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시내버스는 별로 없고,
모노레일과 전철이 다니는 곳도 한정됐다. 무엇보다도 1년 내내 더운 날씨에 예고하지 않고 내리는 비 때문에 자가용이 없다면 많이 불편하다고 한다. 자동차 구입비가 한국의 곱절은 되지만 외국인은 물론 현지인들이 자가용을 마련하는 것은 다 이 때문일 것이다.
도착 이튿날부터 나는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가면서 타고 있다. 택시를 이용하는 것은 극히 제한돼 있을 정도다. 그러나 환승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아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게 되면 비용이 이중으로 든다. 같은 전철끼리도 운영회사가 다르다는 이유로 환승을 하게 되면 이중으로 요금을 내야 한다. 서울의 1-4호선과 5-8호선의 운영회사가 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로 달라 환승하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고 규정한다면 동의할 서울시민이 얼마나 될까. 개찰구마저 달라 환승하려면 일단 외부로 빠져 나가야 한다. 가령 서울의 서울역에서 1호선을 타다가 4호선을 타려면 1호선 개찰구를 빠져 나가 다시 4호선으로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다. 현지인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한국인으로서는 황당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구조이니 당연히 자동차를 선호할 수밖에.
전철 역사를 유심히 살펴보니 정액권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20링깃과 50링깃 한도의 정액권을 팔고 있었다. 오래 전 서울 지하철에 적용됐던 1만원 등의 정액권이 생각났다. 매번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시간을 아낄 요량으로 50링깃 정액권을 샀다. 50링깃을 한번 사용해 보고 개찰구 승무원에게 더 편리한 게 없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현지인 대부분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정기권’을 걸고 다니는 직장인들이 눈에 띄었다. 상황을 파악해 보니 125링깃을 내고 월 정기권을 구입하면 쿠알라룸푸르 외곽으로 나가는 교외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정기권을 구입하고 시내를 돌아다니니 제법 편리하다. 주말에는 이 정기권을 이용해 시내 곳곳을 더 파악해야겠다.
쿠알라룸푸르의 전철은 버스 몇 대를 연결해 놓은 것처럼 아담하다. 그러나 이곳의 전철에서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없다. 있으면 앉고, 있더라도 자리에 앉지 않은 이들이 많다. 지하철이 아니기에 밖으로 보이는 건물과 경치를 살펴보는 여유가 느껴진다. 전철에 앉거나 서 있는 다양한 인종의 승객들은 저마다 특색을 드러낸다. 그러나 신문과 책을 보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밤 12시 가까이 운영되는 이곳에서 술을 마시고 얼굴이 붉어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다. 거리 야식 시장(Mamak)이 발달한 곳이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은 결코 전철을 타지 않나 보다. 또 음식물을 갖고 타면 벌금 500링깃을 물린다는 공지가 있어서인지 전철에서 무엇인가를 먹는 이들도 보이지 않고, 각종 물건을 파는 잡상인도 없다. 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에 개찰구 밖에서 1500원이 채 안 되는 50링깃의 우산을 파는 이들이 있기는 하다. 물론 그 우산은 조악하다.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이다.
<박종현 기자의 Truly Asia, 말레이시아-merdeka.itviewpoi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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