 상승과 함께 하강을 경험하지만 비틀스는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상승뿐, 하강이 없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http://merdek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