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 겐팅하일랜드'… 동남아의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놀이시설·휴양지 접목 아시아 최고 테마파크
말라카, 동서양 공존 말레이시아 문화·역사의 축소판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김동환(1901∼?)의 서사시 ‘국경의 밤’에는 일제 강점기 국경의 상황이 장엄하게 묘사된다. 시인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국경은 오랫동안 목숨을 내놓아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요 장소였다. 아직도 우리는 육로를 통해 다른 나라로 넘어갈 수 없다. 휴전선 이북이 닫혀 육로로서 기능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지금도 국경은 바로 ‘삶과 죽음’의 선이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였다가 다른 나라가 됐더라도, 우리처럼 으르렁거리는 곳이 또 있을까. 터키와 그리스, 인도와 파키스탄, 러시아와 중국 등도 살풍경의 국경 분위기를 만들어냈지만, 우리 같지는 않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도 마찬가지다. 도시 국가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를 넘어가면서 이 호젓한 ‘감상(感傷)’ 이 목울대를 적셔온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오가는 국제우등고속버스 에로라인.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한 때는 1965년. 그보다 8년 전인 1957년 말레이시아가 영국에서 독립해, 양국은 8년 정도 아픈 상처를 보듬고 동거했다. ‘쿨’하게 헤어진 뒤, 50년 가까이 큰 문제 없이 살아가고 있다. 한때는 같은 집에 살았던 형제의 감정을 유지한 채.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 남단인 조호르를 들어서며 이용한 교통수단은 국제우등고속버스쯤 되는 ‘에어로라인(Aero Line)’이 제격이다. 깔끔하고, 요금도 3만원 정도로 그리 비싸지 않다. 양국을 잇는 다리를 앞뒤로 두고 만난 두 곳의 이민국 직원들의 손놀림이 빠르다. 일사천리로 이민국의 직인을 받는다. 버스를 타면 싱가포르에서 수도인 쿠알라룸푸르까지는 5시간 안팎 걸린다.

이번 여행은 국경을 넘는 자유로운 움직임에 목표를 뒀다. ‘쌍둥이 빌딩’인 KLCC로 유명한 쿠알라룸푸르와 신행정수도인 푸트라자야 대신, 수도에서 1∼2시간 거리인 두 곳을 찾기로 했다. 남쪽의 믈라카와 북쪽 파항주의 겐팅하일랜드. 600년 전 술탄 왕국이 있었던 말라카는 복합문화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상징 같은 도시이고, 1772m 고지대에 들어서 있는 겐팅하일랜드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테마파크다.

믈라카(말라카). 싱가포르와 쿠알라룸푸르에서 2시간 안팎이 걸리는 이곳은 말레이시아 문화와 역사의 축소판이다. 이곳에서는 원주민격인 말레이 주민에다가, 이주해온 중국계와 유럽계 후손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그것도 500년 넘는 세월 동안. 동서양의 공존 및 현대와 과거의 대화가 이뤄진다는 표현은 이곳에서 잘 들어맞는다. 이슬람의 전통을 간직한 왕국이었던 믈라카는 지금도 가톨릭과 불교, 이슬람, 도교사원이 이웃하며 문화의 공존을 도모하고 있다.

◇믈라카에는 역사의 흔적이 많다. 믈라카 주변 에이파모사에 있는 서양의 대포.
조그만 어촌에 불과하던 이곳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출신 파라메스와라 왕자가 1396년 이슬람을 모태로 ‘믈라카 왕국’을 세우면서부터다. 이후 믈라카는 동서교역으로 이 지역 패권을 장악했다. 믈라카에 비운이 드리운 것은 1511년 포르투갈이 침입하면서다. 이후 향료 무역 독점을 노리며 동양진출의 거점 확보에 나선 서양세력의 각축장으로 변한다. 1641년에는 네덜란드가, 1842년에는 ‘영화조약’에 따라 네덜란드의 영향권에 놓이게 된다. 영국과 일본이 연이어 진출하고, 그 과정에서 중국인과 인도인이 대거 유입된다.

◇무슬림의 국가에 ‘카지노’는 어울리지 않지만, 1년 이용객만 200만명이 넘는다. 중국계나 힌두교도와 달리 말레이시아 무슬림은 이곳 카지노를 출입할 수 없다. 대신 이들은 케이블을 타고, 동남아 최고라고 자부하는 겐팅하일랜드에서 ‘야생’의 생물과 공기를 느끼고 호흡할 수 있다.
인구는 고작 40만 정도에 불과하지만 지금 1년에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과 맞먹는다. 그도 그럴 게 믈라카는 역사로 보면 우리의 경주와 개성이요, 거리를 오가는 이들의 피부색은 서울의 이태원이요, 관광지로서의 매력은 제주를 넘어선다. 그래서 이곳은 박물관의 도시이기도 하다. 믈라카강이 조그마한 도시를 나누지만, 하루 발품을 팔면 ‘박물관의 도시’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거리 곳곳에서 만난 서양인들이 느림과 여유의 느낌을 만끽하고 있었다.

쿠알라룸푸르 남쪽의 믈라카가 역사 체험에 좋은 곳이라면, 수도 북쪽 40km 거리에 있는 겐팅하일랜드는 말레이시아의 현대적인 여유와 자유를 상징한다. 동남아 최고 테마공원인 이곳은 말레이시아에 정착한 화교 사업가 림고통이 1970년 개장했다. 겐팅은 이곳 말로 ‘구름의 위’인 ‘운정’(雲頂)을 뜻한다. 별명처럼 겐팅하일랜드 곳곳은 구름에 뒤덮여 있다. 열대지방이지만 시원한 기운이 전신을 감싼다. 한국의 용평리조트나 에버랜드처럼 관광객들로 붐빈다. 겐팅하일랜드는 카지노와 놀이시설, 휴양지의 기능이 접목돼 있다. 이곳을 언급할 때 흔히 사용하는 ‘동남아의 라스베이거스’라는 표현이 오히려 진부해 보일 정도이다.

케이블카를 이용해 산 정상을 올라본다. 도시의 빌딩보다도 높아 보이는 열대의 나무들이 하늘에 길이라도 만들 듯이 높다. 곧잘 올라가는 케이블에도 어깨를 견주려는 듯 열대림의 기세가 여전하다. 숲 속에서 ‘사랑 놀이’라도 하는 것인지, 원숭이들의 괴성이 여유 있는 감상을 방해한다. 구름에 덮인 열대의 테마파크는 속살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이럴 때 장관은 카메라 대신에 머리와 가슴에 담아가는 법이다.

◇열대에도 눈이 내린다, 겐팅하일랜드 ‘겨율 테마 존’의 야간개장 모습.
좌우로 놀이시설이 경쾌한 흐름으로 움직이고, 호수에는 오리배 타는 재미에 빠져 있는 이들이 보인다. 이곳을 찾은 아랍인들이 두 눈동자만을 드러낸 채, 스릴 만점의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이 낯설기까지 하다. 열대 지방에서 겨울에 내리는 ‘눈’은 이곳 사람들의 ‘로망’일 것이다. 인공 눈이 쏟아지는 실내 ‘겨울 테마 존’을 찾은 이들의 표정이 마냥 즐거워 보인다.

테마파크에서 벗어나자, 녹색의 땅에서 힘껏 ‘샷’을 날리는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적어도 이곳에서 골프는 ‘사치’가 아닌 ‘운동’인가 보다. 땀을 흘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활기가 느껴진다.

파항·믈라카(말레이시아)=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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