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를 작가라고 해야 할까. 저자라고 해야 할까. 내게 작가와 저자는 확실히 선을 가르며 인식된다. 작가는 박완서와 조정래 선생 등 소설가와 시인 등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꾸어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쓰는 이들이다. 이에 비해 저자는. 지식의 깊이와 넓이를 심화시키고 확장하는 글들로 독자들을 찾는 이들이 저자다. 인문서와 과학 관련 책을 쓰는 이들이 저자의 한 부류이다. 그렇다면 김남희는 저자로 불러야 온당하다. 그러나 저자 김남희를 작가로 불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했다. 김 작가의 1,2.3편을 꼭 구해서 읽기로 했다. 그래야 편하다. 이는 나만의 방식이니까.
책 제목은 그런대로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딕으로 표현된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만으로도 책의 내용을 제법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수식어구인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이라는 말은 맞는 표현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반어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더구나 ‘까탈스럽다’는 말은 ‘까다롭다’는 말을 관행적으로 잘못 써온 것인데, 출판사가 이를 제목의 한 부분으로 달고 지속적으로 쓰고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제목을 정하면서 나름 고민이 있었겠지) 그녀는 결코 소심하고 겁 많고 까다롭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20대와 30대의 많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고 김 작가처럼 과감하게 겁 없이 수월하게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그녀는 여성 여행객 증가에 일정 부문 공헌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어느 주간지에서인가 김남희와 한비야를 견주어 비교한 글을 잠깐 스쳐 읽은 적이 있었다. 억지로 꿰어 맞춘 흔적이 곳곳에 산재했지만, 나름 시도해볼만한 접근이라는 생각은 했었다.
김 작가에 히말라야는 이름만으로도 설렘을 안겨주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곳을 온몸으로 느끼며 접한 경험을 풀어냈을 때는 기쁨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술 작업은 늘 고통과 함께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녀의 네팔 트레킹 편에 등장하는 네팔 사람들의 특성과 모습은 낯설지가 않다.
내게도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던 머리 똑똑한 네팔 청년의 모습이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산’이라고 불린 네팔 청년은 실내 골프 연습장에서 일했다. 일주일에 이틀 대학을 다니고, 나머지 시간에는 연습장에 살면서 미래를 꿈꿨던 젊은이였다. 힌디어와 타밀어, 한국어, 영어. 말레이어에 능통했던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네팔 사람들은 그렇게 똑똑하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남아 있다.
여행 중간 중간에 책을 읽고 사색에 취하는 김남희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자연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서 MP3를 버리고 오라고 전하는 그녀의 말이 주는 진정성이 고맙다. 버릇없는 한국인으로 오해받고 독일인 부부의 지나침에 반격을 가한 일련의 모습은 물론 트레킹에 나선 외국인과 주고받은 대화들에서 그녀의 솔직함이 묻어난다.
p 140
푹 쉬다보지 산에 대한 그리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든 물질문명이 주는 즐거움도 잠시, 산에서의 간결한 생활이 주는 충만함이 그리워졌다. 결국 짐을 꾸려 포카라로 넘어오고 말았다.
p 190
나는 믿는다. 증오와 폭력과 미움보다 강한 것은 사랑과 연민임을 모든 것을 부수는 힘보다 위대한 것은 적마저 끌어안고 나가는 간디의 사랑이며, 그 느리고 고된 길이 인간을 정녕 위대하게 만든다고. 결국 그 길이 우리의 대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류의 역사에서 진정 위대한 영혼은 마르크스나 레닌이 아니라 어쩌면 간디일지도 모른다.
p 282
한 가지 안타까운 건,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미국이라는 나라와 ‘제3세계’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미국인들은 왜 이렇게 주류사회에서 벗어난(자의로든 타의로든) ‘아웃사이더’들이 많은가 하는 거다. 이런 사람들 역시사회 속에서 자리를 지키며 미국 사회의 우경화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면 좋을 텐데.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Merdeka http://merdek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