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티르 전 총리
“국가현안 일단 정부 믿고 국민이 힘 모아줘야”
마하티르 빈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전 총리는 2003년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1981년부터 23년 동안 총리로 재임했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 전 총리, 올해 초 숨진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함께 동남아를 이끌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1925년 12월생으로 올해 83세다.
하지만 각종 국내외 사안에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피력하는 등 여전히 힘이 넘친다. 정적으로 변한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와 자신의 후계자인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총리는 그의 단골 비판 대상이다. 미국과 영국의 지도자들도 그의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다. 재임 시절 1980년대부터 한국과 일본을 본받자는 ‘동방정책’을 도입해 한국을 인정한 대표적인 외국 지도자다. 그의 정책으로 지금도 많은 말레이시아 공무원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현대건설 재직 시절에 만나, 그 이후 지속적으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쿠알라룸푸르 ‘퍼르다나 리더십 재단’(마하티르 재단)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리더십 강연을 위해 사흘 뒤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마하티르 전 총리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말聯도 영유권 분쟁-美와의 FTA로 몸살
한국 분단국가 처지에서 한계 있겠지만
강대국과 협상할 때 할 말은 해야
이 대통령과의 인연을 주제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이 대통령은 취임식 당일 주변 4대 강국(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의 축하사절을 맞이한 뒤 곧바로 그와 만날 정도로 그를 예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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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진실을 말하는 게 힘의 원천이 된다”며 “많은 토론을 거친 뒤에는 추진력을 통해 결과를 보여주는 게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
“페낭대교 건설 당시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알고 지냈습니다. 그 이후 자주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있지요. 말레이시아 국민차 생산과 관련해 이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이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소문이었을 뿐입니다. 아마 많이 바쁠 것입니다.”
말레이시아는 한국 정부가 최근 처한 상황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웃 국가와 도서영유권 다툼을 벌였고,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진척되지 않고 있다. 먼저 독도문제와 관련해 조언을 구했다.
“말레이시아는 이웃 나라와 두 차례에 걸쳐 영유권 분쟁을 벌였지요. 모두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을 따랐습니다. 인도네시아와의 소송에서는 우리가 이겼고, 싱가포르와는 세 군데의 섬을 두고 다퉜는데, 1승 1무 1패였지요. 하지만 (독도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 정부가 동남아와는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적극 나서고 국민이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에 목소리를 높였던 지도자로 한국 정부에 해 줄 조언은 없을까. ‘소고기 파문’과 한미 FTA 체결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전하자 한국 정부의 처지를 이해하는 발언이 나왔다.
“강대국인 미국과 협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레이시아는 미국에 빚진 게 없고 눈치를 볼 일이 없지요. 우리는 할 소리를 합니다.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고요. 한국은 우리와 처지가 다를 것입니다. 한국은 미국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으며, 미국과 여러 문제가 얽혀 있잖아요. 특히 분단국가 처지에서는 한계가 있지요. 대통령으로서도 운신의 폭이 좁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할 말을 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부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친구 사이라도 ‘아닌 것은 아니다’고 말할 수 있어야지요.”
지도자라면 많이 토론하고 민의 수렴을
결론이 나온 뒤에는 강력하게 추진해야
구체적인 실적 보여줘야 국민지지 얻어
1990년대 후반 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 속에서 말레이시아는 자체 역량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도자라면 많이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토론 후 결과를 도출하면 이를 강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이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압니다. 국민 지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단일민족인 한국은 그나마 국민적 갈등의 정도가 심하지 않을 테니, (복합민족 사회인) 말레이시아보다는 좋은 환경 아닙니까. 지도자가 제대로 일을 한다면 국민이 따를 것입니다. 나도 모든 국민에게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구체적인 실적과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한국과의 관계를 포함한 동아시아 협력 모델이 변화하고 있다”며 “협력 모델에 호주나 미국 등을 포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의 아시아 협력 모델이 한국 등 역내 국가의 요청으로 태동했으나 여전히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며 “유럽연합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이 그 지역 내 국가들의 모임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아시아 국가들이 자체 모델을 갖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지난 7월 중순 해외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한국 기업인 CMKCG의 경영고문으로 영입됐다. 그는 “경영고문으로 영입된 회사는 콩고 등 해외자원 개발에 적극적인 곳”이라며 “한국 기업의 해외영업 추진에 경영자문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연구소와 기업들이 초청하고 있어 늦어도 가을에는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찾는 한국 학생이 늘어나는 현상과 관련해서는 “말레이시아 정부도 과학과 사회, 영어 과목은 영어 몰입교육을 하도록 했다”며 “영어는 내키지 않지만 배워야 하는 언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인이건 중국인이건 영어를 배워야 한다”며 “영어를 잘 한다고 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말레이시아 정치에 대해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현 정부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는 “현 정부가 그동안 정착된 여러 정책들을 쉽게 바꾸며 불안전성을 높였다”며 “지난 3월 총선에서 여당이 역대 최악의 성적을 낸 것은 국민이 현 총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언론과 정부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압둘라 바다위 내각처럼 국민적 지지를 상실한 역대 정부는 없었다”며 “언론도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정 시간을 넘겨 한 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면서 마하티르 전 총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심장병 등으로 병원 신세를 진 사실조차 망각하게 했다. 한 시대를 지배한 권력자답게 마하티르 전 총리는 여전히 거침없는 화법을 구사했다. 이 같은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잘못됐으면 잘못됐다고 말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요. 가령 나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조지 W 부시(미국 대통령)와 토니 블레어(영국 총리)에게 편지를 써서 이라크 공격을 멈추라고 강조했습니다. 전쟁을 통해 이라크 정부가 전복됐는지는 모르지만 더 큰 불행을 겪은 이라크 국민은 이 전쟁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쿠알라룸푸르=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마하티르 前 총리는
▲1925년 12월 20일 말레이시아 케다주 알로르세타르에서 출생
▲1947년 킹에드워드 7세 의과대학 입학(말라야 대학, 싱가포르)
▲1964년 국회의원 당선
▲1968년 초대 고등교육협의회 의장
▲1974년 교육부 장관
▲1976년 부총리
▲1978년 통상산업부 장관
▲1981년 UMNO(집권당) 총재
▲1981년 7월∼2003년 10월 말레이시아 총리
▲2003년 페트로나스 고문
▲2004년 퍼르다나 리더십 재단(마하티르 재단) 개원
▲2008년 개인 블로그 개설
기사입력 2008.08.03 (일) 22:22, 최종수정 2008.08.04 (월)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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