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오늘’ 우리사회를 달구는 쟁점들

창비 ‘A4 두 장으로 한국사회 읽기 2008∼2009’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사회는 숨가쁘게 달려왔다. 진보적 매체인 창비가 2008년 4월부터 2009년 10월 현재까지를 중간 점검했다.

단행본 ‘A4 두 장으로 한국사회 읽기 2008∼2009’를 통해서다. 지난해 출간된 같은 제목의 책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A4…’는 이메일 등으로 독자를 찾아간 ‘창비주간논평’을 엮은 책이다. 책은 정치, 사회, 남북관계, 경제, 문화 등 그간 우리 사회에 쏟아졌던 각종 담론을 담았다. 먼 과거가 아닌 바로 ‘오늘’ 우리 사회에서 치열한 쟁점이 됐던 현안을 날카로운 비판의식으로 풀어냈다. 여러 담론은 A4 두 장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석됐다. A4 두 장이 담을 수 있는 원고지 분량은 20매 이내다.

‘A4…’가 소제목의 첫 주제로 삼은 화두는 ‘이명박 정부와 민주주의’.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최근 지지율 상승이 수도권, 30∼40대, 중산층에 힘입은 바 크다”며 “(지지를 보낸) 이들에게는 집 장만과 자식교육이 무척 중요하지만, 국민과 민주주의를 밟고 가는 정권을 용서할 만큼 자존감이 박약하진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권 지지도가 높은 것은 진보진영의 무능 탓이라고 해석했다. 진보진영이 정부와 여당의 잘못을 비난하고 투쟁하는 ‘저항세력’으로 구실했을 뿐, 사회와 국가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혁할 ‘대안 권력’으로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남북 관계 경색은 이명박 정부 이후 보수주의 정권의 시각을 드러내는 키워드였다. 악화일로를 걷던 남북관계는 추석 무렵 이산가족상봉을 거치면서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조짐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질서에 변화가 일 것이라는 전망도 다수 나왔다. 세계 경제질서를 조정하는 미국의 위상은 크게 하락할 것도 대체적인 견해다. 손열 연세대 교수는 “미국의 리더십 약화가 미국을 대체할 세력의 부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지도력의 교체라기보다는 지도력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신자유주의적 표준을 강제할 능력이 줄어든 미국이 신자유주의에 부분적 수정을 가할 것이라고 손 교수는 예상했다. 세계 각국이 역사적 경험과 삶의 조건에 맞는 복합모델을 찾아내면서, 각국의 경험을 세계표준으로 만들려는 치열한 경쟁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손 교수는 이점 때문에라도 한국은 신자유주의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활정치의 새로운 의제들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아래로부터 자치를 차단해온 기존의 지방정치를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 교수는 지방 경제를 살리고 힘을 강화하기 위한 사회 일각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그의 제안은 이렇다. 지방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배분한 광역 및 기초 의회제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명목적 현상에 머물고 있는 지방정부의 정치적 중립 주문을 풀어 정치적 선택이 가능하도록 명확히 해야 한다.

신종 인플루엔자A(H1N1)를 바라보는 전문가의 시각도 담았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H1N1은 인류에 보내는 경고라고 단언한다. 최근의 이종장기 개발 연구 등에 따른 새로운 병원체가 등장하면 사람은 면역이 없기 때문에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를 비롯한 인류가 맞고 있는 구조적인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고체계를 바꿔야 한다. 우 교수는 “인간 중심의 과학에서 벗어나 생태계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며 인간 중심의 시각을 버리자고 제안한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대한제국소멸 100년… 궁궐은 어디로

건축학교수 8명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 펴내
일제에 의해 훼절된 아픔의 역사 파헤쳐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한 원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황권 국가인 대한제국의 자존심이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전통이 숨 쉬는 한양, 서울을 상징하는 공간은 많다. 궁궐은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을 드러내는 훌륭한 장소다. 서울을 상징하고 드러내는 궁궐은 국권의 상실과 함께 신음했다. 궁궐은 쉽게 헐렸고, 새로운 자리에는 서양식 근대건축물이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궁궐과 우리 역사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여러 궁궐을 살펴볼 필요도 없다. 경복궁만 살펴봐도 그렇다.

조선이 이름을 달리하기 전인 19세기 말 경복궁의 건물 수는 509개 동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광복 후에 남은 건물은 40개 동뿐이었다. 일제 강점이 국권 상실은 물론 우리 역사의 심장과도 같은 궁궐에 심대한 타격을 가한 것이다.

대한제국을 열었던 고종을 비롯한 조정이 궁궐 훼손을 지켜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선을 짧게 대체한 대한제국은 원구단을 건설하는 등 궁궐 건축을 통해 황권 강화에 적극 나섰다. 황제의 나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표출했으며, 근대국가 진입을 적극 꾀했다.

조선 궁궐의 번성과 훼절의 역사에 주목한 신간이 나왔다. 전문가들이 모여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효형출판)을 내놓은 것.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와 조재모 경북대 건축학부 교수 등 전문가 8명이 나섰다. 공저자들은 서울의 궁궐은 물론 평양의 궁궐까지 일부 다루며 건립과 훼절의 역사를 파헤쳤다.

안 교수의 ‘고종삼천지교’가 눈길을 끈다. 조선이 마지막을 향해 가던 고종 시절 한양에는 궁궐 수리와 건립을 위한 여러 노력이 펼쳐졌다. 경복궁 중건과 경운궁 건립 및 중건이 모두 공역으로 이뤄졌다. 경운궁 건설로 고종은 황제국가로서 자존심을 드러냈다. 조선의 정궁을 경복궁에서 경운궁으로 바꾼 과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운궁의 건설은 한양의 도시 중심을 바꾸었고, 도로망을 재편했다. 도시 구조 개편은 근대국가를 향한 출발이기도 했다.

순종이 즉위한 뒤, 창덕궁에 머물면서 경운궁의 위상도 변했다. 창덕궁이 황궁이 되고, 경운궁은 선황제가 거처하는 궁으로 인식된 것이다.

공저자들은 ‘제국의 소멸 100년, 우리 궁궐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주제 의식을 고민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국권 상실 과정에서 궁궐은 일제에 거추장스런 존재가 됐다. 일제의 의중에 따라 조선의 궁궐들이 수난을 겪게 된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과 임금 침소인 회상전만 하더라도 남산의 일본계 사찰인 조계사로 팔려나갔다. 그곳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장소로 사용됐다. 창경궁은 벚나무로 꾸며진 종합 위락시설로 위상 추락을 경험해야 했다. 평양의 풍경궁은 일제의 군사기지로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일본계 사찰에 팔린 궁궐 정문도 여럿이었다. 평양 풍경궁의 정문인 황건문도 그 중의 하나였다.

조선의 궁궐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서양식 근대건축물이 들어선다. 경복궁만 하더라도 일제 식민지 경영의 선전장으로 이용됐다. 일부 공간은 박람회장으로 사용되면서 일제의 국력 과시용과 선전용으로 전락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여행신간] 때로는 나에게 쉼표

"여행은 삶의 일부" 15년간 지구촌 방랑기

때로는 나에게 쉼표/정영/달/1만3000원

정영/달/1만3000원
세계일보에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를 연재하는 시인 정영이 여행 산문집을 내놓았다. 그가 내놓은 신간은 ‘때로는 나에게 쉼표’.

여행작가로 책을 내놓은 셈이지만, 그 표현과 접근은 시인의 섬세한 언어로 했다. 작가는 독자가 지역과 사람을 체계화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 것 같다. 흔히 여행기에서 접하게 되는 섬세한 분류가 없어서다. 쿠바와 멕시코, 태국, 중국, 한국의 가평 등 여러 곳의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 여행지만이 아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도 종잡을 수 없다. 오렌지 장수, 두부 장수, 닭집 청년 등 정제되지 않음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곳곳에서 그의 여행 현장 동반자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강화도의 어느 길을 걷는 이들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그래서다. 산문집은 여행기라기보다는 작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같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여행자의  시선만이 아니라, 때로는 여행지의 풍경이 주인이 되고, 풍경 속의 사람들이 동반자가 된다. 정영의 글이 갖는 장점이다. 그는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밥 먹었느냐”는 인사말을 고맙게 여기고 위안 삼을 만큼 따뜻하게 현장을 바라본다.

15년 동안 이곳저곳을 방랑한 정영은 특정 여행지에 선호를 두지 않는다. 인생이 끝날 때에야 여행이 끝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여행은 삶의 일부이고, 삶의 논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지구를 여행 중인 시인’은 하루하루를 걸을 수 있다는 것에 의미 부여한다. 죽는 날까지 아름다운 지구를 걷게 되기를 또한 희망한다.

여행 중에 그가 놓지 않은 끈은 현장주의였다. 그의 고백이 이를 드러낸다. “내가 손을 뻗었을 때 날 붙잡아준 것은, 멀리 있는 그리운 존재들이 아니었다.” 이런 말들은 시인이기도 한 여행작가의 글이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다. 이쁜 글만큼 예쁜 마음까지도 글에 힘을 보탰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조선시대의 해외파병 제대로 된 정책 못내놔”

사학자 계승범 박사 '조선시대 해외파병…'서 주장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재파병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분쟁지대 파병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론이 분열된다.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당위론과 파병의 실익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불가론이 맞서곤 한다.

국제사회 일원으로 참여한다는 당위론에는 미국의 요청이 배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파병을 둘러싼 논란에는 미국에 대한 시각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우리 사회에 영향력이 강한 엘리트 집단의 인식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이는 국제정치의 불가피한 속성일 수도 있다.

국제 정세보다는 이웃 국가와의 관계가 더 중요했던 조선시대에도 이런 현상이 빚어지곤 했다. 조선에 파병을 요청했던 나라는 중국의 명과 청나라였다. 중국의 해외 파병 요청에 조선의 엘리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를 제대로 조망하는 것은 역사 바로 알기 작업이기도 하고, 현 정세에 활용할 반면교사도 될 수 있다.

명과 청이 해외파병을 요청했을 때 조정의 대응은 시대별로 차이가 있었다. 조선 초기에 명이 파병을 요청하면 조정은 치열한 내부 논의를 거쳐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이에 따라 세종대는 몽골 원정을 이유로 만장일치로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명이 건주여진 원정을 이유로 파병을 요청했을 때, 세조와 성종대에는 국익에 따라 달리 대응했다. 세조대는 만장일치로 파병을 단행했지만, 성종대는 최소 병력만 파견해 생색만 냈다. 명을 ‘천자의 나라’가 아닌 그저 큰 나라 정도로 여긴 조선 엘리트들의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외파병은 조선시대부터 당위론과 불가론이라는 첨예한 논쟁거리를 던진다. 사진은 이라크에 교체 투입된 자이툰 부대 환송식 장면.
변화가 생긴 것은 명이 건주여진을 다시 공격한 때인 16세기 중종 시절이었다. 명의 청병칙서가 있기도 전에 명이 청병할지도 모른다는 짐작에 조정은 파병을 기정사실화했다. 조정에서는 반대 논의 자체가 없었다. 조정이 명에 대한 사대와 국익을 동일시했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파병 논쟁이 가장 격렬했던 때는 연이은 전쟁을 겪고 난 다음인 17세기 초 광해군이 통치하던 시기였다. 후금 원정을 이유로 파병을 요청했을 때 조정 신료의 다수는 파병주의자였다. 광해군은 네 번의 파병 요구에 대의명분보다는 실리를 우선시했다. 초기에는 청의 칙서 공개를 거부했고, 나중에는 파병을 공개적으로 기피하기까지 했다.

파병 이후 역사적 의미가 바뀐 사례도 있었다. 병자호란 이후 나선정벌이 대표적이다. 청의 요청에 따른 나선정벌은 오랑캐로 인식된 청에 굴복한 수치심과 북벌을 이룰 수 없었던 자괴감을 극복하는 데 좋은 소재가 됐다. 청나라가 못한 일을 조선이 이뤘다는 평가에다가 정치적 선언으로만 끝났던 북벌을 실제로 행했다는 조선의 자기합리화에 유용한 사례였다. 게다가 18세기 이후에는 나선정벌 해석에 ‘청’은 빠지고, 조선과 러시아만 남을 만큼 그 성격이 변했다. 조선의 주체성이 어느새 강조된 것이다.

사학자인 계승범 박사는 해외파병 논란을 볼 때 조선의 지식인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자신의 신간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에서다. 계 박사는 “한국 역사 전개에서 미국의 중요성보다 조선 역사에서 명과 청의 중요성이 강했다”며 “조선 엘리트의 중국 인식은 오늘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미국에 대한 시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해외파병 때마다 논란에 휩싸이는 한국으로서는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 관계의 성격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몽양, 한국 근현대사가 낳은 거인
이정식 경희대 석좌교수 '몽양 여운형' 펴내

◇암살되기 이전인 1947년 몽양의 모습.

해방정국에서 몽양 여운형만큼 실패를 거듭한 인사도 드물다. 격동의 정국에서 몽양의 삶과 일은 미완성인 상태에서 끝나 버렸다. 좌우익의 대립이 첨예했던 당대에 우파는 몽양을 공산주의라고 비판했고, 좌파는 그를 기회주의라고 힐난했다. 그는 사회주의자냐 자유주의자냐 하는 이분법적 시각으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가 걸었던 길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풍토에서는 ‘몽양’과 ‘몽양의 사상’이 더 깊이 논의되고 평가될 수 있다. 그러기에 몽양이 자서전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독립운동사에 천착해온 이정식 경희대 석좌교수는 몽양이 자서전을 남겼다면 일명 ‘몽양일지’가 백범일지와 함께 한국전기문학의 고전으로 남았을 것이라는 설명한다.

이 교수는 몽양에 대한 정당한 평가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몽양은 21세기에 더욱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단언한다. 이 교수는 1957년 몽양에 관한 기록을 접한 이래 반세기 동안 몽양에 빠졌던 노력의 결실인 ‘몽양 여운형’(서울대출판부)을 최근 내놓았다.

몽양일지가 기록으로 전한다면 담았을 내용이 ‘동양평화론’이다. 몽양은 3·1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 11월 평화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동양평화를 주창한다.

“생존의 희락과 희망과 자유와 평등과 존귀가 다 있는 가운데에 평화가 있는 것이지 두려움과 걱정과 절망과 압박과 차별이 있는 곳에 어찌 평화가 있겠습니까. 이런 뜻에서 동양의 평화를 논해봅시다.”

이 교수는 몽양의 동양평화론을 설명하면서 시대를 앞서간 독립운동가의 고민과 철학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의 학자들이 ‘적극적 평화론’을 들고 나온 때가 1960년대인 것을 고려하면 몽양의 생각이 40년 가까이 앞섰다는 것이다. 몽양의 ‘동양평화론’은 백범의 ‘나의 소원’과 ‘우리나라의 독립이오’라는 문구와 비견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몽양은 또한 3·1운동을 촉발한 주역의 한 사람으로 기록돼야 한다. 몽양은 1918년 11월 28일 전도사로 상하이 교민친목회 총무로 있으면서 주중 미국 대사 내정자의 연설을 듣는다. 파리강화회의를 피압박민족 해방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한 대사 내정자의 연설을 듣게 된다. 상하이에 와 있던 와세다대 출신 장덕수를 만나 강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를 작성하고 신한청년당을 결성한다. 톈진에 망명 중인 김규식을 불러 1919년 2월 1일 강화회의에 보내는 일을 진두지휘한다.

강화회의 파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규식은 독립선언 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조선이란 작은 나라에 아무도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강화회의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 계기가 필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결국 신한청년당에서 서울에 사람을 보내 국내에서 독립선언을 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해 국제 사회의 관심을 환기할 수 있었다.

몽양은 또 장덕수를 일본에 잠입시켰다. 장덕수는 도쿄에 잠입해 2·8선언 직전 주동자였던 최팔용을 움직였다. 2·8독립운동은 3·1운동의 시작을 알렸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상하이에 체류하던 몽양은 이처럼 김규식을 파리로, 장덕수를 도쿄로 보내 독립선언 운동의 분위기를 지폈던 것이다.

몽양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복잡다기한 평가와 달리 이 교수가 독립운동가 중에 몽양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 꼽은 이유는 오히려 단순했다. “한국 근현대사가 낳은 호걸이며 거인입니다.”

이 교수는 몽양의 인간적 매력을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말에서도 찾는다. 일제 치하 법정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하는 진술을 많이 했던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법정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인물로 몽양을 기억했다.

이 교수는 몽양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암살범 한지근과 연결해서도 드러낸다. 몽양이 저승에서 암살범 한지근을 만났을 때 반갑게 대하고, 고맙다고 했을 것으로 추론한다.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으로부터 구해주고 당해서는 안 될 치욕에서 구해 준 것으로 여길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기사입력 2008.05.06 (화) 10:02, 최종수정 2008.05.06 (화)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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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해방 이후 '한국에서의 미국화' 다룬 책 나와

미국은 동서에 걸쳐 전 세계에 퍼져 있다. 해방 직후 해방군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후 미국은 우리 사회에서도 더 이상 외국이 아니다. 때로는 혈맹으로 때로는 떨쳐내야 하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그 의미의 긍정과 부정을 떠나서 우리 안의 한 부분으로 자리한 지 오래다. 대중문화와 국제정치 영역에서는 물론 학문과 언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은 전해지고 이야기된다. 미국을 제쳐 두고서는 우리 사회를 그릴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말은 ‘영향력이 영어에만 국한돼 있다’는 말처럼 어설프다. 그 실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미국’은 언설만 넘쳐날 뿐 체계적인 설명과 연구는 부족한 게 현실이기도 하다. 미국적 징후는 넘쳐나지만 연구가 부족했다는 걸 부끄럽게 여긴 일단의 학자들이 뭉쳤다. 2005년 ‘한국아메리카학회’의 학술대회에 참여한 학자 8명이 ‘해방 이후 한국에서의
미국화’를 다룬 책 ‘아메리카나이제이션’(푸른역사)을 내놓은 것이다.

김연진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친미와 반미 사이에서’라는 글에서 한국 언론을 통해 본 미국의 이미지와 미국화 담론을 풀어낸다. 언론이 일반인의 미국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며 시기별로 특징을 찾아냈다. 김 교수는 한국 언론에 나타난 미국 이미지 변화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눠 설명했다. 1945년 이후 1950년대까지 미국은 따라야 할 최고의 모델이었다. 이 시기 미국은 혈맹이었고 자유의 수호자였다. 그러나 1980년을 전후해서 미국은 ‘적대적 타자’로 위치가 격하된다. 이보다 앞서 1969년 닉슨독트린과 주한미군 감축 이후에 미국은 배신자로 인식된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언론은 미국화를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하며 이전과는 다른 시각을 선보인다. ‘세계화로 위장된 미국화’ 같은 강제적 미국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 교수는 ‘한국 정치의 미국화에 대한 역사적 조망’에서 미국 정치제도가 3단계를 거쳐 한국에 이식됐다고 분석했다. 1단계는 대통령제 외관만 빌려왔을 뿐 내용은 권위주의 정치제도였던 때다. 그 시기는 초대 정부에서부터 5공화국까지였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김대중 정부 시절까지는 미국적 선거 유세 등 미국적 국정운영이 부분적으로 실험됐다. 부분적 미국화 단계로 볼 수 있다.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는 미국적 대통령제가 급진적으로 실험됐다. 하지만 선거 주기 불일치와 후진적 정치 지형이 지속돼 좌절을 경험했다고 안 교수는 평가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기사입력 2008.04.29 (화) 10:02, 최종수정 2008.04.29 (화)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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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강의/이영주 지음/더난 출판/1만2000원


이제 독자를 자극하지 않는 책은 설 자리를 잃어버린 것일까. 은은하고 담백한 책을 찾는 독자들이 여전하지만 책의 광고 문구들은 날로 정도를 넘친다. 책 표지부터 볼까. ‘1% 부자들만 아는 부의 법칙을 공개한다’고 한다. 뒤의 표지를 보니 ‘백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부의 법칙이 있다’고 강력한 느낌표(!)를 찍는다. 정말일까? 물론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도 안다. 서로 아는 처지이지만, 책을 만들려니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별로 효과는 없을 것 같다.


이번 주에 나온 신간 ‘부자 강의’를 거칠게 읽어 내려갔다. 오랜만에 접하는 한국 책. 그것도 쉬운 실용서적. 실용서적의 내용은 사실 머리에 잠시 잠깐 남았다가 이내 사라지는 것들이다. 창자를 뒤틀어지게 하거나 가슴을 데우는 그러한 매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실용 서적에서 ‘그대 머문 자리’와 ‘그대 떠난 자리’를 확인할 재간을 아직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부자강의도 그런 책들 중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이런 책들도 오래될 느낌과 순간의 각성은 충분히 제공한다. 그렇기에 독서의 매력이 있다.


내용을 좀 볼까. 얼개들이 대충 들어난다. 중간 제목들이 단순 경쾌하다. 부자강의 1 계획하라, 부자강의 2 분산하라, 부자강의 3 평생소득을 만들어라. 물론 편집자가 만든 문장들이겠지만, 세 문구는 확실하게 머리에 내려앉는다. 영원히 기억될지는 모르지만.


자, 이쯤 되면 이 책의 전체적 맥락과 앞으로 이끌어 갈 내용들이 대충 짐작 가능하다. 목적자금 등 계획 부문을 밝힐 것이고, 분산해야 시장 변동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할 것이고, 평생 소득을 이끌어 낼 장치를 마련하라고 조언할 것이다. 역시나 소제목들은 중간 제목들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례와 논리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글의 전개가 진행된다면 책을 읽는 처지에서 조금 안타까울 수 있다. 반전은 아니더라도 무엇인가 건져 올리면 독서의 느낌은 더 좋아지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는 ‘산’(産)을 건졌다. 157쪽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재산(財産)이라는 한자를 자세히 보면 재물 財자와 낳을 産자로 되어 있다. 재물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것, 영어로 말하자면 Asset이고, 낳을 産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산출물, 즉 Income이다.”


이어지는 169쪽에서 저자는 재산에 대한 개념과 권고 사항을 제시한다.

“개천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처음부터 자연이 만들어 놓은 개천, 즉 ‘산’(産)을 활용하여 욕심 부리지 않고 분수에 맞게 살아온 사람은 적은 산출물에도 기쁨과 만족을 느끼며 평생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남길 것도, 버릴 것도 없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은 이야기다. 이 페이지에서 내 뇌리에 확실한 남을 문구가 다가왔다. 어느 관광 가이드의 말이었다는데, “우리나라의 소는 사람이 키우지만, 뉴질랜드의 소는 자연이 키운다.”이다. 단순하면서도 내용이 있는 명문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아닌 내 가슴에 확실하게 남을 말로 보였다. 사람이 아닌 자연이 키우는 것들을 말레이시아에서도 보면서 부러워했던 처지이기에 더욱 그렇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세상 Merdeka, http://merdeka.kr


지하철 헌화가/이종인 지음/즐거운상상


전문 번역가 이종인. 그의 이름을 확실히 인지한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와 <촘스키, 사상의 향연> 등 그가 번역한 책들을 읽었으면서도 말이다. 여태까지 140권의 책을 번역한 내공 깊은 역자이지만, 고작 몇 년 전에야 그의 이름을 알았다는 사실. 이는 역으로 내가 과문한 탓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내가 그의 이름을 각인한 결정적인 계기는 <번역은 내 운명>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번역은 내 운명>은 중견 번역자들인 강주헌, 권남희, 김춘미, 송병선, 이종인, 최정수 6인이 함께 내놓은 책이다. 이 과정을 되짚으면서 나는 다른 차원의 ‘대단한 발견’을 하게 된다. 여러 편의 훌륭한 번역서보다는 한 권의 공저 속에 들어있는 이름을 통해 이종인이 보다 분명하게 인식됐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 수준에서의 대한민국 번역가의 처지는 이랬다.


이 땅에서 번역가는 그리 녹록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아니다. 출판사에는 수억 원의 매출을 올려주고도 매절 계약으로 400만원의 인세 수입을 올리는 친한 선배도 본적이 있다. 그러나 이종인은 <지하철 헌화가>에서 솔직하게, 담담하게, 약간은 자신있게 말한다. “번역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다고.” 노력하고 천착한다면 가능할 일이지 싶으면서도, 일부에게만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다.

번역가의 아내도 처음에는 많이 못 미더워했나 보다. 그는 이를 솔직히 드러낸다. 솔직함이 주는 매력은 맑은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아내는...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신은 번역을 안 했더라면 굶어 죽었을 사람.”이라고 말했다. (p 47)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번역가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정지용의 시를 빌려, 편집자를 칭송한 대목이 정겨웠다. 정지용은 <백록담>이라는 시에서 “쫓겨온 실구름 일말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는 명구를 남겼는데, 미성 씨는 나의 번역에 그런 백록담이 되어 주었다. (p 64)


번역가의 번역 이야기도 좋았지만, 아내와 장모,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 단상들도 좋았다. 투박하지만 솔직한 대목 한 군데. “한번은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내가 졸리는지 내 어깨에 기대 왔다. 그 순간 아내의 머리카락에서 똥 냄새가 나는 듯했다. 나는 그 냄새의 역겨움보다는 아내의 고생이 먼저 생각나서 갑자기 목이 메어 왔다.” (p 43)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한 문장도 있었다. 어머니 열다섯 살 때 동네 여든 되신 할머니에게 놀러가니까 “아야, 그 하얀 이빨이며 붉은 입술이 너무 곱구나.”하고 말했었는데, 어머니 자신이 이제 그 할머니의 나이가 되었다며 세월의 빠름을 한탄하셨다. (p 123) 이 대목을 읽으면서는 눈물을 흘렸다. 가슴을 타고 내리는 뜨거움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몇 년 전 늦은 나이에 장가가는 막내를 앞에 두고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말씀과 어찌나 닮았던지. 세상은 모든 어르신은 그래서 모두의 스승이다.


나이 차는 꽤 나지만 그가 들려준 경험들과 교훈들이 인생 후배의 생각과 제법 닮았는지, 여러 번 놀랐다. 그 중 하나의 대목. 사람이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물속에 빠져 곧 죽게 되면 그의 짧은 인생이 고속 필름처럼 의식의 망막 위를 스쳐지나간다고 하는데 그녀도 자신의 인생을 고속필름처럼 되새겨 보았을까. (p 210) 그 순간 나는 20대 초반과 20대 중반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서울 남산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다가 브레이크가 파열돼 중상을 입었던 때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파도를 타다가 물속에 가라앉았던 때. 용케 살아나와 바다 모래와 물을 맘껏 먹고 보름을 고생했던 때가 있었다. 그 순간 내게도 짧지 않은 인생이 스쳐 지나갔었다. 


번역가이지만 산문도 참 잘 쓴다. 출판사의 편집자는 원고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을 때, 나는 웃어넘겼다. 하지만 이제는 동의한다. 잔잔한 느낌의 이 책을 읽고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을 듯싶다. 아쉬운 점은 소개될 길이 좁다는 점이다. 유명한 문인의 산문집도 소설이나 시가 아닌 다음에야 출판기자의 눈길을 잘 끌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떠올랐다. 우리 언론 현실에서 산문은 문학으로도, 출판으로도 분류되지 않아 좋은 글이 많이 알려질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할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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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이승우 지음/마음산책/9800원


소설가인 이승우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의 글. 담백하게 써내려간 글이다. 소설을 쓰기 위한 태도를 알려주는 게 정겹다. 튀는 구석이 없고 성긴 데도 없다. 그저 잔잔한 기분을 얻을 수 있게 만든다.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이 이 책을 읽을 터이지만, 소설가와 소설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읽어도 좋겠다. 독서가들은 책은 2번에 걸쳐 완성된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소설가도 이 말에 확신을 심어 주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는다는 것은, 또는 왕가위의 <동사서독>을 본다는 것은, 그 소설과 영화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작가가 자기 소설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소설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독자가 그 책을 읽음으로써 완성된다. (p 23)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데, 글을 쓰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문인과 전문가들만이 책을 쓰던 때도 있었으나, 이제는 일반인들도 책을 맘껏 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책을 찾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이에 대한 진단도 명쾌하다.


소설을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소설을 쓰겠다는 사람은 늘어나는 이런 추세는, 아마도 단순한 수용자로서가 아니라 생산자로서 참여하려는 현대인들의 문화 욕구가 구현된 것일 테지만, 이런 현상을 문학의 민주화라고 칭하고 환영할 일인지는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p 166)


잘 읽어야 잘 쓰는 시대에 쓰기만 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됐다. 그래야 절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세계에 대한 해석을 담은 글을 만들 수 있다. 자기만의 글은 결코 우연히 탄생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책은 기억의 확장이며 상상력의 확장’이라고 말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도서관을 인류의 기억’이라고 했던 버나드 쇼에 동의한다. 물론 이 두 사람에 동의한 소설가 이승우의 견해에 동감한다. 그런 점에서 그가 서두에 한 말은 단순하지만 정답이다.


“지금 위대한 작가들도 그보다 앞선 위대한 작가들의 소설을 익으며 소설 쓰기를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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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 240+1/미노 지음/즐거운 상상/1만2000원


조금은 색다른 여행서다. 터키의 낯선 곳에서 240박 241일을 지냈다는 방송작가 출신 여행자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다.


저자는 ‘미노’를 필명으로 가진 김미정씨. 그녀는 지난해와 올해 <미노의 컬러풀 아프리카 233+1>와 <미노의 별볼일 없는 유럽 숙소여행>내놓았다. 또 라틴아메리카 여행기도 곧 내놓을 예정이란다. 세계여행을 이뤄가며 자신만의 확실한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 240+1>는 그녀의 첫 책으로 첫 세계여행의 경험이 오롯이 드러난 책이다. 처녀 경험은 언제나 강한 느낌을 주는 법이다. 보고 느낀 대로 몸이 가는 대로 여행을 즐겼던 기분을 잘도 풀어냈다. 글을 써야겠다는 부담감도 드러나지 않은 게 책의 강점이다.

그녀가 전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참 많다. 한국 여성들이 인기 있다거나 터키에서 한국이 대접받고, 터키는 여행자에게 인정을 느끼게 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만의 매력으로 이를 전하기에, 독서의 흡인력은 훨씬 강하다. 직접 경험하면서 전하는 이야기는 생명력도 있고, 독자에게 호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자각했다.

본 대로 느낀 대로 전하는 그녀만의 매력은 참 많다. 그 중 하나 옮겨본다. 책을 읽지 않은 터키 사람들을 보고 기술한 그녀의 느낌 한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이스탄불에서조차도 버스나, 지하철, 공원이나 찻집 같은 곳에서 책을 읽는 터키인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터키에도 지식인들이나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을 텐데, 그들은 모두 학교나 도서관, 집에서만 책을 읽는 것일까?
터키 아이들은 ‘책 좀 읽어라’는 잔소리 대신 ‘이런 데서 책 읽으면 바보’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나 보다. 터키는 죽어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날마다 책만 읽는 사람보다 큰소리치는 행복한 나라다.


이야기가 있는 여행을 꿈꾸는 이들. 특히 여성 여행자들에게 눈길을 끌만한 책으로 보였다. 건조하고 메마른 감정을 가진 남성 독자인 나도 제법 재미있게 읽었다.

이제 약관을 넘은 25세 터키 청년 ‘나짐’과 미노의 시선을 주요 축으로 해서 벌어지는 시간과 의식의 흐름이 있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글을 다 쓰고 난 뒤에 추억을 맘껏 채워주었던 나짐의 갑작스러움 죽음 이야기 등은 중후한 30대 남성의 마음마저 아리게 하였으니.

미노 홈피에서 발췌, 케말 파샤 초상화

물론 사보 제작 등으로 다양한 출판 경험을 축적한 <즐거운 상상> 출판팀의 노하우도 큰 힘이 됐을 것이다.


장기간의 해외여행을 하는 동안 왕복 항공권을 끊은 적이 없다는 용감한 여성. 미노의 영혼을 사랑하며 그녀의 다른 책들을 접할까 한다. 그녀의 홈페이지
MINO의 이야기를 보니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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