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색시 때 물 긷다 매화 자태에 넋잃어”

‘아름다운 농사꾼’ 홍쌍리 청매실농원 대표
매화마을 50여년 땀흘려 일군 ‘매화 명인’
“매화는 자연이 선물한 최고의 해독식품”


전남 광양의 섬진마을은 매화마을로 더 알려져 있다. 원래는 밤나무가 더 무성한 강마을이었는데, 이제 매화의 본고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는 반 세기 가까이 매화마을을 일군 ‘아름다운 농사꾼’의 노고가 있었다.
홍쌍리(68) 청매실농원 대표는 이제 매화를 대표하는 명인이다. 1965년 부산에서 광양으로 시집온 도시 처녀는 농사꾼이 다 돼 농사로 흘린 땀을 아름답게 여긴다. 시부모는 광양에서 알아주는 대농이었다. 시가는 논농사와 밤농사까지 짓고 있었다. 농번기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부리는 일꾼만 30명이 족히 넘었으니 도시에서 시집온 새댁의 수고가 짐작된다.

“일제 징용에 끌려갔던 시아버지가 매실나무 수천 그루를 사들여 섬진강변 백운산 기슭에 심었답니다. 도회지에서 시골로 시집와 농사일을 몰랐는데 매화꽃이 피면 그렇게 기뻤어요. 밤나무야 한국에 지천으로 많았지만, 매화나무는 없어서 밤나무들을 없애고, 산에 매화나무를 심었지요. 주위에서 반대도 많았지만 그렇게 한 덕택에 해마다 100만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청매실농원을 찾고 있어요.”

스무 살을 갓 넘은 새색시는 이제 일흔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래도 곱던 자태는 여전하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적으면 수필이 되고, 시가 된다. 진솔하고 아름답다.

◇청매실농원의 수천 개가 넘는 장독대는 매화를 매화약으로 바꾸는 고마운 생태 공장이다. 홍쌍리 청매실농원 대표는 “흙을 밥으로 삼고, 온갖 식물을 반찬으로 삼을 만큼 농촌을 사랑했다”며 “매화는 자연이 선물한 최고의 해독식품이다”고 말한다.
“원래 고향은 밀양으로 친정이 제법 살았는데, 딸이어서 그런지 친정 아버지가 많이 섭했던 모양이에요. 초등학교까지 나왔는데, 시골로 시집 와서 인생을 제대로 알았지요. 매화는 어느 날 우연하게 내 눈을 사로잡았어요. 물동이를 내려 놓고, 매화의 고운 자태에 넋을 잃었어요. 농사일에 힘들어했던 새댁이 그 길로 매화와 인연을 맺고, 백운산을 꽃동산으로 가꿀 결심을 했어요. 그에 오늘날 이런 모습으로 변한 것이지요.”

사랑을 받아서인지 매실은 무럭무럭 자랐다. 병치레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매실로 치유도 해 보았다. 매실로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청매실농원에서 매실을 재래식 항아리에 삭이면서 매실 발효액을 만들기도 했다. 매실은 음식은 물론 약으로도 사용하며 그는 매실 명인이 됐다. 드라마 ‘허준’에서 매실이 명약이라는 내용이 방송되자, 매실 인기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그는 돈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부린 게 있다면 우리 땅과 식물에 대한 욕심이었다. 철따라 민들레, 구절초, 상사화, 도라지꽃 등도 찾아다녔다. 그런 덕택에 이제는 밥상 혁명을 이야기하고, 땅에서 보람을 찾아보라고 조언까지 하게 됐다.

“농사를 지어보니, 호미와 삽이 되기도 하는 농부의 손이 진정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도시화다 산업화다 하면서 세상이 발전하는 것 같은데, 질병이 줄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밥과 먹는 반찬이 잘못돼서 그렇고, 육체노동을 안 해서 그래요. 기회 되면 시골에서 육체노동으로 심신의 피로를 없애는 게 좋아요. 부모님 자주 찾아보고 효도하는 게 실은 내 몸 돌보는 것이지요.”

농촌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을 알아본 덕택인지, 언젠가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이런 말을 했다. 그 말이 잘도 맞아떨어진 듯싶다. “남도를 빛낸 두 명의 ‘리’가 있는데, 소설가 박경리 선생과 매화 명인 홍쌍리 선생이 그분들이다.”

농사를 짓는 게 가족 건강은 물론 나라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아는 매화 명인이 유독 분주한 시기가 있다. 광양매화문화축제가 열리는 때다. 올해로 14회를 맞이하는 매화문화축제는 13일부터 21일까지 매화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욕심은 없지만 매화 홍보는 빼놓을 수 없나 보다.

“매화마을 등지에서 공연과 전시, 체험행사가 다양하게 마련됐으니, 매화 문화와 함께 섬진강의 남도 문화도 함께 느끼고 돌아가세요.”

광양=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광양, 남녘의 봄 전령사 매화 꽃망울 ‘툭툭’

겨울의 마지막 저항이 남아 있지만, 봄의 전령사들도 바쁘다. 겨울이 제일 나중에 왔다 맨 먼저 물러나는 남녘의 들판은 초록 빛깔의 보리와 마늘이 차지하고 있다. 봄기운이 느껴지자, 농부의 손놀림도 바빠진다. 새봄에 들녘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봄 식물도 낮에 비닐하우스 문이 열리는 틈을 타, 실내외 온도 격차에 적응하는 훈련강도를 높이고 있다. 내리쬐는 햇살에 성미 급한 식물은 어느새 꽃망울을 터뜨리는 게 이즈음이다. 남도 500리를 굽이굽이 휘감는 섬진강이 넓은 바다로 몸을 의탁하는 지점인 전남 광양을 찾았다. 봄소식의 시작을 알리는 꽃으로 각인된 매화꽃 향기를 접하기 위해서였다. 음력 정월 대보름 무렵에는 꽃구경을 하기에 이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매화꽃이 군데군데서 수줍은 듯 얼굴을 드러낸다. 이 수줍은 얼굴은 3월 초순을 넘어서면 무섭게 만개한다.

◇매화마을로 유명한 섬진마을 나루터에 작은 배가 정박해 있다. 강 건너가 경남 하동이다.
국내 매화 최대 산지로 불리는 다압면 매화마을을 본격 방문하기에 앞서, 광양 곳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광양제철소는 매화와 함께 광양 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1992년 종합준공된 광양제철소는 단위제철소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광양제철소는 그만큼 광양의 자랑이다. 여수와 남해반도의 방파제 역할로 수심이 깊지만 물결이 잔잔하다는 광양만이 천혜의 입지조건으로 제철소를 품은 것이다. 광양제철소에 들러 24시간 꺼지지 않는 용광로를 보면서, ‘햇빛고을’ 광양(光陽)의 타오르는 미래도 접할 수 있었다.

광양∼여수 이순신대교 2012년 완공

◇지난해 청매실농원의 매화꽃이 만개했던 당시의 모습.
광양제철소와 매화를 자랑하는 광양에 앞으로 2년 후면 또 하나의 명물이 추가된다. 바로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완공되는 이순신대교다. 완공되면 광양과 여수는 1시간 안팎이 걸리는 거리에서 10분 안팎으로 단축된다.

이순신대교는 여수 본섬에서 묘도를 거쳐 광양을 연결하는 4차선 8.55㎞ 다리로 건설된다. 주탑 2개는 270m로 서울의 63빌딩(249m)보다 높다. 눈길을 끄는 점은 또 있다. 주교각 사이의 거리인 경간(徑間)이 1545m인 점. 이순신 장군의 출생 연도와 동일한 숫자로, 경간은 일본의 아카시대교(1991m)와 중국의 시호우멘교(1650m) 등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길다. 광양만의 월드마린센터 전망대에 올라 광양만을 내려보니, 광양항은 물론·여수·순천·하동·남해 등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광양과 여수 본섬 사이에 있는 묘도는 이순신 장군이 염소를 키워 왜적을 물리쳤다는 곳으로, 전망대에서 잘 보인다.

광양만에서 옥룡면으로 이동하면 전통의 향기와 여유가 느껴진다. 중흥사와 옥룡사지, 동백림, 백운산휴양림의 명소가 나그네를 반긴다. 옥룡사와 중흥사는 신라 4대 고승인 도선 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임진왜란 당시 중흥사는 불에 타고, 승병들은 왜병과 싸움에서 모두 전사했다고 한다. 중흥사는 1963년에 중건됐지만 옥룡사는 아직 그 옛 영화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그 아쉬움은 옥룡사지 주변의 동백꽃이 메워주고 있었다. 7000여그루로 이뤄진 울창한 동백숲과 아름다운 산책길이 남도를 대표하는 동백군락지답다.

백운산엔 식물 1000여종 자라

도선 국사가 35년 머물렀다는 옥룡사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국사의 이름은 아직도 인근 마을 주민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테마체험 마을인 옥룡면 양산리 추산마을이 도선국사마을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국사의 정신을 추모하고 있다. 백운산은 봉황·돼지·여우의 신령한 기운이 이어지고 있는 영산이다. 신령한 기운을 받아서인지, 국내에서는 한라산 다음으로 다양한 식물 종(1000여종)이 자라고 있다. 섬진강의 마지막 물길이 광양만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산이다. 백운산과 함께 광양 주민들이 추천하는 산이 구봉화산이다. 구봉화산은 근대 이전 봉화를 올리던 산이다. 묘도에서 전해진 긴급한 소식을 중앙으로 이어주던 길목이었다. 정상에 올라 전후좌우를 살피니 주변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튿날 드디어 매화마을을 보기 위해 다압면 섬진마을을 찾았다. 섬진강의 유래는 잘 알려졌지만, 새길수록 마음이 포근해진다. 섬진마을에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많았다. 하동에서 광양으로 왜구가 침입하자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이곳 섬진나루터로 몰려왔다. 왜구는 급히 도망갔다. 그때부터 두꺼비 섬(蟾)을 이용해 섬진(蟾津)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사 지리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60가구가 매화나무 10만여 그루 키워

◇섬진마을 청매실농원의 뒷산에 올라 다른 나무보다 먼저 개화를 알릴 것 같은 매화나무를 손끝으로 느껴 보았다. 3월 초순이면 매화꽃 향기가 이곳에 넘쳐날 것이다. 섬진강 너머의 고장인 경남 하동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섬진강 건너의 하동군 산자락이 보이는 곳에 자리한 백운산 기슭의 매화마을은 3월이면 각지에서 온 상춘객을 맞이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 마을에서는 60여가구가 매화나무 10만여그루를 키우고 있다. 이 중 12만평 규모의 청매실농원은 매화마을의 원조와 같은 곳. 1960년대에 이곳의 홍쌍리 대표가 밤나무를 베어내고 매화나무를 심으면서 매화마을의 시작을 알렸다. 청매실농원은 주차비도 입장료도 없다. 담도 경계도 없지만 청매실농원의 수천 개의 장독대가 앞마당의 경계를 알린다. 뒷산 전망대에 오르면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매화마을과 하동군이 보인다. 화개장터와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고향인 평사리의 위치도 미뤄 짐작된다. 섬진강만큼이나 구불구불한 남녘의 고샅길들이 아름답다. 청매실농원의 뒤편에는 대숲길도 있다. 영화 ‘취화선’을 촬영한 곳으로, 봄바람에 사각거리는 댓잎소리가 들릴 정도다.

섬진강이 바다로 변하는 곳은 망덕포구. 남도의 좌절과 희망을 함께 담은 섬진강의 물길이 바다로 변하는 의미 가득한 포구다. 그 중요한 의미를 알기에 광양을 찾는 이들은 이곳에 들러,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곤 한다. 망덕포구에는 이즈음 강굴(벚굴) 수확이 한창이다. 섬진강 하류에서만 수확된다는 이 굴은 강에서 수확된다고 해서 강굴이요, 물속 깊은 곳에서 모양이 벚꽃같다고 해서 벚굴이다. 껍질의 크기가 운동선수 손바닥보다도 크다.

광양=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