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가 일주일 심장 염증으로 일주일 정도 병원 신세를 져야하는 모양이다. 20일 오전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의 비서인 수피 유소프(Sufi Yusoff)와 통화할 때, 그가 마하티르 총리의 근황을 알렸다.

마하티르는 18일부터 국립심장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한다. 수피는 “증세는 경미해 며칠 치료를 받으면 곧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마하티르는 1989년과 2007년도에 심장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21C는 아시아 시대…
한국, 동남아국과 동반자 의식 가져야”<세계일보>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前 총리 인터뷰

이명박 대통령이 1박4일 일정으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순방 중이다. 이번 방문은 한국의 강대국 중심 외교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대통령이 만나는 정치 지도자 중에는 마하티르 빈 모하메드(85)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있다. 그는 2003년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말레이시아 정계와 주변국의 외교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 대통령과의 관계도 돈독해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 최고경영자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마하티르 빈 모하메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9일 쿠알라룸푸르 집무실에서 한반도 정세와 한·말레이시아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07년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을 때는 축하 영상메시지를 보냈고, 대통령 취임식에도 직접 참석했다. 이 대통령이 10일 오전 나집 라작 총리를 만난 뒤 오후에 마하티르 전 총리를 접견하는 것은 이러한 여러 배경 때문일 것이다.

이 대통령의 말레이시아 방문에 맞춰 마하티르 전 총리를 9일 그의 쿠알라룸푸르 집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1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는 한반도의 최근 정세와 관련해서 “서로 상대방의 자존심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며 “어려움이 있겠지만 한반도 문제의 최종 결정권자는 결국
남북한 정부라는 것을 서로 인정하고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약점을 알고 있는 처지에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지만, 국민적인 결의가 있을 때에는 강력한 의지 표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북한이 (연평도에서) 무력을 사용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말하면서도 줄곧
남북한의 대화와 협상을 강조했다. 어렵더라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 통일이 된 뒤에 추가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남북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종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이던 그가 한국과 말레이시아 관계를 설명할 때는 환한 얼굴빛으로 바뀌었다. 양국은 올해 외교 관계 수립 50주년을 맞았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두 나라가 긴밀한 관계를 이어온 것은 서로 이해도가 높았고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한국을 배우기 위해서 정부와 대학이 나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대학생과 공무원 등 고급인력을 한국에 파견했다”고 설명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1980년대 집권 초반부터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을 펼쳐 말레이시아에 한국 붐을 일으키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학위과정까지 마친 말레이시아 고급 인력은 친한파로 변해 한국과의 관계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당시 유학생을 한국에 보내면서 단순히 기술을 배워 오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우리는 한국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어떻게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것인지 말이에요. 한국의 노동문화와 시민의식을 배워오라고 했어요.”

한국과 한국인에게 필요한 주문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의 문화는 적극적이다 못해 공격적인 게 문제인데, 일본만 하더라도 각종 분쟁을 벌일 때는 업무 시간 이후에 한다”며 “한국이 좀 더 세련되게
대처하며 상대를 배려할 때 지도적인 국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른 문화를 가진 외국인과 좀 더 조화롭게 일하는 문화를 만들 때 한국의 위상은 더 올라갈 것”이라며 “열정적인 것만이 최고이던 시대는 지났다”는 설명도 더했다. 그는 이런 제안은 최소한의 것이지만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동반자 의식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경제적 이익은 동남아에서 많이 나오니, 한국은 이 지역 나라들과 동반자 의식을 증진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동반자 의식을 강조하면서 그가 실례로 든 것은 삼성전자와 기아차였다. 20년 전 동남아에서 삼성은 일본 기업과 경쟁이 안 됐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는 게 그의 견해다. 기아차 역시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말레이시아에서 인기가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변했다고 설명했다. 꾸준히 투자한
결과가 성과로 나타나는 것으로 평가했다.

한국에 대한 주문에서 더 나아가 그는 “아시아 여러 나라가 아시아의 시대인 21세기를 준비해야 한다”며 “중국과 일본은 아시아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이어 “아시아를 놓치면 반드시 후회할 때가 온다. 현명한 한국이 동남아를 포함한 아시아에 좀 더 관심을 가져달라”면서 “영어
구사 노동력이 충분하고, 국제화 수준이 높은 말레이시아는 여전히 한국의 훌륭한 투자처”라고 말레이시아의 장점을 설명했다.

‘한국이 말레이시아에 공헌할 부문’이 뭐냐는 질문에는 “말레이시아의 미래 산업에 주목해 달라”고
답변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고무와 주석을 생산하는 나라로 말레이시아를 보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면서 “팜 오일 등 녹색환경산업과 관광여행 산업이 말레이시아가 자랑하는 산업이며, 우리는 정보통신산업의 부국”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랜 지기(知己)인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면 건강을 챙기고, 너무 숨돌릴 틈 없이 일정을 소화하지 말라고 조언할 것”이라며 “돌이켜보니, 국민은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대통령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뒤를 돌아보는 지도자를 사랑하기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쿠알라룸푸르=글·사진 박종현 기자

■ 마하티르 빈 모하메드 전 총리는

1925년 12월20일 말레이시아 케다주 알로르세타르에서 태어났다. 1964년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974년 교육부 장관으로 내각에 진입했다. 1981년 7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말레이시아 최장수 총리를 지냈다. 총리 재임 당시 세계적인 외환위기 속에서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권고를 무시하고 자구책을 마련해 위기를 극복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는 말레이시아 국부(國父)로 인정받고 있다. 자신이 지명한 후임 압둘라 바다위 총리가 제 역할을 못한다며 퇴진을 촉구해 사임을 이끌어낼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하다. 지금은 마하티르 재단인 ‘퍼르다나 리더십’을 이끌고 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100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자는 나집 라작 총리의 제안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Warisan Merdeka
나집 라작 총리의 100층 빌딩 건설 제안은 10월 중순 국회에서 2011년 예산안을 설명하면서 나왔다. 이때부터 총리의 제안은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찬반인 갈린 가운데, 긍정적인 반응이 다수 나왔다.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기대에 바탕을 둔 의견이었다. 10년 계획으로 ‘국민연금‘(PNB)을 통해 고층 건물을 세우면 슬랑오르와 쿠알라룸푸르 지역을 포함한 말레이시아 전역의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여당에서는 호의적 반응이 많았지만, 야당연합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크게 “굳이 100층 건물이 필요 없다”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려할 만하다”는 의견으로 대별됐다.

최근에는 여권에서도 찬반 의견이 갈렸다. 여러 논란 중에 주목을 받은 것은 범여권이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와 나집 라작 총리의 발언. 전 총리는 “당분간 100층 빌딩은 필요 없다”는 쪽에 현직 총리는 “말레이시아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는 쪽에 각기 힘을 실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볼 때 가벼운 논란으로 볼 수는 있지만, 정치적인 위상을 고려할 때 발언의 함의가 간단치 않다.

마하티르, "Petronas Twin Tower가 최고층으로 남길"
먼저 의견을 피력한 쪽은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 29일 콘퍼런스에 참석해 “쿠알라룸푸르 곳곳에 각종 건물을 임대하거나 팔려는 광고가 많은 것을 본다”며 “가까운 장래에 100층 건물을 지을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두바이와 홍콩, 일본 등에서 고층 건물 공급과잉으로 경제 위기를 겪었다”며 “말레이시아도 현재 부동산 경기가 과열돼 있어, 정부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100층 건물 등을 지으면 공급 과잉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어 가벼운 농담도 곁들였다.

“나는 그 빌딩(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마하티르 집권 시절 건설된 말레이시아의 상징과도 같은 빌딩)이 말레이시아에서 최고층 빌딩으로 계속 남아줬으면 좋겠어요. 다른 빌딩(새로운 100층 빌딩)은 나중에 건설하면 됩니다. 아마, 내가 사라지고 없을 때.”

나집 라작, "10년 뒤 KL의 마천루 달라져 있을 것"
현직 총리의 발언은 그 다음날 나왔다.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에 앞서 나집 라작 총리는 100층 건물 신축 계획이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의 정치적인 그늘에서 확실히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일부의 의혹 어린 시각을 부정했다. 30일 아세안 재무장관 회담에 참석해서 “그런 말(마하티르 유산 청산)은 어이없는 이야기다”며 “쿠알라룸푸르 도시 계획을 바탕으로 한 최고층 빌딩 신축 제안은 마하티르 전 총리의 업적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툰(마하티르 전 총리)이 이룩한 성과는 경탄할 일이며, 지금 우리가 해야할 것은 말레이시아의 발전을 이어가는 것이며, 이것은 비전 2020에 관한 것”이라며 PNB가 조건을 충족하면 초고층 빌딩 건설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PNB에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경제적으로 실행가능하며, PNB의 재무 여건상 가능할 것. 둘째 조건은 프로젝트가 새로운 상업지구 개발 등을 통해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건으로 내세운 게 일반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애초 계획대로 100층 빌딩 건축 의사를 확고하게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나집 라작 총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2020년의 쿠알라룸푸르의 모습을 상상해 보길 바란다”며 “그때 쿠알라룸푸르는 중국 상하이의 푸동 지역처럼 마천루 등이 지금과는 전혀 다를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장담했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www.merdeka.kr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가 중심이 된 보수주의 단체 뻐르까사(Perkasa)가 27일 정식 태동을 알렸다. 쿠알라룸푸르의 PWTC에서 열린 개회식에 참석한 것. 뻐르까사는 말레이계의 권익 증진을 주장하는 단체로 이날 행사에는 1만명의 인사들이 참석했다.

당초 이날 행사에는 슬랑오르주의 술탄도 참석하기로 했다. 하지만 언론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우려감이 폭증하자 술탄을 참석을 거부했다. 정치적인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술탄 대신 마하티르가 참석해 개회를 선언했다.

마하티르는 뻐르까사의 제안와 충고를 나집 라작 정부가 참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간 말레이시아에는 말레이계의 권익 증진을 주장하는 단체가 없었다는 설명도 이어갔다. 집권당이 말레이계에 관련된 이슈를 선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가 변화하는 환경을 직시해야 한다는 게 마하티르의 주장이었다. 부인과 함께 참석한 마하티르는 여전히 건장함을 과시했다.

총재인 이브라힘 알리는 2008년 총선 직후 말레이계의 권리 증진을 선언하며 단체를 조직했다. 일종의 압력단체인 셈이다. 이브라힘 알리 총재는 1990년대 마하티르 내각에서 일한 각료 출신으로 친(親)마하티르 성향이 강하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마하티르 빈 모하메드 전 총리가 저술한 말레이시아 대형서점과 영자지가 함께 선정한 최우수 도서에 뽑혔다. 마하티르의 ‘세계 지도자에게 보낸 편지’(Selected Letters to World Leaders)가  영자지 ‘더 스타’와 서점 ‘파퓰러’의 독자가 뽑은 최고의 책으로 인정받은 것.


마하티르는 언론인 출신인 압둘라 아흐마드와 함께 저술한 책에서 세계 지도자에게 보낸 71편의 편지를 골라 실었다. 편지를 보낸 대상자는 조지 부시, 자크 시라크, 토니 블레어 등 세계 각국의 최고통치권자가 주를 이뤘다. 내용은 주로 테러리즘과 세계화, 외교 등으로 세계적인 관심사를 다뤘다.


2008년 11월 출간 당시 책은 말레이시아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자서전 형식이 아니고, 편지를 모은 형태여서 언론이 서평으로 다루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지난 5월 중국어로 번역 출간되는 등 점차 관심을 사고 있다.

Mahathir's Selected Letters to World Leaders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http://merdeka.kr


마하티르 전 총리
“국가현안 일단 정부 믿고 국민이 힘 모아줘야”


마하티르 빈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전 총리는 2003년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1981년부터 23년 동안 총리로 재임했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 전 총리, 올해 초 숨진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함께 동남아를 이끌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1925년 12월생으로 올해 83세다.

하지만 각종 국내외 사안에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피력하는 등 여전히 힘이 넘친다. 정적으로 변한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와 자신의 후계자인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총리는 그의 단골 비판 대상이다. 미국과 영국의 지도자들도 그의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다. 재임 시절 1980년대부터 한국과 일본을 본받자는 ‘동방정책’을 도입해 한국을 인정한 대표적인 외국 지도자다. 그의 정책으로 지금도 많은 말레이시아 공무원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현대건설 재직 시절에 만나, 그 이후 지속적으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쿠알라룸푸르 ‘퍼르다나 리더십 재단’(마하티르 재단)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리더십 강연을 위해 사흘 뒤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마하티르 전 총리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말聯도 영유권 분쟁-美와의 FTA로 몸살
한국 분단국가 처지에서 한계 있겠지만
강대국과 협상할 때 할 말은 해야


이 대통령과의 인연을 주제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이 대통령은 취임식 당일 주변 4대 강국(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의 축하사절을 맞이한 뒤 곧바로 그와 만날 정도로 그를 예우했다.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진실을 말하는 게 힘의 원천이 된다”며 “많은 토론을 거친 뒤에는 추진력을 통해 결과를 보여주는 게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페낭대교 건설 당시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알고 지냈습니다. 그 이후 자주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있지요. 말레이시아 국민차 생산과 관련해 이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이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소문이었을 뿐입니다. 아마 많이 바쁠 것입니다.”

말레이시아는 한국 정부가 최근 처한 상황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웃 국가와 도서영유권 다툼을 벌였고,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진척되지 않고 있다. 먼저 독도문제와 관련해 조언을 구했다.

“말레이시아는 이웃 나라와 두 차례에 걸쳐 영유권 분쟁을 벌였지요. 모두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을 따랐습니다. 인도네시아와의 소송에서는 우리가 이겼고, 싱가포르와는 세 군데의 섬을 두고 다퉜는데, 1승 1무 1패였지요. 하지만 (독도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 정부가 동남아와는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적극 나서고 국민이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에 목소리를 높였던 지도자로 한국 정부에 해 줄 조언은 없을까. ‘소고기 파문’과 한미 FTA 체결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전하자 한국 정부의 처지를 이해하는 발언이 나왔다.

“강대국인 미국과 협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레이시아는 미국에 빚진 게 없고 눈치를 볼 일이 없지요. 우리는 할 소리를 합니다.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고요. 한국은 우리와 처지가 다를 것입니다. 한국은 미국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으며, 미국과 여러 문제가 얽혀 있잖아요. 특히 분단국가 처지에서는 한계가 있지요. 대통령으로서도 운신의 폭이 좁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할 말을 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부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친구 사이라도 ‘아닌 것은 아니다’고 말할 수 있어야지요.”

지도자라면 많이 토론하고 민의 수렴을
결론이 나온 뒤에는 강력하게 추진해야
구체적인 실적 보여줘야 국민지지 얻어

1990년대 후반 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 속에서 말레이시아는 자체 역량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도자라면 많이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토론 후 결과를 도출하면 이를 강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이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압니다. 국민 지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단일민족인 한국은 그나마 국민적 갈등의 정도가 심하지 않을 테니, (복합민족 사회인) 말레이시아보다는 좋은 환경 아닙니까. 지도자가 제대로 일을 한다면 국민이 따를 것입니다. 나도 모든 국민에게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구체적인 실적과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한국과의 관계를 포함한 동아시아 협력 모델이 변화하고 있다”며 “협력 모델에 호주나 미국 등을 포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의 아시아 협력 모델이 한국 등 역내 국가의 요청으로 태동했으나 여전히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며 “유럽연합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이 그 지역 내 국가들의 모임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아시아 국가들이 자체 모델을 갖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지난 7월 중순 해외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한국 기업인 CMKCG의 경영고문으로 영입됐다. 그는 “경영고문으로 영입된 회사는 콩고 등 해외자원 개발에 적극적인 곳”이라며 “한국 기업의 해외영업 추진에 경영자문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연구소와 기업들이 초청하고 있어 늦어도 가을에는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찾는 한국 학생이 늘어나는 현상과 관련해서는 “말레이시아 정부도 과학과 사회, 영어 과목은 영어 몰입교육을 하도록 했다”며 “영어는 내키지 않지만 배워야 하는 언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인이건 중국인이건 영어를 배워야 한다”며 “영어를 잘 한다고 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말레이시아 정치에 대해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현 정부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는 “현 정부가 그동안 정착된 여러 정책들을 쉽게 바꾸며 불안전성을 높였다”며 “지난 3월 총선에서 여당이 역대 최악의 성적을 낸 것은 국민이 현 총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언론과 정부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압둘라 바다위 내각처럼 국민적 지지를 상실한 역대 정부는 없었다”며 “언론도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정 시간을 넘겨 한 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면서 마하티르 전 총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심장병 등으로 병원 신세를 진 사실조차 망각하게 했다. 한 시대를 지배한 권력자답게 마하티르 전 총리는 여전히 거침없는 화법을 구사했다. 이 같은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잘못됐으면 잘못됐다고 말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요. 가령 나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조지 W 부시(미국 대통령)와 토니 블레어(영국 총리)에게 편지를 써서 이라크 공격을 멈추라고 강조했습니다. 전쟁을 통해 이라크 정부가 전복됐는지는 모르지만 더 큰 불행을 겪은 이라크 국민은 이 전쟁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쿠알라룸푸르=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마하티르 前 총리는
▲1925년 12월 20일 말레이시아 케다주 알로르세타르에서 출생
▲1947년 킹에드워드 7세 의과대학 입학(말라야 대학, 싱가포르)
▲1964년 국회의원 당선
▲1968년 초대 고등교육협의회 의장
▲1974년 교육부 장관
▲1976년 부총리
▲1978년 통상산업부 장관
▲1981년 UMNO(집권당) 총재
▲1981년 7월∼2003년 10월 말레이시아 총리
▲2003년 페트로나스 고문
▲2004년 퍼르다나 리더십 재단(마하티르 재단) 개원
▲2008년 개인 블로그 개설


기사입력 2008.08.03 (일) 22:22, 최종수정 2008.08.04 (월) 13:44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가 다시 UMNO 당원이 될 전망이다. 지난 5월 탈당한 지 4개월 만이다. 마하티르 재단과 아들 등 관계자들이 전한 말에 의하면 마하티르는 곧 복당 신청을 할 예정이다. 말레이시아 통신사 버르나마(bernama)가 전한 소식이다.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총리가 야당의 매서운 공격으로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이뤄진 일이다. 압둘라 총리에게 가장 강력한 비판 목소리를 냈던 마하티르 전 총리가 이번에는 총리에게 도움을 주는 상황이 됐다.


아들인 묵리즈 마하티르(Mukhriz Mahathir)는 17일 아버지의 뜻을 확인했다.

“(아버지의) UMNO 복귀 결심은 순전히 아버지와 신의 뜻에 따른 것이다. 아버지는 복당 신청서를 이들피트리(Aidilfitri, 라마단 끝 무렵의 무슬림 축제)”


현 총리 비판의 선봉에 섰던 마하티르의 복당 신청, 안와르 이브라힘의 정권 인수설, 압둘라 총리의 무기력 방어 등. 말레이시아 정국이 전에 없는 변화의 순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징표들이다.


오랜만에 글을 남깁니다. 그동안 여행을 했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제대로 포스팅을 못 했습니다.


인도네시아를 장기 집권했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네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방송은 물론 세계 많은 언론이 연일 이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30년 넘게 인도네시아를 철권 통치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소식에 언론들이 다양한 회고 기사도 전하고 있습니다.


20세기를 호령했던 3명의 동남아 정객들

그 중에 눈에 띄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어제(13일)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가 병문안을 했다는 겁니다. 오늘은 이웃 국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가 자카르타로 병문안을 갔다는 소식입니다. 각각 대통령과 총리로 재임하면서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터여서, 마하티르 전 총리로서는 안타까움이 더 했나 봅니다. 양국의 최고통치자로 서로 집권 기간이 겹친 시기만도 15년 이상이었으니, 만감이 더욱 겹쳤을 테지요.

브루나이 국왕과 마하티르 전 총리의 병문안을 다룬 현지 언론


하기야 15년도 리콴유 전 총리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통치자로서 공유했던 기간에는 못 미치네요. 두 사람의 집권 공유 시기는 25년 이상이었으니 더 오래 겹치는군요.

옛 생각에 눈물 흘린 최고통치자들
방송에 따르면, 병실에 들어선 마하티르 전 총리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귀에 대고 말을 걸고 손을 흔들었다고 하는군요. 수하르토가 눈을 뜨자 두 사람은 소리 내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수하르토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의식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눈물과 함께 동남아를 호령했던 두 거인의 시대가 저물어간 게지요. 마하티르가 병실을 나선 뒤, 수하르토에게는 진정제가 투여됐다는군요.


80대인 세 명의 노 정치인. 한 명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두 명은 196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까지 절대 권력자로 자국을 통치했던 정객들이지요. 자카르타 병실에 모인 노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여러 생각을 했을 이들이 제법 많았을 것 같군요.


그러고 보니 마하티르도 심장질환으로 몇 번 국립병원을 찾았었지요. 인생무상입니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www.merdeka.kr



권력자의 비애감, 잊혀진다는 것?
[세계일보 2007-05-11 11:09]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내부 다툼이 치열하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어제의 동지와도 애써 싸움을 하고 필요치 않는 과거의 모습을 들춰내는 게 정치권의 관행이라고는 한다. 하지만 최근 대통령과 전직 여당 당의장들이 설전을 벌이는 모습과 대권 주자간 주판알 소리만 요란한 한나라당의 모습은 외국에서 보기에도 추잡스러울 정도이다.


이들의 치열한 논박과 다툼의 이유가 권력 지향성 때문인지 국민에 대한 투철한 봉사심 때문인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최고 권력을 맘껏 향유한 통치자까지도 권력의 ‘드러나지 않은 힘’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기도 하는가 보다. 한국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22년간 통치자로 군림한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총리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마하티르 총리가 10일 말레이시아의 독립인터넷언론인 ‘말레이시아끼니’와 인터뷰에서 전직 총리로서 느끼는 비애감을 토로했다. 앞서 9일 마하티르는 “자신이 지명한 압둘라 바다위 총리가 최고는 아니었다”면서 지난해 잇따른 공격에 이어 또 한 차례 현 총리를 자극했다. 그는 “현재 부총리인 나집 라작이 능력은 더 뛰어났으나 젊기 때문에 연장자에게 양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고 밝혔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하는 표현으로 봐서는 현 총리를 비난하려고 작정한 모양새다.


솔직하게 통치자의 비애감을 토로한 것은 라피다 아지즈 통상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라피다 장관은 마하티르 총리가 집권 초기인 1986년에 임명한 여성 장관이다. 마하티르는 “라피다 장관이 일부 사업가들에게 자동차 수입면허를 주는 등 원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현지인우대정책’을 남용하고 있어 퇴진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당사자인 통상부 장관측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지만 2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직 장관이 그런 잘못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임명한 장관의 퇴진을 전직 총리가 요구하는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쓴 웃음을 짓게 만드는 대목은 이어지는 마하티르의 설명에서다. “그는 내가 2003년 10월 물러난 다음날부터 내게 자문을 얻지도 않았고, 나를 아는 체도 안 했다. 나는 물러나더라도 이들(관료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무게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마하티르 전 총리의 발언에 대한 해석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22년간이나 최고 권력자였던 이가 느끼는 허탈감과 비애감의 뿌리는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것에 더도 덜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단 한 가지, '잊혀진다는 사실'을 쉽게 용납 못하는 것 말이다.


쿠알라룸푸르=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빠르고 통쾌한 세상이야기-펀치뉴스`

ⓒ 세계일보&세계닷컴(www.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마하티르 전 총리

‘서방 공격수’로 적극 이름을 알렸던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전 총리는 퇴임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내와 국외를 가리지 않고, 각종 사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내고 있다.

마하티리 전 총리는 18일 행정수도인 푸트라자야에서 가진 ‘언론과 국가발전’이라는 강연에서도 각종 현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적극 개진했다. 이날 그는 블로거들과 정부의 대립, 국민차 프로톤 매각 협상,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 정치 재개 등 요즘 말레이시아에서 한참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자신의 주장을 선명하게 전달했다.


먼저 주류 언론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는 등 정부 및 친여매체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블로거들의 활동을 지지했다. 그는 “블로거와 온라인 매체들은 다른 매체가 담당할 수 없는 내용을 전달하며 역할을 하고 있다”며 권한에 따르는 책임감을 주장하는 현 집권세력의 시각과 차이를 드러냈다.

압둘라 바다위 총리


마하티르 전 총리는 “지금 많은 독자들이 대안 언론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만약 정부가 이를 억압한다면 대안 언론은 오히려 더 신뢰를 쌓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3년까지 22년간 말레이시아를 통치하면서 언론 자유를 제한했던 당사자의 발언이었지만, 많은 블로거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특히 말레이시아 온라인 매체인 ‘말레이시아끼니’는 “자신의 집권 시절에 그러한 뜻을 나타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의 주장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마하티르 전 총리의 발언은 정부와 논쟁을 벌이고 있는 온라인 매체와 블로거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블로거들이 허위 사실을 유포하며 정부에 대한 신뢰저하를 부르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들의 책임을 강조하며 각종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최근 정치적인 기지개를 펴고 있는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에 활동에 대해서는 낮게 평가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안와르 이브라힘 전 총리가 총선에서 의석 몇 개를 건질지는 모르지만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사가 되기는 힘들다”고 단언했다. 1990년 후반 마하티르의 후계자로 각광을 받았던 안와르는 1998년 남색과 부정부패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다 2004년 석방됐다. 복권이 되지 않아 2008년까지 정치활동을 재개할 수 없는 안와르는 최근 자신의 부인이 총재로 있는 ‘정의당’ 총재 출마 의사를 피력하며 정치 활동 재개를 선언했다. 당내 총재로 선출되면 법적 투쟁을 거칠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마하티르 전 총리는 자신이 역점 사업으로 추진했던 말레이시아 국민차 ‘프로톤’에 대해서는 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외국 업체에 매각되면 더 이상 국민차가 아니며, 프로톤을 매각하려면 국내 업체에 팔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현 정부가 외국 제조사와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대한 불만의 심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안와르 전 부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