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기자로 이름을 알린 박래부 한국일보 논설실장이 수석논설위원 시절이던 2006년 상반기에 내놓은 책이 있었다. 이름 하여 <작가의 방>이란 책이었다. 표지에 부제 비슷하게 넣어놓은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가 내용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책이었다. 6명의 작가는 이문열, 김영하, 강은교, 공지영, 김용택, 신경숙이었다.


이번에 접한 책은 2000년 초반까지 박래부 실장과 함께 한국일보 문화면을 빛냈던 고종석 위원이 엮은 <나만의 공간>이라는 책이었다. 2006년 11월에 첫 간행된 책의 부제는 ‘우리 시대 지성 11인의 삶과 시공간 이야기다’다. 책이 소개하는 11명의 지성은 황인숙, 홍세화, 진중권, 조선희, 이우일, 나희덕, 김정환, 김연수, 김명근, 공선옥, 강금실이다.


<작가의 방>이 우리 시대 대표 작가들을 찾아 기자가 직접 쓴 저작물이라면, <나만의 공간>은 11명이 직접 유년시절과 젊은 날의 경험과 느낌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좀 더 근원적이고 실체적이다. 솔직하다는 말과 맞닿을 수도 있겠다. 엮은이 고종석도 관찰했듯이 11명의 저자들이 밝히는 공간은 어느 곳 한군데도 동일하지 않다. 저자들의 취향과 세계관을 때로는 은은하게 때로는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을 뿐이지만, 이들이 밝히는 ‘나만의 공간’에 몇 차례를 빼놓고는 숱하게 공감했다. 유년의 기억이 얼핏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지레 짐작마저 해보았다.


시인 소설가 만화가 언론인 변호사 한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들이 들려주는 <나만의 공간>은 저자들의 직업만큼이나 다양하다. 황인숙은 고양이를 생각하는 공간, 홍세화는 파리의 묘지, 진중권의 어릴 적 자신의 공간, 조선희는 경포 바다, 이우일은 11년 동안 살았던 자신의 방, 김명근은 불암산 등. 이들이 말하는 나만의 방은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 공간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느낌이 있었다. 바로 ‘끊임없는 사색과 정신적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했다는 점이다.


작가라는 이름이 서러울 정도로 아릿한 글쓰기를 하는 저자들이지만 개성들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이들 11명의 글들도 어느 글은 가슴 속으로 제대로 전해지지만, 어느 글은 난삽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머리에만 머물다가 떠난다. 머리에 머물다가 떠나는 글은 이내 아쉬움을 남긴다. 가슴은 아니더라도 머리에 자극을 주는 문장을 발견하게 이를 내 육체 어느 곳에 저장하려고 해도, 그 문장은 어김없이 떠나고 말았다. 내가 어눌한 것일까. 일부 작가가 너무 현란함을 과시한 것일까. 그래도 대부분의 저자들의 글은 가슴에 선명한 추억을 새겨놓고 떠났다. 감사할 일이다.


p 49 (홍세화)

아리스토텔레스였나요.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했던 이가. 그런데 인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합리적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입니다. 오늘도 인간이 벌이는 전쟁은 인간이 인간의 도구적 이성이 성찰적 이성을 능가한다는 명백한 증거이지요.


p 75 (진중권)

남의 추억을 지우는 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다. 건물을 지어도 하필 원래 우리 집이 놓여 있던 방향과는 삐딱하게 지어놓았다.


p 86 (조선희)

그렇다고 해도, 아름답기로만 치면 남해나 서해바다가 훨씬 아름답다. 점점이 섬들이 떠있는 남해바다는 그림같이 예쁘다.


p 174 (김명근)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연고도 없는 서울에 혼자 올라와 동생 넷, 자식 넷을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이제 한 숨 돌릴 만하니 스르르 사그러져 훌쩍 떠나신 분, 개미같이 일만 하시던 그 착실한 분이 젊은 시절에는 용궁읍에서 김천시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던 분이란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Merdeka. http://merdek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