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마지막 저항이 남아 있지만, 봄의 전령사들도 바쁘다. 겨울이 제일 나중에 왔다 맨 먼저 물러나는 남녘의 들판은 초록 빛깔의 보리와 마늘이 차지하고 있다. 봄기운이 느껴지자, 농부의 손놀림도 바빠진다. 새봄에 들녘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봄 식물도 낮에 비닐하우스 문이 열리는 틈을 타, 실내외 온도 격차에 적응하는 훈련강도를 높이고 있다. 내리쬐는 햇살에 성미 급한 식물은 어느새 꽃망울을 터뜨리는 게 이즈음이다. 남도 500리를 굽이굽이 휘감는 섬진강이 넓은 바다로 몸을 의탁하는 지점인 전남 광양을 찾았다. 봄소식의 시작을 알리는 꽃으로 각인된 매화꽃 향기를 접하기 위해서였다. 음력 정월 대보름 무렵에는 꽃구경을 하기에 이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매화꽃이 군데군데서 수줍은 듯 얼굴을 드러낸다. 이 수줍은 얼굴은 3월 초순을 넘어서면 무섭게 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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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마을로 유명한 섬진마을 나루터에 작은 배가 정박해 있다. 강 건너가 경남 하동이다. |
광양∼여수 이순신대교 2012년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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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청매실농원의 매화꽃이 만개했던 당시의 모습. |
이순신대교는 여수 본섬에서 묘도를 거쳐 광양을 연결하는 4차선 8.55㎞ 다리로 건설된다. 주탑 2개는 270m로 서울의 63빌딩(249m)보다 높다. 눈길을 끄는 점은 또 있다. 주교각 사이의 거리인 경간(徑間)이 1545m인 점. 이순신 장군의 출생 연도와 동일한 숫자로, 경간은 일본의 아카시대교(1991m)와 중국의 시호우멘교(1650m) 등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길다. 광양만의 월드마린센터 전망대에 올라 광양만을 내려보니, 광양항은 물론·여수·순천·하동·남해 등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광양과 여수 본섬 사이에 있는 묘도는 이순신 장군이 염소를 키워 왜적을 물리쳤다는 곳으로, 전망대에서 잘 보인다.
광양만에서 옥룡면으로 이동하면 전통의 향기와 여유가 느껴진다. 중흥사와 옥룡사지, 동백림, 백운산휴양림의 명소가 나그네를 반긴다. 옥룡사와 중흥사는 신라 4대 고승인 도선 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임진왜란 당시 중흥사는 불에 타고, 승병들은 왜병과 싸움에서 모두 전사했다고 한다. 중흥사는 1963년에 중건됐지만 옥룡사는 아직 그 옛 영화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그 아쉬움은 옥룡사지 주변의 동백꽃이 메워주고 있었다. 7000여그루로 이뤄진 울창한 동백숲과 아름다운 산책길이 남도를 대표하는 동백군락지답다.
백운산엔 식물 1000여종 자라
도선 국사가 35년 머물렀다는 옥룡사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국사의 이름은 아직도 인근 마을 주민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테마체험 마을인 옥룡면 양산리 추산마을이 도선국사마을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국사의 정신을 추모하고 있다. 백운산은 봉황·돼지·여우의 신령한 기운이 이어지고 있는 영산이다. 신령한 기운을 받아서인지, 국내에서는 한라산 다음으로 다양한 식물 종(1000여종)이 자라고 있다. 섬진강의 마지막 물길이 광양만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산이다. 백운산과 함께 광양 주민들이 추천하는 산이 구봉화산이다. 구봉화산은 근대 이전 봉화를 올리던 산이다. 묘도에서 전해진 긴급한 소식을 중앙으로 이어주던 길목이었다. 정상에 올라 전후좌우를 살피니 주변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튿날 드디어 매화마을을 보기 위해 다압면 섬진마을을 찾았다. 섬진강의 유래는 잘 알려졌지만, 새길수록 마음이 포근해진다. 섬진마을에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많았다. 하동에서 광양으로 왜구가 침입하자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이곳 섬진나루터로 몰려왔다. 왜구는 급히 도망갔다. 그때부터 두꺼비 섬(蟾)을 이용해 섬진(蟾津)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사 지리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60가구가 매화나무 10만여 그루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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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마을 청매실농원의 뒷산에 올라 다른 나무보다 먼저 개화를 알릴 것 같은 매화나무를 손끝으로 느껴 보았다. 3월 초순이면 매화꽃 향기가 이곳에 넘쳐날 것이다. 섬진강 너머의 고장인 경남 하동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
섬진강이 바다로 변하는 곳은 망덕포구. 남도의 좌절과 희망을 함께 담은 섬진강의 물길이 바다로 변하는 의미 가득한 포구다. 그 중요한 의미를 알기에 광양을 찾는 이들은 이곳에 들러,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곤 한다. 망덕포구에는 이즈음 강굴(벚굴) 수확이 한창이다. 섬진강 하류에서만 수확된다는 이 굴은 강에서 수확된다고 해서 강굴이요, 물속 깊은 곳에서 모양이 벚꽃같다고 해서 벚굴이다. 껍질의 크기가 운동선수 손바닥보다도 크다.
광양=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