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의 비애감, 잊혀진다는 것? [세계일보 2007-05-11 11:09]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내부 다툼이 치열하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어제의 동지와도 애써 싸움을 하고 필요치 않는 과거의 모습을 들춰내는 게 정치권의 관행이라고는 한다. 하지만 최근 대통령과 전직 여당 당의장들이 설전을 벌이는 모습과 대권 주자간 주판알 소리만 요란한 한나라당의 모습은 외국에서 보기에도 추잡스러울 정도이다.
이들의 치열한 논박과 다툼의 이유가 권력 지향성 때문인지 국민에 대한 투철한 봉사심 때문인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최고 권력을 맘껏 향유한 통치자까지도 권력의 ‘드러나지 않은 힘’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기도 하는가 보다. 한국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22년간 통치자로 군림한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총리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마하티르 총리가 10일 말레이시아의 독립인터넷언론인 ‘말레이시아끼니’와 인터뷰에서 전직 총리로서 느끼는 비애감을 토로했다. 앞서 9일 마하티르는 “자신이 지명한 압둘라 바다위 총리가 최고는 아니었다”면서 지난해 잇따른 공격에 이어 또 한 차례 현 총리를 자극했다. 그는 “현재 부총리인 나집 라작이 능력은 더 뛰어났으나 젊기 때문에 연장자에게 양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고 밝혔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하는 표현으로 봐서는 현 총리를 비난하려고 작정한 모양새다.
솔직하게 통치자의 비애감을 토로한 것은 라피다 아지즈 통상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라피다 장관은 마하티르 총리가 집권 초기인 1986년에 임명한 여성 장관이다. 마하티르는 “라피다 장관이 일부 사업가들에게 자동차 수입면허를 주는 등 원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현지인우대정책’을 남용하고 있어 퇴진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당사자인 통상부 장관측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지만 2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직 장관이 그런 잘못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임명한 장관의 퇴진을 전직 총리가 요구하는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쓴 웃음을 짓게 만드는 대목은 이어지는 마하티르의 설명에서다. “그는 내가 2003년 10월 물러난 다음날부터 내게 자문을 얻지도 않았고, 나를 아는 체도 안 했다. 나는 물러나더라도 이들(관료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무게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마하티르 전 총리의 발언에 대한 해석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22년간이나 최고 권력자였던 이가 느끼는 허탈감과 비애감의 뿌리는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것에 더도 덜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단 한 가지, '잊혀진다는 사실'을 쉽게 용납 못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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