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우리글을 쓰고 있다. 그런 직업을 가진 처지이지만 우리말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나마 읽어왔던 책들이 교양 책들이었으니, 순수하고 아름다운 우리글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


시간을 내서 요즘에 다시 우리 소설을 찾고 있다. 그리고 느끼고 있다. 세계문학상에 당선된 <스타일> 등 요사이에 출간된 소설을 권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단 묻어두기로 했다.


대신 고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십 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을 만나고 있다. 이를 통해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도 만나고 탁류를 쓴 채만식도 기렸다. 그들의 작품이 알토란처럼 품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접하며 나름 감동에 젖기도 했다. 좋았다. 홍명희 김소진 계용묵 등을 다시 만나는 게 한없이 따사로울 것 같다. 그리고 잊혀진 '사랑'의 감정도 되살아날 것 같았다.


나는 오늘도 아름다운 이들의 생각과 느낌, 이를 표현해 낸 정겨운 말들을 접하며 행복해 한다. '실용의 시대'에 오래된 우리 문학작품과 글을 접한다는 자부도 나름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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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처럼 몸을 움직이기 좋은 때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걷기로 했다. 쌀쌀한 기운도 물러간 듯하니, 걷는 기분이 더 좋을 것이다. 요사이는 출근 시간이 9시여서 느루 잡아 회사로 가기로 했다.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연장을 전혀 챙기지 않았다. 걷는 동안 외국어 공부할 생각도 없었고, 사진기를 누르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걷는 기쁨을 얻고 싶었다.


집 앞을 나서자마자 국민은행 직원들이 한창 판촉 행상을 하고 있다. 식목일을 앞두고 조그만 봉투에 ‘씨앗’을 담아 행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청운동에서 접한 국민은행 판촉 행사는 경복궁을 거쳐 세종문화회관, 코리아나 호텔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 행사를 위해서 이치들은 아침 일찍 출근했겠지. 나는 한가로이 이 여유를 만끽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데, 조금은 미안하다. 나눠주는 전단을 죄다 받았다.


서울 도심도 나름 깨끗해졌다. 보행자를 배려하는 문화도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얼마 전까지는 상상되지 않았던 보행자 우선주의가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모습이다.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보니 1시간 20분이 걸렸다. 출근 시간이어서 빨리 발걸음을 옮긴 탓인지, 이것저것 생각은 죄대로 못했다. 그래도 느낌은 좋았다. 걷는 동안  마주친 몇몇 보행자들이 주는 신선함은 근처에서 도래샘물이라도 마신 것처럼 상큼하다.


무슨 일엔가 단순해지는 성향이 이번에도 반복됐다. 아침에 경험한 신체의 경쾌함을 느끼려고, 오후 식사 자리에 가면서도 30분 넘게 걸었다. 행복을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른 시일 내에 기회를 만들어 퇴근 시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리라. 해거름 무렵에 한 시간 남짓 주변을 완상하며 집을 향해 걷는 기분도 상상 이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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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오랜만에 타보는 지하철. 점심 약속을 위해 1호선을 탔다. 고작 다섯 정거장 거리였지만, 나는 꽤 많은 것을 느껴야 했다.


오후 시간대였기 때문일까. 활기참보다는 나른함이 가득 묻어났다. 어색했다. 많이 낯설었다. 그러고 보니 실로 오랜만에 서울의 지하철을 탔다. 학창시절에야 지하철이 주요 교통수단이었고, 말레이시아에서도 경전철을 제법 이용했지만 서울의 지하철은 친숙함에서는 꽤 멀리 도망가 있었다. 취직한 뒤부터는  버스를 타거나 손수 운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간혹 바쁜 아침과 저녁 시간에 지하철을 타기는 했어도 낮 시간에 지하철을 탄 기억은 별로 없다. 더욱이 최근 1년 사이에는 가뭇없다.


저녁 시간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만, 쓸쓸함이 전동차를 가득 메웠다. 이럴 때는 전동차에서 상품을 파는 장사치라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이 품어내는 소리와 열기가 이 ‘축 가라앉은 분위기’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말레이시아의 경전철이 오히려 그리웠다. 열대의 나라인데도 그곳은 오늘 내가 경험한 것과 같은 분위기는 풍기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내 경험치 내에서는. 그래서 잠시 슬픔이 밀려들었다. 전화하는 소리마저도 이날은 들리지 않았다. 덕분에 고요함 대신 스산함이 또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세 번째 역을 지나면서였다. 더욱 나를 슬프게 만든 장면이 연이어 펼쳐졌다. 마치 무언극 시리즈처럼. 주인공은 나이 70대 후반은 족히 돼 보이는 어르신과 몸이 불편한 아주머니의 간절한 요구를 애써 외면한 젊은 승객들이었다. 의지도 없고 여유도 없는 젊은 승객들을 보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심지어 경로석에 앉아있던 20대 학생은 가방을 올려놓고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자리 양보를 말하는 할아버지의 청을 못 들은 체 하고 있었다. 여러 명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서야 그는 경로석을 떠났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중년층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석에 앉아있는 어른들은 몸이 불편한 아주머니가 앉을 자리를 찾는 모양을 보여도 반응이 없었다.


불현듯 이제는 씁쓸한 경험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린 아이를 안고 손잡이를 잡은 채 버스를 탔던 적이 있었다. 자리에 앉은 이들은 거울을 보거나 휴대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 손은 손잡이를, 한 손은 아이를 안고서 흔들리는 버스에서 다리에 힘을 주고 있는 이 불안해하는 30대 아저씨에게는 전혀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무덤덤한 그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 앞 자리에 앉은 그들이 미안해할까’ 염려해서 발자국을 옮겼던 방금 전의 행동에 피식 웃음을 던졌던 때가 떠올랐다.


아주머니가 전동차 출입문을 사이에 둔 좌석 양쪽을 거의 지나칠 때가지도 승객 들은 그 누구도 선뜻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순간 목덜미에서 울컥한 게 느껴졌다. 양보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몫이었다. 파키스탄이나 중동쯤에서 온 듯해 보이는 아저씨가 저 멀리서 일어났다. 그는 양쪽에 7명씩 앉아있는 14명의 승객 중 양보의 미덕을 발휘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앞으로 기회가 생긴다면 서양인으로 보이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더 잘해 줘야겠다.


물론 나는 안다. 이 날 내가 본 장면은 일반적인 서울 지하철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약속 때문에 전동차에서 급하게 내리고 식사를 하면서도 이 유쾌하지 않은 마음은 계속됐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은 버스를 탔다. 오후의 나른함 속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을 먹고서 말이다. 어서 말레이시아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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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가을부터 한국 경제계와 출판계에 ‘아침형 인간’ 열풍이 불었던 때가 있었다. 신규 출판사의 첫 책 ‘아침형 인간’이 대박을 터뜨리자, 아류들이 쏟아졌다. 분위기에 휩싸인 경영자들은 아침형 인간을 부르짖었다. 그 여파로 애매한 저녁형 인간들만 곤욕을 치렀다.


자발적인 아침형 인간이야 상관없지만, 기업의 이익이나 사회 분위기 때문에 재생산되는 아침형 인간에 관한 열풍은 왠지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그 때문인지 아침형 인간을 좋아하는 중간 관리자는 경영진에 아첨하는 아첨형 인간이라는 이야기마저 있었다. 물론 자발적이라면 그러한 아침형 인간은 축복받을 일일 것이다.


난데없이 아침형 인간을 끄집어 낸 것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접하면서 든 생각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체질화된 아침형 인간이었다. 하루 다섯 차례 기도하는 무슬림들은 참 부지런하다. 새벽 기도를 위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일상화됐다. 하기야 밤 무렵 ‘부어라마셔라’하며 들이키는 ‘알코올 시간’도 없으니 새벽 기상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아침을 알리는 닭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간에 모여서 기도를 올리는 것은 ‘부지런함’과 ‘아침 체질’이라는 것 말고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이제는 모스크 근처에 울려 퍼지는 기도소리가 낯설지 않지만, 처음에는 새벽의 낯선 기도소리가 무섭기까지 했다. 나는 희한하게도 군대 말년 시절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듣고 전율한 적이 있었는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땅에서 그런 전율의 기분을 느꼈다. 물론 종류와 정도는 다르지만 말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출근 시간이 빠른 대신 퇴근 시간 또한 빠르다. 나는 이 나라 사람들 중 오후 6시 이후에 퇴근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날씨가 무더운 열대 지방이기 때문에 서늘한 아침에 일찍 일을 시작하는 대신, 퇴근 또한 빠르다.


이제는 많이 퇴색했지만 한국에서도 일부 기업체를 중심으로 아침 출근 시간을 앞당기는 문화가 존재했던 때가 있었다. 퇴근 시간은 바뀌지 않아 결국 사원들이 회사에 머무는 시간만 늘어 조기 출근 제도는 유마무야 사라졌다. 기도 등 자발성이 결여된 두 나라와 다른 문화 때문인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인위적인 변화와 적극적인 사회 분위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침형 인간이 사회 전체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가 보다.


이 두 나라에서는 술도 마시지 않고, 저녁 일찍 가정으로 돌아가는 게 서민층과 중산층 가정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게 아침형 인간을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인지 모른다. 한국에서도 아침에 일어난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녁 약속자리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나이 드신 분들도 대부분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새벽잠이 없다고 하신다.


인위적인 모습이 없는, 태생적으로 아침형 인간인 동남아 무슬림 국가 사람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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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마인드에서 블로거 마인드로 뒤늦게라도 전환하고 싶다!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후배 기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현장을 취재할 때 “기자 000입니다”보다는 “블로거 000입니다”를 즐겨 썼습니다. 하기야 ‘대한민국의 모든 블로거들이 유명해지는 그날까지’를 모토로 걸고 있는 후배였으니, 그 깊은 뜻을 미뤄보면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 친구의 철학과 사고방식을 보고 뒤늦게 부러워했지요. 그러다가 저도 그 친구의 조언을 받아 어설픈 블로거가 된 것이지요. 전문 블로거는 물론 온라인 매체나 종이신문의 닷컴 기자들에게도 늦었지만 말입니다.


일반인이 아닌 기자의 입장에서 블로거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해 봅니다. 물론 블로거도 개인미디어의 기자라는 것은 전제하고 말합니다. 단지 여기서 기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전통적 의미의 언론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블로거가 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이 종이매체 종사자들의 특성일 듯싶네요. 일반인 전문 블로거에 비해 일반 기자들의 역량이 미치지 못하지요. 저 또한 그렇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등, 그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관심의 부족도 큰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자들의 고민이 없을 수 없습니다. 고민의 지점은 넓고도 넓고. 그 대상도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간단히 세 가지 측면에서만 기록해 봅니다. 이는 지극히 저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생각들입니다.


먼저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IT 마인드는 갖춰야할 듯싶네요. 저는 이제 시작이어서 많이 부족합니다.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 적극 공부해 볼 생각입니다. 자유자재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실력을 갖출 생각입니다. 즉시 포스팅을 하고, 갖가지 사연을 횡으로 종으로 연결하고 이를 알릴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추길 바랍니다. 아직은 실력보다는 마음이 앞선 상황입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거리’로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결국 '내용'이 주요 변수가 될 것 같네요. 중구난방이 아닌 확실한 ‘목표’와 ‘영역’을 가진 블로그가 좀 더 눈길을 끌겠지요. 이는 결국 확실한 주제를 담보한 구체적인 표현으로 가능하겠지요. 이를테면 ‘세계여행의 기록’보다는 ‘도쿄, 오사카, 일본, 일본인, 일본어에 관한 기록’이 보다 확실하게 블로거들을 끌어당기겠지요. 저만 하더라도 블로그 이름을 ‘말레이시아’로 했을 때는 포스팅 숫자에 비해 방문객이 제법 많았습니다. 저는 그 이유의 하나로 현재의 ‘서평과 동남아 이야기’보다 타겟이 확실한 데서 찾습니다. 결국 특정 분야에 전문성이 확보돼 있다면 훌륭한 블로거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을 확보한 셈이지요. IT 업계나 그 관련 일을 하는 분들이 블로거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확실한 주제를 갖춘 블로그를 운영한다면 그 의미를 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술적인 사항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겠지요. UCC와 이미지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고, 개성을 드러내는 문체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기사 문체는 종이신문에서나 보여줘야 하는 과거의 형식일 것입니다. 물론 오탈자를 되도록 없애 신뢰를 확보해야겠지요.


블로거와 기자의 결합은 어쩌면 최고 수준의 결합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내용을 풍성하게 하면서 독자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만만치 않은 파급효과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접근해서 둘의 장점을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http://merdeka.kr



 

제목을 정하면서 고민을 했다. 일본어와 중국어에 비해서는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열풍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미풍은 아니니, 열풍이라고 하자며 스스로 한계를 없애버렸다. 더구나 불과 몇 년 전에 비해서도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인지도는 높아진 게 사실이지 않는가.


말레이시아에서 ‘한국’과 ‘한국 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텔레비전과 영화관에 한국 드라마와 한국 영화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한국의 케이블 채널에서 야구나 축구처럼 매번 보는 것은 아니지만 씨름이나 스모보다는 훨씬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만한 게 어디인가. 배낭여행을 하던 1990년대 중반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어는 인기 만점이다. 한국 드라마나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안달인 현지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말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지는 못해도 대략 ‘감’이라도 잡았으면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UPM 등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말라야 대학의 김형종 선생에 따르면 한국어 교양과정은 수강신청 때마다 학생들이 넘친다고 한다. 초,중,고급 등 개설되는 반마다 학기 초 수강신청 첫날에 정원을 다 채워버린다고 한다. 학생들은 한국 드라마에 푹 빠진 중국계 학생들이 더 많지만 말레이인은 물론 간혹 인도계 학생들도 보인다고 한다.


이들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상상이라고 한다. 김형종 선생의 말을 그대로 적어보면 이렇다. “초급반에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이 한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했는지 각종 자료를 찾아오는 것은 보통이고, 저도 찾지를 못하는 한국어 노래와 자료들을 찾아서 담당 강사에게 갖다 주는 일이 허다해요.” 덕분에 UM을 비롯해 UKM, UPM UiTM USM 등 말레이시아 각 대학들에서 한국어 강사를 많이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보수가 작아서 고민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이는 긍정적인 흐름이다. 물론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제대로 한국 문학과 문화, 사회를 가르치기에는 여건이 턱없이 열악하다. 말레이시아 대학이나 기관들이 능력을 갖고 있는 처지가 아니기에 결국 이는 우리 정부나 관련 단체의 몫이지만, 아직 현지인들의 욕구를 다 채워주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어 인기는 사실 나도 말레이시아 도착 며칠 만에 경험했다. 집을 거주하기 전에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혹시 시간이 나면 시내 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게스트하우스에 한국인이 많이 머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에이전트에서 영어나 말레이어가 가능한 한국인을 의뢰했다는 것이다. ‘한국어 전파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는 자못 고매한 뜻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 머물러야 할 처지여서 이 좋은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물론 학교에서는 간혹 우리말 단어 몇 마디와 문장을 행정 직원들과 학생들에게 알려주곤 했다. 태국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태국인들과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한국어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서, ‘한국어 전도사’라는 나만의 타이틀에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시내에 넘치는 한국 음식점, 일부지만 관광지를 벗어난 곳은 한국어 전파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들 지역에서 외국인이 한국어로 말을 걷는 현장을 목격하거나 경험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제 한국인이 한국 고객을 대상으로 음식점을 여는 수준을 벗어나,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한국인과 현지인을 목표삼아 한국 음식점을 개업하고 있다. 방송 드라마 ‘대장금’과 한류의 여파지만, 대도시에서라도 지근거리에 한국 음식점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자랑이다.


한국 음식점으로 사업(혹은 장사)을 하는 이들이 고마워 나는 학교 주변의 음식점을 자주 찾는다. 학교 동료들과 회식을 할 기회가 생기면 한인 음식점은 물론 중국계 친구가 운영하는 한국음식점을 찾았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음식점 주방에서 3년 동안 일한 직원을 영입해 음식점을 차린 내 중국계 친구는 이제 학교 주변에 분점까지 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은 아직도 가격이 비싸 동남아 사람들에게 특별한 음식점이지만,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 중산층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우후죽순처럼 현지인들이 한국음식점을 차려, 우리의 제대로 된 맛이 잘못 알려질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 동남아 사람과 서양인들이 섞여서 ‘갈비탕’ ‘비빔밥’ ‘김치찌개’ 등을 주문하는 현장에서는 밥맛이 저절로 난다. 물론 음식점을 자주 찾는 이들이 음식을 주문하면서 쓰는 단어는 한국어이다. 이제 태권도가 한국어를 세계에 보급했듯이, 우리 음식이 한국어를 보급하고 있다. 기쁜 일이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Merdeka. http://merdeka.kr



 여타 남아시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 사람들도 참 느긋하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느긋함은 동일한 문화권인 인도네시아와 많이 닮았다. 모두가 정신적 수양자인 인도 힌두 문화의 영향을 받은 때문인지 그 여유는 많은 곳에서 드러나고 묻어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토착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말레이 사람들로 한정지을 필요가 있겠다. 불과 몇 세기 전에 이주한 사람들의 후손인 중국계와 타밀계는 제외하고 이야기를 하는 게 더 타당할 듯싶다.


말레이인들의 느긋함은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자들을 볼 때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버스가 정류소에 정차하기 훨씬 이전에 벨을 누르고 출구에서 기다리던 한국인 처지에서 이 느낌은 확연하게 든다. 우리와 달리 말레이인들은 운전기사가 버스 정류소에 차를 멈출 때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이들이 태반이다. 성질 급한 한국인 체질을 버리지 못한 필자가 조바심이라도 내는 듯 벨을 누르고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말레이인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이상한 사람 보듯 할 수도 있다. “참 성질도 급하다고”


버스 기사는 승객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다. 정류소에 정차해서는 좀처럼 움직이려하지 않을 경우도 많다. 경전철 앞의 환승 정류소나 순환 정류소에 정차해 있는 버스 기사는 대단한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까지 할 정도이다. 그들은 출발 직전까지도 손님들을 태우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운전기사들은 문을 잠그고 그늘에 가서 동료들과 자기네만 아는 농담으로 지친 피로를 푸는 여유를 보인다.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곳에서 버스 기사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손님들만 불쌍해 보인다. 그래도 버스를 타려는 이들 중 누구하나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들이 돌변할 때가 있다. 아직도 차장들이 있는 일부 시내버스들끼리 경쟁할 때다. 차장들이 쉴 사이 없이 목적지를 말하며 정류소에 진입하거나 떠날 때 버스들은 무서운 속도로 달린다. 이쯤 되면 승객들은 짐짝 취급을 받는다. 열대지방이라서 제아무리 실내 냉방이 잘됐다 하더라도 이는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말레이인들의 느긋함과 순간적인 돌변은 그래도 인근 인도네시아 사람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인도네시아를 처음 찾는 한국인들은 인도네시아의 그 여유로움과 불투명함에 그만 질리고 만다. 말과 행동 등 모든 게 불투명할 정도다. ‘뭉낀(아마도)’ ‘끼라끼라(대충)’ ‘벌룸 빠스띠(아직 모르겠는데)’...... . 이들은 말만했다하면 이 단어들을 동반한다. 그러니 미뤄 짐작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불투명함도 도심의 버스들이 차장들의 목소리와 함께 경쟁할 때는 사라지고 만다. 목적지를 말하고, 다음 정거장에 내린다는 ‘끼리끼리(내린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차장들의 고충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극과 극을 달리는 이 지역의 문화 양상에 지치는 한국인도 많다. 그러나 지치는 사람이 있으면 적응하는 이들도 있는 법. 말레이시아 한인회 관계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차가 출발하는 줄 알고 뛰어서 버스에 올라탔더니 40분을 그 자리에 있더라. 그러나 말레이인 누구도 항의하지 않고 먼 산 쳐다보듯이 시간을 보내더라. 머리꼭지까지 열이 받아있는 나만 이상해 보이더라. 그래서 이해하며 살기로 했다.”

 

박종현 기자의 독립 세상, Merdeka. http://merdeka.kr


결국 부낏 잘릴 경기장을 찾지 못했다. 경기장행 불발은 내게는 처음이었을 외국에서 대표팀 경기 관람이라는 이정표도 고스란히 날아가게 만들었다. 때문에 어렵게 아시안컵 축구 대회 4강에 오른 한국 대표팀이 흘릴 땀에 박수를 경기장에서 직접 쳐주지도 못했다.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다가 주차장 계단에 무단으로 세워진 오토바이를 발견 못해, 화상을 입은 까닭이다. 방금 전까지 이용됐을 법한 오토바이의 뜨거운 배출구에 반바지 차량의 다리가 접해 화상을 입고 말았다. 취재가 아닌 편안한 마음으로 외국에서 대표팀의 활약상을 가슴 뜨겁게 응원하고 싶었는데, 그런 '사치'가 내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장을 찾은 많은 교민들과 유학생들이 한국팀의 선전을 맘껏 기원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이어 열대의 나라에서 가진 경기에서 대표 선수들이 제 실력발휘를 제대로 했는지는 별개로 말이다. 병원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다리에 찜질을 하면서 경기결과를 기다렸다.


연장전 혈투 끝에 이어진 승부차기 결과 4대2로 이란을 눌렀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아시안컵에서 7년 만에 한국 대표팀이 건져 올린 4강행이다. 이제는 1988년 이후 19년만에 결승 진출 소식을 기다릴 차례다. 인도네시아에서 펼쳐진 예선전 경기부터 오늘 경기에 이르기까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힘겹게 한 계단씩을 밟고 올라가는 대표팀이 아시안컵 최종일에는 보다 기쁨을 선사하길 바래본다. 개인적으로는 25일 펼쳐질 4강전에는 꼭 경기장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외국 생활 중 힘든 때가 종종 생기게 마련이다. 익숙한 국내보다는 아무래도 어려움이 많을 터다. 갑자기 몸이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질 처지가 되면 그 어려움이 실감된다. 증상을 설명할 수도 없고, 의사나 간호사의 이야기를 듣더라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다.

의료 수준은 차이가 없고 거의 평준화된 게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언어 소통의 미진함은 고국의 병원을 그리워 하게 된다. 의료 분야처럼 '갑'과 '을'의 관계가 명확한 분야도 없는 실정에서, 외국에서는 그 '갑'과 '을'의 차이가 더욱 커진다.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강을 다루는 논의에서 환자는 철저하게 배제되는 게 현실이다. 의료 관료 정보와 지식에서 강자인 '갑'인 의사가 설명하고 제안하는 바대로 따르는 현실에서 그나마 그 '갑'의 제안마저 정확히 이해못하는 것은 '을'에게 자괴감과 불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이는 어린 아이를 둔 부모와 나이가 든 노인일수록 외국 생활을 주저하는 이유의 하나가 될 것이다. 자국의 교민이 많을수록 각종 편의 시설이 생기는 것과 동시에 의료진의 파견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각국에 자국 교민들의 정보 모임인 '저팬 클럽'의 도움으로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나서서 의사를 파견하기도 하고, 일본어 통역 가능 인력을 대기시키면서 자국 교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있다.


암팡 푸트리 병원

그런 점에서 최근 몇 년 사이 말레이시아 각 기관에서 한국어 구사 인력을 고용하는 현상은 썩 바람직한 현상이다. 한인촌이라고 할 수 있는 쿠알라룸푸르 외곽 암팡에 있는 병원에서도 의학도 출신인 한국인을 고용하고 있다.


박종현 기자의 Truly Asia, 말레이시아 http://merdeka.itviewpoint.cm


권력자의 비애감, 잊혀진다는 것?
[세계일보 2007-05-11 11:09]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내부 다툼이 치열하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어제의 동지와도 애써 싸움을 하고 필요치 않는 과거의 모습을 들춰내는 게 정치권의 관행이라고는 한다. 하지만 최근 대통령과 전직 여당 당의장들이 설전을 벌이는 모습과 대권 주자간 주판알 소리만 요란한 한나라당의 모습은 외국에서 보기에도 추잡스러울 정도이다.


이들의 치열한 논박과 다툼의 이유가 권력 지향성 때문인지 국민에 대한 투철한 봉사심 때문인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최고 권력을 맘껏 향유한 통치자까지도 권력의 ‘드러나지 않은 힘’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기도 하는가 보다. 한국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22년간 통치자로 군림한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총리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마하티르 총리가 10일 말레이시아의 독립인터넷언론인 ‘말레이시아끼니’와 인터뷰에서 전직 총리로서 느끼는 비애감을 토로했다. 앞서 9일 마하티르는 “자신이 지명한 압둘라 바다위 총리가 최고는 아니었다”면서 지난해 잇따른 공격에 이어 또 한 차례 현 총리를 자극했다. 그는 “현재 부총리인 나집 라작이 능력은 더 뛰어났으나 젊기 때문에 연장자에게 양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고 밝혔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하는 표현으로 봐서는 현 총리를 비난하려고 작정한 모양새다.


솔직하게 통치자의 비애감을 토로한 것은 라피다 아지즈 통상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라피다 장관은 마하티르 총리가 집권 초기인 1986년에 임명한 여성 장관이다. 마하티르는 “라피다 장관이 일부 사업가들에게 자동차 수입면허를 주는 등 원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현지인우대정책’을 남용하고 있어 퇴진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당사자인 통상부 장관측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지만 2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직 장관이 그런 잘못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임명한 장관의 퇴진을 전직 총리가 요구하는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쓴 웃음을 짓게 만드는 대목은 이어지는 마하티르의 설명에서다. “그는 내가 2003년 10월 물러난 다음날부터 내게 자문을 얻지도 않았고, 나를 아는 체도 안 했다. 나는 물러나더라도 이들(관료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무게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마하티르 전 총리의 발언에 대한 해석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22년간이나 최고 권력자였던 이가 느끼는 허탈감과 비애감의 뿌리는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것에 더도 덜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단 한 가지, '잊혀진다는 사실'을 쉽게 용납 못하는 것 말이다.


쿠알라룸푸르=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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