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색시 때 물 긷다 매화 자태에 넋잃어”

‘아름다운 농사꾼’ 홍쌍리 청매실농원 대표
매화마을 50여년 땀흘려 일군 ‘매화 명인’
“매화는 자연이 선물한 최고의 해독식품”


전남 광양의 섬진마을은 매화마을로 더 알려져 있다. 원래는 밤나무가 더 무성한 강마을이었는데, 이제 매화의 본고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는 반 세기 가까이 매화마을을 일군 ‘아름다운 농사꾼’의 노고가 있었다.
홍쌍리(68) 청매실농원 대표는 이제 매화를 대표하는 명인이다. 1965년 부산에서 광양으로 시집온 도시 처녀는 농사꾼이 다 돼 농사로 흘린 땀을 아름답게 여긴다. 시부모는 광양에서 알아주는 대농이었다. 시가는 논농사와 밤농사까지 짓고 있었다. 농번기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부리는 일꾼만 30명이 족히 넘었으니 도시에서 시집온 새댁의 수고가 짐작된다.

“일제 징용에 끌려갔던 시아버지가 매실나무 수천 그루를 사들여 섬진강변 백운산 기슭에 심었답니다. 도회지에서 시골로 시집와 농사일을 몰랐는데 매화꽃이 피면 그렇게 기뻤어요. 밤나무야 한국에 지천으로 많았지만, 매화나무는 없어서 밤나무들을 없애고, 산에 매화나무를 심었지요. 주위에서 반대도 많았지만 그렇게 한 덕택에 해마다 100만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청매실농원을 찾고 있어요.”

스무 살을 갓 넘은 새색시는 이제 일흔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래도 곱던 자태는 여전하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적으면 수필이 되고, 시가 된다. 진솔하고 아름답다.

◇청매실농원의 수천 개가 넘는 장독대는 매화를 매화약으로 바꾸는 고마운 생태 공장이다. 홍쌍리 청매실농원 대표는 “흙을 밥으로 삼고, 온갖 식물을 반찬으로 삼을 만큼 농촌을 사랑했다”며 “매화는 자연이 선물한 최고의 해독식품이다”고 말한다.
“원래 고향은 밀양으로 친정이 제법 살았는데, 딸이어서 그런지 친정 아버지가 많이 섭했던 모양이에요. 초등학교까지 나왔는데, 시골로 시집 와서 인생을 제대로 알았지요. 매화는 어느 날 우연하게 내 눈을 사로잡았어요. 물동이를 내려 놓고, 매화의 고운 자태에 넋을 잃었어요. 농사일에 힘들어했던 새댁이 그 길로 매화와 인연을 맺고, 백운산을 꽃동산으로 가꿀 결심을 했어요. 그에 오늘날 이런 모습으로 변한 것이지요.”

사랑을 받아서인지 매실은 무럭무럭 자랐다. 병치레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매실로 치유도 해 보았다. 매실로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청매실농원에서 매실을 재래식 항아리에 삭이면서 매실 발효액을 만들기도 했다. 매실은 음식은 물론 약으로도 사용하며 그는 매실 명인이 됐다. 드라마 ‘허준’에서 매실이 명약이라는 내용이 방송되자, 매실 인기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그는 돈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부린 게 있다면 우리 땅과 식물에 대한 욕심이었다. 철따라 민들레, 구절초, 상사화, 도라지꽃 등도 찾아다녔다. 그런 덕택에 이제는 밥상 혁명을 이야기하고, 땅에서 보람을 찾아보라고 조언까지 하게 됐다.

“농사를 지어보니, 호미와 삽이 되기도 하는 농부의 손이 진정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도시화다 산업화다 하면서 세상이 발전하는 것 같은데, 질병이 줄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밥과 먹는 반찬이 잘못돼서 그렇고, 육체노동을 안 해서 그래요. 기회 되면 시골에서 육체노동으로 심신의 피로를 없애는 게 좋아요. 부모님 자주 찾아보고 효도하는 게 실은 내 몸 돌보는 것이지요.”

농촌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을 알아본 덕택인지, 언젠가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이런 말을 했다. 그 말이 잘도 맞아떨어진 듯싶다. “남도를 빛낸 두 명의 ‘리’가 있는데, 소설가 박경리 선생과 매화 명인 홍쌍리 선생이 그분들이다.”

농사를 짓는 게 가족 건강은 물론 나라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아는 매화 명인이 유독 분주한 시기가 있다. 광양매화문화축제가 열리는 때다. 올해로 14회를 맞이하는 매화문화축제는 13일부터 21일까지 매화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욕심은 없지만 매화 홍보는 빼놓을 수 없나 보다.

“매화마을 등지에서 공연과 전시, 체험행사가 다양하게 마련됐으니, 매화 문화와 함께 섬진강의 남도 문화도 함께 느끼고 돌아가세요.”

광양=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광양, 남녘의 봄 전령사 매화 꽃망울 ‘툭툭’

겨울의 마지막 저항이 남아 있지만, 봄의 전령사들도 바쁘다. 겨울이 제일 나중에 왔다 맨 먼저 물러나는 남녘의 들판은 초록 빛깔의 보리와 마늘이 차지하고 있다. 봄기운이 느껴지자, 농부의 손놀림도 바빠진다. 새봄에 들녘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봄 식물도 낮에 비닐하우스 문이 열리는 틈을 타, 실내외 온도 격차에 적응하는 훈련강도를 높이고 있다. 내리쬐는 햇살에 성미 급한 식물은 어느새 꽃망울을 터뜨리는 게 이즈음이다. 남도 500리를 굽이굽이 휘감는 섬진강이 넓은 바다로 몸을 의탁하는 지점인 전남 광양을 찾았다. 봄소식의 시작을 알리는 꽃으로 각인된 매화꽃 향기를 접하기 위해서였다. 음력 정월 대보름 무렵에는 꽃구경을 하기에 이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매화꽃이 군데군데서 수줍은 듯 얼굴을 드러낸다. 이 수줍은 얼굴은 3월 초순을 넘어서면 무섭게 만개한다.

◇매화마을로 유명한 섬진마을 나루터에 작은 배가 정박해 있다. 강 건너가 경남 하동이다.
국내 매화 최대 산지로 불리는 다압면 매화마을을 본격 방문하기에 앞서, 광양 곳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광양제철소는 매화와 함께 광양 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1992년 종합준공된 광양제철소는 단위제철소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광양제철소는 그만큼 광양의 자랑이다. 여수와 남해반도의 방파제 역할로 수심이 깊지만 물결이 잔잔하다는 광양만이 천혜의 입지조건으로 제철소를 품은 것이다. 광양제철소에 들러 24시간 꺼지지 않는 용광로를 보면서, ‘햇빛고을’ 광양(光陽)의 타오르는 미래도 접할 수 있었다.

광양∼여수 이순신대교 2012년 완공

◇지난해 청매실농원의 매화꽃이 만개했던 당시의 모습.
광양제철소와 매화를 자랑하는 광양에 앞으로 2년 후면 또 하나의 명물이 추가된다. 바로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완공되는 이순신대교다. 완공되면 광양과 여수는 1시간 안팎이 걸리는 거리에서 10분 안팎으로 단축된다.

이순신대교는 여수 본섬에서 묘도를 거쳐 광양을 연결하는 4차선 8.55㎞ 다리로 건설된다. 주탑 2개는 270m로 서울의 63빌딩(249m)보다 높다. 눈길을 끄는 점은 또 있다. 주교각 사이의 거리인 경간(徑間)이 1545m인 점. 이순신 장군의 출생 연도와 동일한 숫자로, 경간은 일본의 아카시대교(1991m)와 중국의 시호우멘교(1650m) 등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길다. 광양만의 월드마린센터 전망대에 올라 광양만을 내려보니, 광양항은 물론·여수·순천·하동·남해 등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광양과 여수 본섬 사이에 있는 묘도는 이순신 장군이 염소를 키워 왜적을 물리쳤다는 곳으로, 전망대에서 잘 보인다.

광양만에서 옥룡면으로 이동하면 전통의 향기와 여유가 느껴진다. 중흥사와 옥룡사지, 동백림, 백운산휴양림의 명소가 나그네를 반긴다. 옥룡사와 중흥사는 신라 4대 고승인 도선 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임진왜란 당시 중흥사는 불에 타고, 승병들은 왜병과 싸움에서 모두 전사했다고 한다. 중흥사는 1963년에 중건됐지만 옥룡사는 아직 그 옛 영화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그 아쉬움은 옥룡사지 주변의 동백꽃이 메워주고 있었다. 7000여그루로 이뤄진 울창한 동백숲과 아름다운 산책길이 남도를 대표하는 동백군락지답다.

백운산엔 식물 1000여종 자라

도선 국사가 35년 머물렀다는 옥룡사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국사의 이름은 아직도 인근 마을 주민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테마체험 마을인 옥룡면 양산리 추산마을이 도선국사마을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국사의 정신을 추모하고 있다. 백운산은 봉황·돼지·여우의 신령한 기운이 이어지고 있는 영산이다. 신령한 기운을 받아서인지, 국내에서는 한라산 다음으로 다양한 식물 종(1000여종)이 자라고 있다. 섬진강의 마지막 물길이 광양만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산이다. 백운산과 함께 광양 주민들이 추천하는 산이 구봉화산이다. 구봉화산은 근대 이전 봉화를 올리던 산이다. 묘도에서 전해진 긴급한 소식을 중앙으로 이어주던 길목이었다. 정상에 올라 전후좌우를 살피니 주변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튿날 드디어 매화마을을 보기 위해 다압면 섬진마을을 찾았다. 섬진강의 유래는 잘 알려졌지만, 새길수록 마음이 포근해진다. 섬진마을에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많았다. 하동에서 광양으로 왜구가 침입하자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이곳 섬진나루터로 몰려왔다. 왜구는 급히 도망갔다. 그때부터 두꺼비 섬(蟾)을 이용해 섬진(蟾津)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사 지리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60가구가 매화나무 10만여 그루 키워

◇섬진마을 청매실농원의 뒷산에 올라 다른 나무보다 먼저 개화를 알릴 것 같은 매화나무를 손끝으로 느껴 보았다. 3월 초순이면 매화꽃 향기가 이곳에 넘쳐날 것이다. 섬진강 너머의 고장인 경남 하동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섬진강 건너의 하동군 산자락이 보이는 곳에 자리한 백운산 기슭의 매화마을은 3월이면 각지에서 온 상춘객을 맞이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 마을에서는 60여가구가 매화나무 10만여그루를 키우고 있다. 이 중 12만평 규모의 청매실농원은 매화마을의 원조와 같은 곳. 1960년대에 이곳의 홍쌍리 대표가 밤나무를 베어내고 매화나무를 심으면서 매화마을의 시작을 알렸다. 청매실농원은 주차비도 입장료도 없다. 담도 경계도 없지만 청매실농원의 수천 개의 장독대가 앞마당의 경계를 알린다. 뒷산 전망대에 오르면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매화마을과 하동군이 보인다. 화개장터와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고향인 평사리의 위치도 미뤄 짐작된다. 섬진강만큼이나 구불구불한 남녘의 고샅길들이 아름답다. 청매실농원의 뒤편에는 대숲길도 있다. 영화 ‘취화선’을 촬영한 곳으로, 봄바람에 사각거리는 댓잎소리가 들릴 정도다.

섬진강이 바다로 변하는 곳은 망덕포구. 남도의 좌절과 희망을 함께 담은 섬진강의 물길이 바다로 변하는 의미 가득한 포구다. 그 중요한 의미를 알기에 광양을 찾는 이들은 이곳에 들러,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곤 한다. 망덕포구에는 이즈음 강굴(벚굴) 수확이 한창이다. 섬진강 하류에서만 수확된다는 이 굴은 강에서 수확된다고 해서 강굴이요, 물속 깊은 곳에서 모양이 벚꽃같다고 해서 벚굴이다. 껍질의 크기가 운동선수 손바닥보다도 크다.

광양=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한국의 현대적 디자인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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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세안센터는 아세안 10개국의 공무원과 기업인을 초청해 ‘산업 디자인·패키징 워크숍’을 연다. 이번 워크숍은 22일부터 26일까지 기업방문과 현장학습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는 공무원과 기업인은 모두 32명. 아세안 회원국 10개 나라 모두 관련자를 파견했다. 이번 방문단은 지식경제부와 서울시 등에서 관련 전문가들을 면담한다. 또 현장방문 프로그램에 따라 삼성전자·LG전자·애경디자인센터·한샘퍼시스·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을 둘러보게 된다. 한-아세안센터는 “이번 워크숍에서 아세안 전문가들이 한국의 현대적 디자인의 장점을 접하며 양국 관계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배 눌러보아 단단하면 국산 대게"

죽변항서 13년째 음식점 운영 유호형 씨

경북 울진에는 남쪽의 후포항에서 북쪽의 죽변항에 이르기까지 대게를 맛볼 곳이 많다. 영덕의 강구항에서 울진 후포항과 죽변항을 거쳐 삼척의 영덕 북쪽 강구항을 잇는 도로로, 우리나라 대게의 주요 서식지 왕돌짬(울진 앞바다)이 가까운 덕택이다.

◇해병대 대위 출신인 유호형 사장이 음식점 앞에 서 있다. 음식점 상호와 함께 자리한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문구가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죽변항 인근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충청도 횟집’도 대게를 맛볼 수 있는 음식점이다. 음식점에 들어서자 날렵한 필치로 각종 물고기를 설명해 놓은 그림에 눈길이 간다. 13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유호형 사장의 시원시원한 말에도 믿음이 간다.

알고 보니, 예비역 해병대 대위이다. 충남 천안이 고향인 그가 해병대 장교로 첫 근무한 곳이 죽변항 인근이었다고 했다. ‘귀신 잡는 해병’의 장교 출신이지만 지금은 울진대게 홍보에 여념이 없다. 이곳에서는 대게값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고 자신감이 넘친다.
대신 제대로 대게를 고르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에게 좋은 대게를 고르는 특강을 들었다.

“배를 손으로 눌러보고 눈으로 보면 압니다. 배를 눌러서 단단하면 일단 안심이지요. 눌러 보세요. 단단하지요. 국산 대게입니다. 말랑말랑한 것은 일단 피해야 합니다. 러시아산일 가능성이 커요.”

좋은 대게를 접하려면 국산을 구별하는 눈은 가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외국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대게는 거의 러시아산이다. 산호초 지역에서 서식해 껍질에 하얀 석회 성분이 박혀 있어 이물질이 많다. 반면 국산 대게는 다리 살의 결이 부드럽고 깨끗하다.

그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섰을 때 의미 있는 표현을 발견했다. 가게 간판 옆에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독도는 우리 땅보다는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도 ‘독도는 우리 땅’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울진=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밀려오는 파도… 절벽 위의 집 '한폭의 그림'

드라마 ‘폭풍 속으로’ 죽변항 세트장 그럴싸
덕구온천, 국내 유일 자연 용출수 600년 역사


죽변항을 비롯해
울진은 볼거리로도 구색을
갖추었다. 죽변항에는 SBS 드라마 ‘폭풍 속으로’ 세트장이 설치돼 바람이 부는 바다의 분위기를 잘 그려내고 있다. 바다를 앞에 둔 절벽 위에 자리한 집과 교회가 낭만적으로 보인다. 예전에 찾았을 때는 갈매기들이 힘차게 날갯짓을 하더니 추위 때문인지 이날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 언덕은 2008년도에는 KBS 해피 선데이 울진편이 촬영된 곳이라고 한다. 1박2일 출연진이 이곳에서 묵으며 웃음을 선사했다.

폭풍의 언덕을 지나 대숲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른 키를 훌쩍 뛰어넘는 대나무들이 바닷가 주변에 자라고 있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대숲은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찾는 의미를 더하게 한다.

대숲을 돌아 다시 언덕 위로 오르니 죽변등대가 자리하고 있다. 1910년 11월 24일 첫 불을 밝힌 이래 100년 가깝게 죽변항 주변을 항해하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해 왔다. 죽변등대는 대한제국 시절에 착공돼 내부 1층 천장에는 원래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자두꽃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태극 문양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죽변항을 빠져 나와 북으로 달렸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7번 국도의 낭만을 채 담지도 못했는데, 강원 삼척과 경계지에 다다른다. 굴곡진 도로를 미처 빠져나오지도 못했는데, 울진·삼척 지구의 고포항에 다다랐다. 고포항은 인근의 민물이 들어오지 않아 청정지역이다. 고려시대부터 왕실에 미역을 진상할 수 있었던 것도 깨끗한 물 덕택이었다
.

고포마을이 40대 이상 중년에 낯설지 않은 까닭은 1960년대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 때문. 고포 마을은 마을 도로를 경계로 행정구역이 강원 삼척 월천리와 경북 울진 나곡리로 갈린다. 사실은 같은 마을인데, 민가의 지역 전화번호가 ‘033’과 ‘054’로 나뉜다. 가구 수도 각기 17가구로 똑같다고 한다.

몇 발자국만 건너면 이웃이 다른 지역이라는 것은 선거 때면 확연히 드러난다고 했다. 선거벽보가 있던 시절은 물론 지금도 출마자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통합 논의는 없었느냐”는 물음에 “어느 지방자치단체가 마을을 포기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이어 “중앙정부가 개입하지 않고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민들로서는 나쁘지 않다는 대답도 나온다. “경북과 강원의 지자체로서는 서로 지기 싫어서 투자를 꺼리지 않은 어촌일 것입니다.” 남북한 대치 상황에서 선전마을이 있듯, 이곳도 지자체의 능력을 입증해 보이는 대상이 되는 마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울진에서는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울진이 자랑하는 온천은 울진 남쪽과 북쪽에 두 곳이 있다. 남쪽의 백암온천은 후포항에서 가깝다. 천연알칼리성 라듐 온천으로 유명한 이곳의 온천수는 53도. 조선 광해군 시절에도 기록이 있을 만큼 역사가 오래됐다. 그래서 인근에 국내 대표적인 리조트를 포함해 숙박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북쪽의 덕구온천은 죽변항에서 가깝다. 1년 내내 42∼43도를 유지하는 국내 유일의 자연 용출수다. 이곳의 역사도 600년이 넘었다. 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1979년 이전까지 주민들이 덕구계곡의 노천탕을 이용했을 정도로 이름을 알려왔다. 2009년 12월 31일 경북에서는 처음으로 보양온천으로 지정됐다.

울진=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죽변항 위판장 꿈틀꿈틀 대게 천지 '울진'

26∼28일 국제울진대게축제
"울진 대게야말로 진짜 대게"…영덕 그늘에 가려서 빛 못봐


세상이 항상 1등만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2등도 3등도 꼴찌도 기억의 언저리에 남는다. 그래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개그의 멘트가 인기를 끄는 것은 현실을 교묘하게 잘 반영한 덕택이다.

◇정월 대보름을 앞둔 이즈음 울진대게의 주요 경매장의 하나인 죽변항은 어느 때보다도 분주하다. 붉은 울진대게들이 아침부터 죽변항 위판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경상북도 울진을 찾을 때면 이곳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2등을 하는 고장도 없지 싶다.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라는 개그 프로그램의 대상이 지방자치단체로 확대된다면, ‘1등만 기억하는…’ 문장은 울진에 딱 들어맞는다. 세상살이 나이테의 무늬와 주름이 제법 잡힌 이곳 주민들의 생각이 그랬다.

“울진예? 강원에서 경북으로 넘어온 게 한 세대 넘지 않았는교? 강원 동해안이라는 생각은 여전하지예. 울진의 대표 상품이 대게와 송이, 금강송 아닙니꺼? 근데 대게는 영덕, 송이는 양양, 금강송은 삼척이 제각기 1등이라고 해서 문제지. 타지 사람들도 울진은 모다 그늘에 가려 2등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2등도 대단하다’는 기자의 생각과 달리, 이곳 주민들은 이런 현실이 못내 아쉬운가 보다. 타지인들이 잘 모르는 현실을 알려주겠다는 심산인지, 사설이 꽤 길다. 어느 공무원의 설명이 이랬다. “대게만 해도 그래요. 영덕의 강구항이 위판장이 커서 이곳저곳에서 많은 대게가 몰리는 것 아닙니꺼. 연안 해역에서 잡는 게 진짜 우리 대게 아닙니까. 그래서 울진대게야말로 진짜 대게라는 것입니다.”

울진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려면 꽤 노력을 해야 한다. 서울에서 출발하려면 경부고속도로나 중부고속도로를 타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강릉까지 가서 다시 삼척을 거쳐 7번 국도를 이용해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강원도 동해안을 이용해 서울과 연결되는 몇 안 되는 영남 지역이다.

그런 수고를 감내하는 보상은 충분하다. 하지만 2등에 대한 울진 사람들의 안타까운 속내를 조금이나마 공감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숙소에서 일어나야 했다. 사위가 고요한 새벽 5시 30분. 온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기운을 헤치며 울진이 자랑하는 포구인 구산항과 죽변항을 연이어 찾았다. 새벽에 찾은 곳은 구산항. 전날 어촌계를 통해 이날 새벽에도 위판장에서 문어가 경매된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구산항은 사시사철 연근해에서 잡은 문어 위판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는 곳. 문어는 울진과 인근 지역에서는 설 차례 상에 오르는 특별 대우를 받는 어종이라고 한다. 목포와 신안 등 전남 일부 지역의 애경사에 홍어가 받는 각별한 대우만큼의 위치를 지녔다고 한다.

◇울진 기성면 구산항에서 죽변면 죽변항을 향해 해안도로를 달리다 만난 일출 장면. 이곳을 찾은 한 사진작가도 막 모습을 드러낸 ‘불덩이’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동해를 건너온 태양이 저 너머에서 미처 얼굴을 내밀기도 전에 문어들이 몸통을 드러낸다. 어민들이 부지런히 잡아온 문어를 풀어놓는다. 옷깃을 파고드는 새벽 포구의 차가운 바람은 잊은 듯, 작은 위판장은 어느새 후끈 달아오른다. 위판장 옆으론 밤새 어민들을 도운 것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고깃배들이 제 모습을 차가운 물속에 비춰보고 있었다. 물속에 어린 모습은 카메라의 뷰 파인더에 담는 모습보다 치열하면서 낭만적이다. 적어도 문어 위판장으로 이곳은 2등이 아니라 1등으로 보였다. 흔치 않은 위판장의 문어 경매를 보고 나니, 배꼽시계가 아침 시간을 알린다. 어시장 인근에서 물곰을 재료로 한 곰치국으로 속을 데우니, 새벽의 냉기가 이내 사라진다.

서둘러 찾은 곳은 죽변항. 죽변항은 남쪽의 후포항과 함께 울진을 대표하는 항구다. 차가운 날씨 때문에 위판은 오전 9시는 넘어야 펼쳐진다고 했다. 기온이 내려가면 위판장에 깔린 대게들이 스스로 다리를 떼어내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란다. 위판이 속전속결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겨울부터 날씨가 완연하게 풀리기 전까지 죽변항 위판장은 온통 ‘대게의 나라’다. ‘게판’이 따로 없다.

◇죽변항에 정박한 고깃배들의 등불 사이로 간밤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대게잡이 배가 보인다. 설 명절에서 정월 대보름으로 이어지는 때에 죽변항은 대게잡이 배들로 분주하다.
지난해와 달리 어황이 좋은 올해의 경향은 이날도 이어진 듯, 어민들과 중매인들의 말과 행동에서 활기가 느껴진다. 위판을 마친 60대 어민 부부는 “올해는 대게 풍어”라며 “위판장에서는 대게의 다리가 2개 이상 잘린 것은 경매도 못한다”고 했다. 간혹 경매도 안 된 대게들을 떨이로 구입해 외지인에게 재판매하는 이들이 있어 울진 대게의 명성에 흠집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촌계에서도 “위판에 실패한 대게는 사지도 팔지도 말자”는 방송이 연이어 나온다. 명품 대게의 품위를 유지하려는 나름의 처방이다.

◇부드러운 맛과 향으로 미식가를 불러모으는 울진대게(위)와 돌문어.
대게에 대한 울진 사람들의 자부심은 뿌리 깊다. 기록이 말해 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평해군과 울진현의 대게를 자해(紫蟹)라고 표기했다. 이 지역의 주요 특산물로 인정한 것이다. 대게는 죽해(竹蟹), 대해(大蟹), 발해(拔蟹)로도 불리는데, 몸통에서 뻗어나간 다리의 모양이 대나무처럼 곧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 대나무가 많이 자라 붙여진 지역명인 죽변항처럼 대게와 어울리는 곳도 없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대게 하면 영덕대게로 인정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울진대게보다 영덕대게가 이름을 알리게 된 과정에 대한 울진군의 설명은 이렇다. 불편한 교통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해산물 소비자가 많은 서울과 대구 등으로 이어지는 교통이 편리한 영덕으로 대게를 많이 반출해, 자연스럽게 영덕이 부각됐다.

그 아쉬움을 메우기 위해 울진은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 주요 항구와 포구를 비롯해 각 지역에서 ‘2010 국제울진대게축제’를 연다. 살이 올라 대게가 가장 맛있는 때가 설 이후 초봄까지인 것을 고려해, 지난해 축제보다 한 달 이상 앞당겼다. 그 몇 주 뒤에 이웃인 영덕에서도 영덕대게축제를 마련하기로 해, 외지인 처지에서는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울진=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30년 거주 한국인 가이드 강홍미 씨

“잘츠부르크의 매력은 포용성”

잘츠부르크를 다녀오면서 이곳에 30년 가까이 거주한 한국인 가이드 강홍미(51)씨를 소개받은 건 행운이었다. 그는 한국어와 영어, 오스트리아어로 활동할 수 있는 가이드로 이름이 나 있었다.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교직원으로 일하는 강씨는 “잘츠부르크의 매력은 지속성에 있고,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는 포용성에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한 세대 가까이 고국을 떠난 이의 한국어 실력이 여전해 보인다. “그렇지 않아요. 수십 년이 흘렀고, 그간 한국에 다녀온 게 한 번뿐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새로운 용어를 모르겠어. 1980년대에는 현금지급기라는 단어도 몰랐어요. 인터넷을 모른다는 넷맹이라는 단어도 몰랐는 걸요.”

변치 않은 한국어 실력은 관심과 노력 덕분이었던 것 같다. 한국인 여행자가 오면 모르는 것을 물었고, 인터넷을 통해 고국 소식을 꾸준히 접했다. 인구가 적은 오스트리아가 복지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제가 올 때인 1980년대 초반에는 이곳 사람들이 한국을 전혀 몰랐어요. 이제는 달라요. 저도 감동하는 걸요. 언젠가 고국의 한글 사이트에 접속해서, 오스트리아 연락처를 남겼더니 ‘불편한 게 없느냐’고 인터넷 업체에서 전화가 오는 거예요. 이런 자세로 세계인을 상대로 고객 감동을 불러일으킨다면, 한국에도 수십 개의 ‘잘츠부르크’가 만들어질 겁니다.”

잘츠부르크=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잘츠부르크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를 만나다

게트라이데 거리 예쁜 그림 간판들 눈길
모차르트가 외롭고 힘들 때마다 찾은 곳


잘츠부르크에서 도보 여행자의 발길을 잡는 곳이 게트라이데 거리다. 여행자가 방송국 카메라 기자라면, 이 거리에서 꽤 오랫동안 서성거릴 듯하다. 카페와 음식점, 기념품점 등이 거리의 양쪽을 가득 채웠다. 어느 가게 하나 모나지 않고 아기자기하다. 이곳에서는 눈이 피로하지 않다. 풍경을 보듯 눈이 호사를 누린다. 좁은 골목 사이로 보이는 예쁜 간판은 이곳 걷기 여행의 백미다. 네온사인에 휩싸인 다른 도시의 휘황찬란한 간판과 달리, 소박한 미를 간직하는 이곳이 한없이 정겹다.

◇모차르트 생가.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 잘차흐 강과 게트라이데 거리에서 가까운 이곳에서 살았다.
왜 그럴까. 모나지 않은 점도 좋지만, 글자보다는 그림으로 간판이 만들어진 게 재미있다. 그림으로 만든 간판이라. 오래전 글을 못 읽는 이들을 위해 상징성 강한 그림 간판으로 내건 게 계기가 됐다. 상인들의 프로의식이 이만 하면 어느 군주의 애민정신에도 뒤지지 않는다.

이왕 들어섰으니, 가게의 간판을 쳐다본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주전자 모양의 간판은 무엇을 나타낼까. 이방인 처지에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데 그림을 보고 상상한 그대로다. 주전자와 음료를 파는 가게다. 그렇다면, 가위 모양의 간판은.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 본다. 옷 수선 가게다. 그 옛날 이곳에 들어선 글을 못 읽은 사람은 한없이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당시의 예술가처럼 오늘날의 여행자는 이 거리에서 예술적 의미를 찾아본다. 생활 속에서 구현되는 디자인 예술이 따로 없다. 물론 이곳에는 서민들의 삶도 스며들었을 것이다. 정원의 거리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올 때마다 싫증이 안 난다는 게 이 거리의 장점이다. 수백 년 지난 가게의 간판만 수백 개가 넘지 싶다. 그래도 주의할 게 있다고 한다. 가게의 일부 후예들이 약간은 질 떨어지는 물품을 판매하는 일도 있다는 게 오래된 여행자들의 조언이다.

간판 구경을 마무리할 때쯤 잘츠부르크의 상징인 모차르트의 생가를 접했다. 그의 원래 이름은 테오필루스 모차르트. 그러다가 ‘신의 총아’라는 뜻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로 이름을 바꾼다. 14세 때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여행은 이처럼 한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을 온전히 바꿀 수 있다.

모차르트 생가는 4층짜리 노란색 건물이다. 그가 태어난 때는 1756년 1월 27일. 25세까지 잘츠부르크에 머물렀던 그가 생가에서는 17년을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1917년 국제 모차르테움 협회가 그의 생가를 인수하면서 생가의 기능이 바뀐 것. 1층에서부터 4층까지 곳곳에 그와 가족이 사용한 듯한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의 유물이 보인다. 거장의 체취는 이렇게 후대에 전해진다.

◇그림으로 내건 간판이 아름다운 잘츠부르크의 게트라이데 거리. 아기자기한 간판들이라 자주 쳐다봐도 눈이 피곤하지 않다.
기념관에서는 각종 연주회도 열린다. 그중 7월과 8월의 토요일 밤에 들려주는 ‘더 베스트 오브 모차르트’ 콘서트가 인기 최고라고 한다. 촛불을 켜 놓은 채 듣는 모차르트 음악은 어떤 선율일까. 눈 내리는 겨울의 선율과는 다를 것이다. 오스트리아와 잘츠부르크가 문화 산업의 핵심과 출발지로 삼을 만한 곳이다.

오스트리아의 공적인 기관만 그런 게 아니다. 모차르트 음악의 공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바로 모차르트 효과(모차르트 이펙트)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아이들이 영특해지고, 수리과학 실력이 좋아진다는 믿음 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의 연구이다 보니, 신뢰도도 높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고독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선율을 남긴 것과는 별개로. 그 고독에 생전의 모차르트는 잘자흐 강의 흐르는 물길 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봤다고 한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그가 찾은 곳이 게트라이데 거리였고, 잘자흐 강이었던 셈이다. 35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온 힘을 다해 대작을 만든 과정은 고독에 뿌리를 둔 것인지도 모른다. 그를 느끼고 온 뒤에 듣는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바니’의 선율이 이전과는 다르다.

잘츠부르크=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눈 속에 파묻힌 古都… 중세의 정취 오롯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가는 기차는 빈의 베스트반호프(Westbahnhof 서부역)에서 타게 됐다. 잘츠부르크까지 가는 동안 중간에 내려 여러 도시를 둘러보고 싶은 생각이 간질간질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이라면 중간역에서 내려 곳곳을 둘러본 뒤 다음 기차를 타도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일행에서 홀로 빠져 나와 시간이 한정돼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기대했다. 목적지인 잘츠부르크가 이 아쉬움의 상당 부문을 채워줄 것이라고. 그게 아니라면 고작 하루 일정으로 잘츠부르크행 기차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호헨부르크성에서 내려다보는 잘츠부르크 시내 전경. 하얀 눈이 내리자 천년 고도가 잘차흐 강과 함께 은은한 분위기 속에 잠겨 있다.
폭설로 기차는 출발 시각이 20분 늦춰졌지만, 여행자의 마음은 푸근하다. 차창 밖에 내리는 눈을 보니 동유럽의 겨울이 연상됐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차창 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 내리는 오스트리아 농촌을 쳐다보다가 3시간도 안 돼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미리 약속해 둔 한국인 가이드 강홍미씨가 기다리고 있다. 1983년 한국을 떠나, 4반세기 넘게 잘츠부르크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10명이 안 되는 한국 교민 중의 한 명이다. 잘츠부르크에는 동양인이 별로 없다. 일본과 중국에서 온 이민자들과도 친하게 지낸다고 했다. 한정된 시간을 고려해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오스트리아에 합병되던 1816년 잘츠부르크는 작은 공국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8세기 이후 가톨릭의 대주교와 추기경이 종교와 정치 부문에서 수장 역할을 하면서 가톨릭 문화의 중심지로 역할을 다해왔다. 잘츠부르크의 시작은 기원전 15년 고대 로마 사람들이 정착한 주바움(Juvavum)이란 마을에 두고 있다. 20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다.

눈 속에 파묻힌 잘츠부르크는 유럽에서 가장 변하지 않은 도시처럼 보인다.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 동양의 이방인이 보기에는 한없이 안정돼 있다. 현대의 시간 속에 예전의 공간이 함께하는 듯한 느낌이다. 중세풍을 연상시키는 좁은 거리와 성당, 대학, 가게…. 예쁜 도시다. 체코의 프라하와 함께 잘츠부르크를 ‘북쪽의 로마’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잘츠부르크의 요새라 불리는 호헨부르크성은 걷기에 적당한 경사도를 지녔다. 육중한 문(위)를 열고 들어가면 중세의 모습이 펼쳐진다.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무료해 할 것 같다. 동양에서 온 여행자야 그렇다 치지만 유럽에서 온 관광객도 심심할 수 있다. 이런 느낌을 주는 도시에 해마다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츠부르크에서 오스트리아 남성과 결혼해 자식 둘을 이곳 대학에 보낸 강홍미씨의 설명은 이랬다. “잘츠부르크의 외관은 변하지 않아요. 오래된 간판들, 예술가가 살던 집들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게 이곳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은 까닭은 하루 평균 10회, 1년 평균 4000회 이상의 각종 축제와 행사가 이곳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지요.”

계획하지 않고 방문하면 괜한 수고를 할 가능성이 농후한 다른 지역과 달리, 잘츠부르크는 무작정 방문해도 즐길 게 있다는 이야기다. 콘서트와 음악회 관람은 그 좋은 사례들이다. 18세기 이후 모차르트의 도시로 알려진 곳은 이렇게 특징을 드러낸다. 연중 계속되는 각종 행사는 모차르트 탄생 250년을 기념한 2006년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올해 1월 말에도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 탄생주간 축제’를 열고 있었다. 이 축제는 해마다 2월 초까지 이어지는 음악회다.

그래서일까. 잘츠부르크는 음악의 선율이 흐르는 듯하다. 모차르트가 이곳을 알리기 전에는 소금이 알렸다. 소금(Salz·잘츠)의 성(Burg·부르크)답게 잘츠부르크는 ‘오래된 신선함’을 미덕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소금을 실어 나르는 역할은 한 ‘소금물이 흐르는 강’ 잘차흐 강에도 피아노의 선율을 타고 눈이 내린다. 다리 위로 멀리 성곽인 호헨부르크도 눈에 모습을 감추었다.

400년 넘는 공사로 1400년대에 완성된 오래된 성답게 웅장하다. 맑은 날에는 알프스산맥이 보인다는 설명에 눈 오는 날 굳이 성곽에 올라가 본다. 천년의 고도와 하얀 낭만을 실은 백년설.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마침 성 위로 올라가는 리프트를 가동하지 않고 있었다. 성곽을 찾아 30분 동안 거니는 기쁨을 누렸다. 성 안에는 공무원 신분의 주민 10여명이 거주하면서 업무를 보고 있다고 했다.

◇미라벨 정원의 나무와 건물들도 백설로 외피를 두르고 있다.
높은 성채에서 보니 방금 지나온 미라벨 정원과 안드레 성당이 사이좋게 눈에 들어온다. 궁전을 품에 안은 미라벨 정원은 바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 영화팬의 가슴에 남아 있는 곳이다. 마리아와 아이들이 ‘도레미송’을 부르던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넓은 정원에 성도 보인다. 17세기 잘츠부르크 대주교였던 볼프 디트리히 폰 라이테나우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 알트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여인을 사랑하는 힘이 후대에 이런 화려한 문화를 남긴 것이겠지. 미라벨 정원을 찾았다. 눈 내리는 정원의 언덕에 올라 뷰파인더에 담는다. 그때의 영상이 떠오른다. 마침 빙판길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잔 모래와 자갈을 거리 곳곳에 뿌리는 이가 있다. 제설을 위해서 염화칼슘보다는 자주 이용되는 게 모래와 자갈이라고 한다.

대성당이 있는 쪽은 구시가에서 잘차흐 강 건너편으로 신시가지가 보인다. 그러고 보면 잘차흐 강은 잘츠부르크의 한강이다. 다만 차이점은 신시가지는 우리의 강남이 아니다. 새롭게 들어선 게 아니다. 단지 수백년 전부터 그리 불렀다. 변하지 않는 도시이니, 잘츠부르크에 개발 열풍이 몰아쳤을 리는 없다. 지금도 인구는 16만명 남짓이다. 도심에 자가용이 지나다닐 수 없는 전통을 간직한 잘츠부르크가 그 인구보다 수십 배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이유일 것이다. 잘차흐 강은 하얀 눈발 속에서 지금도 모차르트의 선율을 타고 도시를 나누며 흐르고 있다.

잘츠부르크=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다뉴브 강 바하우 계곡의 풍광 ‘백미’
… 유네스코 ‘문화경관’ 지정

천년 역사 멜크 수도원 신성함의 극치
소설 ‘장미의 이름’ 무대 장서 10만여권 빽빽 중세 문화의 요람

여행과 독서는 ‘이란성 쌍둥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하는 점에서 닮았다.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이 가능한 것도 비슷하다. 간혹 짙은 고독이 몰려올 때는 흡사 일란성 쌍둥이 같다. 외부에 있으면서 ‘나’의 내부로 찾아드는 게 여행과 독서다. 둘이 결합하면 더 환상적이다. 낮의 열정을 뒤로하고 낯선 곳 숙소에서 펼쳐드는 책이 여행의 외로움과 묘하게 어울린다. 오스트리아를 찾고 나서 못내 아쉬웠다. 이번 여행에서 3권의 책을 챙겼으나, 가슴속에 담아둔 책을 미처 가져오지 못해서였다. 가슴을 공허하게 한 책은 ‘움베르토 에코’의 명작 ‘장미의 이름’. 명작 탄생에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멜크(Melk) 수도원을 접하기로 했을 때, 아쉬움은 책망으로 이어졌다. 책에서 읽은 내용은 생각나는데, 문구는 가물거리기만 한다.

◇유럽을 동서로 흐르며 교류에 일익을 담당해 온 다뉴브 강도 추위에 움츠러들었다. 다뉴브 강 윗쪽으로 눈속에 파묻힌 포도밭이 눈에 띈다.
정작 멜크 수도원은 바하우(Wachau) 일대를 여행하는 프로그램 중 맨 마지막 일정이었다. 바하우 계곡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푸른 다뉴브강을 언급해야 한다. 바하우는 다뉴브강이 빈에 도착하기 직전인 멜크에서 크렘스(Krems)까지의 35km 구간이다. 2850km 길이인 다뉴브 강의 극히 일부분이다. 백미로 꼽힌다. 2000년 유네스코가 ‘바하우 문화경관’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여행자로서는 오스트리아 9개주의 하나인 ‘하부 오스트리아’(Lower Austria)의 핵심이다.

지구촌을 강타한 한파 덕분에 다뉴브 강을 오르내리는 배는 손님을 태우지 않았다. 철도나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주 관광청의 도움으로 전용 버스를 탔다. 여행의 출발은 동쪽인 크렘스에서 시작했다. 동화 같은 마을을 2시간 동안 거닐었다. 오스트리아에서 흔치 않은 겨울 날씨라고 하더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이 오그라든다. 추위를 녹이기 위해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주문한다.

◇혼자 관람하기엔 무서울 정도로 긴 멜크 수도원 화랑
크렘스는 차라리 ‘작은 역사 도시’다. 인구 3만명이 안 된다. 화폐를 주조하던 12세기 무렵에는 빈처럼 큰 도시였다고 한다. 상상이 안 된다. 아담하기만 한 도시인데…. 바로크와 고딕풍의 교회가 눈에 띈다. 고풍스런 골목 주변을 메우고 있는 키 작은 파스텔톤의 건물들과 잘 어울린다. 좁은 골목과 작은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이 흐른다. 불현듯 서울의 북촌 일대가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삼청동과 가회동이 이랬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젊은이와 외국인이 삼청동 골목골목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크렘스도 그랬다. 이 소도시에 대학교까지 있다. 우리의 북촌에도 작은 대학 하나 있으면 어떨까. 아참, 있다. 삼청공원 감사원 근처의 북한대학원대학교. 정말 닮았다. 길 옆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파는 모양까지도 북촌과 비슷하다.

이런 흐름에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듯, 다뉴브강이 고요하기만 하다. 포도밭으로 유명한 바하우 계곡 주변 지역은 새하얀 눈이 점령했다. 한국의 다랑논 같은 계단식 포도밭이 여름과는 다른 빛깔과 모양을 만들어낸다. 여름의 청포도가 한없이 시원한 느낌을 준다면, 겨울의 포도밭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점심을 초대한 작은 호텔의 식당에서 그뤼너 펠틀리너를 권한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샤르도네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듣는 와인이다. 내친김에 와인을 제대로 경험해야겠다. 바하우의 대표적인 와이너리인 ‘바인 진’(Wein Sinn)을 찾았다. 와인 제조 공정을 둘러보고, 와인의 역사를 듣는다. 와인의 역사를 들으면서 와인은 단순히 ‘마실 거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와인은 농부들의 삶과 문화며, 땀과 노력의 결정이라는 게 체감된다.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와인이 온몸으로 스며들 즈음, 버스에 오른다. 길 양쪽에 눈이 쌓여 버스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강변을 따라 좁은 산책로와 언덕을 20분쯤 걸었다. 다뉴브 강변의 뒤른슈타인(Durnstein) 사원과 마을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뒤른슈타인은 제3차 십자군 전쟁 때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가 붙잡혀 유폐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멜크 수도원이다. 쌓인 눈 때문에 다뉴브 강 주변에서 조망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에서는 1300년대 이탈리아 수도원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지만 이곳 멜크 수도원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모티브를 제공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곳의 실제 모습이 소설의 권두에 수록된 평면도와 크게 다르다는 것은 별개다. 노란색과 흰색으로 채색된 삼각형 모양의 수도원 외벽이 겨울 눈에 더욱 낭만적이다. 음침하고 우울한 색감이 연상되는 소설 속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눈내린 겨울엔 멜크 수도원이 어스름 저녁 속으로 들어간다. 사방이 적막감에 빠져들 때도 멜크 수도원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역사를 알려준다.
결국 풍경과 함께 중요한 것은 느낌이다. 책 제목을 고민하다가 우연히 정한 게 뇌리에 각인됐다는 뒷이야기도 떠오른다. ‘수도원의 범죄사건’으로도 정해보고 ‘멜크의 아드소(책 속 화자)’로 했다가 마지막 순간 떠올라 정한 게 ‘장미의 이름’이었다.

멜크 수도원은 애초 바벤베르크(Babenberg) 왕조의 궁전이었다. 그러다가 11세기 후반 베네딕토 수도회의 수도원이 됐다. 그리고 1000년 가까이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수도원에 들어서니 196m의 회랑이 눈에 띈다. 명소답다. 강력한 종교의 권력이 느껴지는 중세시대의 모습과 시대상이 가득하다. 10개 가까운 방들이 죄다 그런 느낌을 준다. 합스부르크 가문과 이들이 들어오기 전 바벤부르크의 힘이 강렬했던 것을 웅변한다. 10만여권의 장서와 천장의 프레스코. 보물 창고의 매력이다. 1800권에 이르는 필사본도 있으니 고고학자에게는 낙원이다.

크렘스·멜크(오스트리아)=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