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정하면서 고민을 했다. 일본어와 중국어에 비해서는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열풍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미풍은 아니니, 열풍이라고 하자며 스스로 한계를 없애버렸다. 더구나 불과 몇 년 전에 비해서도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인지도는 높아진 게 사실이지 않는가.
말레이시아에서 ‘한국’과 ‘한국 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텔레비전과 영화관에 한국 드라마와 한국 영화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한국의 케이블 채널에서 야구나 축구처럼 매번 보는 것은 아니지만 씨름이나 스모보다는 훨씬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만한 게 어디인가. 배낭여행을 하던 1990년대 중반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어는 인기 만점이다. 한국 드라마나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안달인 현지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말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지는 못해도 대략 ‘감’이라도 잡았으면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UPM 등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말라야 대학의 김형종 선생에 따르면 한국어 교양과정은 수강신청 때마다 학생들이 넘친다고 한다. 초,중,고급 등 개설되는 반마다 학기 초 수강신청 첫날에 정원을 다 채워버린다고 한다. 학생들은 한국 드라마에 푹 빠진 중국계 학생들이 더 많지만 말레이인은 물론 간혹 인도계 학생들도 보인다고 한다.
이들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상상이라고 한다. 김형종 선생의 말을 그대로 적어보면 이렇다. “초급반에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이 한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했는지 각종 자료를 찾아오는 것은 보통이고, 저도 찾지를 못하는 한국어 노래와 자료들을 찾아서 담당 강사에게 갖다 주는 일이 허다해요.” 덕분에 UM을 비롯해 UKM, UPM UiTM USM 등 말레이시아 각 대학들에서 한국어 강사를 많이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보수가 작아서 고민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이는 긍정적인 흐름이다. 물론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제대로 한국 문학과 문화, 사회를 가르치기에는 여건이 턱없이 열악하다. 말레이시아 대학이나 기관들이 능력을 갖고 있는 처지가 아니기에 결국 이는 우리 정부나 관련 단체의 몫이지만, 아직 현지인들의 욕구를 다 채워주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어 인기는 사실 나도 말레이시아 도착 며칠 만에 경험했다. 집을 거주하기 전에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혹시 시간이 나면 시내 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게스트하우스에 한국인이 많이 머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에이전트에서 영어나 말레이어가 가능한 한국인을 의뢰했다는 것이다. ‘한국어 전파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는 자못 고매한 뜻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 머물러야 할 처지여서 이 좋은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물론 학교에서는 간혹 우리말 단어 몇 마디와 문장을 행정 직원들과 학생들에게 알려주곤 했다. 태국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태국인들과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한국어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서, ‘한국어 전도사’라는 나만의 타이틀에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시내에 넘치는 한국 음식점, 일부지만 관광지를 벗어난 곳은 한국어 전파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들 지역에서 외국인이 한국어로 말을 걷는 현장을 목격하거나 경험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제 한국인이 한국 고객을 대상으로 음식점을 여는 수준을 벗어나,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한국인과 현지인을 목표삼아 한국 음식점을 개업하고 있다. 방송 드라마 ‘대장금’과 한류의 여파지만, 대도시에서라도 지근거리에 한국 음식점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자랑이다.
한국 음식점으로 사업(혹은 장사)을 하는 이들이 고마워 나는 학교 주변의 음식점을 자주 찾는다. 학교 동료들과 회식을 할 기회가 생기면 한인 음식점은 물론 중국계 친구가 운영하는 한국음식점을 찾았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음식점 주방에서 3년 동안 일한 직원을 영입해 음식점을 차린 내 중국계 친구는 이제 학교 주변에 분점까지 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은 아직도 가격이 비싸 동남아 사람들에게 특별한 음식점이지만,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 중산층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우후죽순처럼 현지인들이 한국음식점을 차려, 우리의 제대로 된 맛이 잘못 알려질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 동남아 사람과 서양인들이 섞여서 ‘갈비탕’ ‘비빔밥’ ‘김치찌개’ 등을 주문하는 현장에서는 밥맛이 저절로 난다. 물론 음식점을 자주 찾는 이들이 음식을 주문하면서 쓰는 단어는 한국어이다. 이제 태권도가 한국어를 세계에 보급했듯이, 우리 음식이 한국어를 보급하고 있다. 기쁜 일이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Merdeka. http://merdek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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