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발리 주지사가 이웃 나라를 부러워했다. 마데 망쿠 파스티카 발리 주지사는 2008년도에 2200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인 말레이시아에 대해 부러움을 표출했다.


파스티카 주지사의 부러움 표출은 31일 발리에서 열린 워크샵 ‘발리 관광 시장를 위한 테러리즘 방지 대책’을 논하는 자리를 통해 나왔다.


세계적 휴양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발 리가 올해 관광객 유치 목표로 설정한 숫자는 200만명. 세계적인 휴양지의 목표치고는 낮다. ‘신들의 섬’으로 불리는 발리는 독특한 사회 분위기와 문화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발리는 에메랄드빛 해변과 산, 호수, 강들이 제공하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지상 천국’으로까지 불린다.


파스티카 주지사는 이런 그는 이런 훌륭한 자산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발리는 이웃 나라인 말레이시아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 실적보다 훨씬 초라한 성적을 내고 있다고 고백했다. 파스카는 “말레이시아의 대규모 관광객 유치 성공은 안전성과 쾌적한 거주환경 등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발리 경찰서장을 지낸 파스티카 주지사는 인력, 교육, 보건 세 분야에 우선권을 두고 중점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외국인들의 입국이 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3년 안에 1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유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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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아시아와 자회사 에어아시아X가 2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항공센터(CAPA)의 ‘2009년 항공 엑셀런스 어워드’ 시상식에서 ‘올해의 항공사상’을 받았다. 올해 6회째인 CAPA 어워드에는는 아시아태평양과 중국지역의 항공사 및 공항의 최고경영자들이 참석했다.

CAPA는 1990년에 설립됐으며, 호주 시드니에 본사를 두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항공 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과 각종 국제회의 등을 주관하는 항공컨설팅 전문 업체다. 해마다 공항, 항공기관, 항공사 등 10개 분야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기업체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CAPA는 “에어아시아는 세계 각국 항공업체와 네트워크 강화와 지속적인 노력을 펼쳤다”며 “이에 따라 에어아시아는 세계 경제 불황 상황에서도 최고의 성과를 내 세계 최고의 저가항공사의 이름을 지켜 나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에어아시아와 에어아시아X는 각기 단거리와 중장거리 항공 영역을 담당하며 국제항공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왔다”고 설명했다.


에어아시아의 CEO인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은 시상식에 참석해 “이번 수상은 항공업계에서 우리의 비전과 개혁노력, 영향력, 전략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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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성 쌍둥이 같은 동남아의 두 나라.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 수십 년간의 현대사를 제외하고는 역사, 언어, 종족 등에서 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양국이 긴밀한 관계로 지역에서 보다 큰 역할을 하자는 제안이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에게서 나왔다. 나집 라작 총리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의 2기 집권을 축하하는 인사차 최근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나집 라작 총리는 29일 인도네시아 방송과 인터뷰에서 “두 나라가 협력한다면 경제와, 기후 변화, 재앙 방지, 지역 안보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지역에서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보다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양국 관계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인권 문제, 국경 문제 등 양국 관심 사안은 물론 테러리즘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질문에 나집 라작 총리는 비교적 솔직하게 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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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화장실에서 식모를 감금하고, 폭행해 숨지게 한 말레이시아 남성이 사형에 처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인도네시아 식모를 폭행 치사한 혐의로 이 남성을 고소했다.


숨진 인도네시아 여성은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 출신 마우픽 하니. 올해 36세였다. 병원 치료 1주일 만에 숨졌다. 그녀가 일한 곳은 도매상이었던 올해 36세의 남성 무루간. 무루간 부부는 경찰에 체포됐으나, 검찰은 남편에게만 살인죄 혐의를 뒀다.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30일 “조사 결과 피의자는 심한 학대행위를 저질렀고, 피해자의 신체에 많은 상처를 냈다”며 “우리는 피의자의 아내와 모친에게는 혐의를 두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유죄가 확증되면 피의자는 사형에 처해진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 대신 식모 생활을 시작한 인도네시아 여성의 신고로 알려지게 됐다. 신고 여성은 피의자의 화장실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을 인지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시체 발견 당시 주검의 많은 부분이 심하게 훼손됐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언론들은 피해자가 일상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노동력 수요 국가다. 노동자들은 주로 인도네시아 출신들이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이나 노동 환경이 열악하지만, 개선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인도네시아 식모들은 한 달 400링깃(약 14만원)의 월급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 때문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 5월 성적학대와 임금 체불 등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부터 이주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큰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일련의 식모 학대사건으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일시적으로 노동자들의 말레이시아 입국을 금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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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행객 위한 모든 프로그램 준비”

마시디 사바 관광청장

◇마시디 만준 사바 관광청장.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5시간 이내의 짧은 비행거리를 자랑하는 동남아 지역은 보르네오 섬밖에 없다. 마시디 만준 사바 관광청장은 “사바는 한국인에게 최고의 여행지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시디 청장은 “사바는 한국인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며 “단순 휴식을 취하려는 이들은 물론 골프와 해양스포츠, 산악마라톤, 등산, 정글 탐험을 즐기는 여행자를 위해 준비된 곳”이라고 자부했다.

사바주는 관광청 홈페이지에 국어인 말레이시아어를 비롯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와 함께 한국어 버전을 올려놓고 있다. 그만큼 한국 여행자의 편의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어느 나라 관광객보다 한국 여행자를 환영한다”며 한국과 인연을 소개했다.

“2002년 새로운 노선을 개발하려던 아시아나항공의 박찬법 회장이 이곳을 방문했어요. 그때 사바의 매력을 소개했지요. 박 회장이 애초 쿠알라룸푸르에서 코타키나발루로 새로운 노선을 변경할 정도로 이곳의 매력을 인정했어요. 그의 비즈니스 감각과 결단력을 보고 감탄했지요. 그와는 이제 둘도 없는 친구가 됐어요. 한국과 말레이시아도 둘도 없는 우방이 됐으면 좋겠어요.”

마시디 청장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말마다 묻어난다.

저는 한국이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을 이끌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것이라고 기대해요. 한국인을 만날 때마다 샘솟는 열정에 놀라곤 해요. 스포츠와 정보통신기술만 하더라도 미국과 유럽을 동시에 이기는 나라는 아마 한국이 유일할 거예요.”

마시디 청장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여행객들도 한국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입니다. 미합중국이 태동한 지는 오래됐고, 20세기에 갈등관계였던 유럽도 유럽합중국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어요. 동북아와 동남아도 서로의 문화를 좀 더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한국관광공사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최근 코타키나발루에서 한국 비보이와 한국의집 단원들이 공연을 펼쳤다”며 “코타키나발루가 한국 매력에 흠뻑 빠져든 듯한 느낌”이라고 밝혔다.

1년에 말레이시아를 찾는 한국인은 모두 30만명. 이 중 8만명 정도가 사바를 찾는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은 기업체가 직원에게 보상 차원의 ‘인센티브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한국암웨이만 하더라도 올 11월에 4000명이 넘는 직원을 사바로 보낸다.

코타키나발루=박종현 기자

동남아 최고봉… “정상 볼 수 있으면 한해가 평안”

해발 4095m 키나발루산
산 주변, 200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지정
세계에 분포하는 종자식물 절반이 이곳에 서식


바다와 휴양지, 동남아 여행의 일반적인 콘셉트이다. 그래서다. 동남아 최고봉인 키나발루산은 말레이시아 사바를 돋보이게 한다. 사바의 주도인 코타키나발루 자체가 키나발루산과 코타(도시)의 합성어다. 이곳 사람들이 키나발루산을 대하는 의미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키나발루산은 코타키나발루에서 80㎞ 떨어진 국립공원에 있다. 입산 지점까지 가기 위해서는 구불구불 산악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민첩한 운전사도 코타키나발루에서 동쪽을 향하는 운전에 족히 1시간30분을 필요로 한다.
◇전통 마을을 복원한 ‘마리마리 마을’은 말레이시아 사람들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자연 속에 자리한 집들에서 현지 분위기 물씬 풍기는 공연이 펼쳐진다.
구름을 뚫고 얼굴을 드러내는 다른 산처럼 키나발루산도 도도하다. 준비하지 않고 짧은 일정에 이곳을 찾는 이방인이 건네는 악수에 좀처럼 화답하지 않는다. 낮은 지대로 가득 찬 동남아에서 해발 4095m로 자신을 지켜본 산의 자존심일 것이다.

이곳은 보통 1박2일 일정으로 등정하게 된다. 등정에 앞서 예약을 해야 하는 것은 필수 과정이다. 예약은 1년 전부터 받는다. 입산객들은 공원본부에서 입산 신고를 마치고 비교적 평평한 지형인 4.5㎞를 걷는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곳은 해발 1866m 지점. 해발 1500m 정도를 더 올라 해발 3300m 산장에서 밤을 보낸다. 정상인 ‘로우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새벽 3시쯤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등정을 계속해야 한다.

◇동남아 최고봉 키나발루산에 비가 내린다. 짙은 구름 속에서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그 긴 모습을 드러낸다.
동남아 최고봉이기에 이곳에서도 이 산을 두고 숱한 어록이 전해진다. “코타키나발루 정상을 볼 수 있으면, 1년이 평안하다”거나 “다섯 차례 찾아서 한 번만 그 모습을 살펴볼 수 있어도, 선택받은 사람이다” 등이 전해진다.

이곳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면 기자는 아쉽게도 선택받지 못했다. 산을 향하던 날 구름을 잔뜩 머금은 최고봉이 먼 곳으로부터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았다. 산 중턱에서 밤을 보내고, 이틀에 걸쳐야 조금이나마 산을 경험할 수 있다는데, 과도한 욕심을 낸 것이리라. 정상에 등정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단련했던 산사나이들의 경험을 알고 있었기에 안타까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다른 여행자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해마다 20만명 가까운 여행자가 이곳을 방문하지만, 그중 10% 정도만이 정상 등정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90%는. 저지대에 마련된 온천과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정상을 등극하지 않고도, 키나발루산의 정취를 즐길 수 있어서다.

접근 방향을 틀었다. 산의 주변에서 문화를 접하고 느끼기로 했다. 산 주변의 마을에 가톨릭교회가 눈에 많이 띈다. 저지대에서는 이슬람과 불교의 세력이 강한 것과 비교된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해가 된다. 영국 등 서양세력이 들어왔을 때, 인구밀도가 높은 저지대 대신 저밀도의 산악지대에 대한 전도를 먼저 시작했다고 한다. 한때 우리의 사찰과 암자들이 산에 많이 지어졌던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코타키나발루 정상을 등정하지 못했다면 해발이 낮은 곳에서 캐노피를 즐겨도 좋다. 밧줄 다리가 흔들릴 때면 남 모를 스릴을 느낄 수 있다.
◇말레이시아 사바주 청사 건물은 원기둥이다. 멀리서 바라봐도 특색이 있어 눈길을 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지만, 숲 속의 빗줄기는 옷을 적시지 않는다. 잎들이 넓적한 열대림들이 ‘우산 구실’을 톡톡히 해주기 때문이다. 정상 등정에 나서지 못한 아쉬움을 ‘캐노피 워크’로 일부 만회해 본다. 나무와 나무를 연결해 놓은 ‘밧줄 다리’를 건너가 본다. 땅에서도 뚱뚱한 몸을 지탱하기 버거워 보이는 서양인들이 공중에서 한 발씩 내딛는 모습이 위험해 보인다. ‘안전한 모험’이 주는 나름의 스릴을 즐기려고 이들은 굳이 다리를 건넌다. 사진기가 있으면, 입장료 외에 5링깃을 더 내야 한다.

캐노피를 즐기다 20분 정도 내려오면 산록에는 포링 온천이 있다. 유황 온천으로 물은 50∼60도로 뜨겁다. 2∼3명이 들어갈 수 있는 실내 온천과 노천 온천이 즐비하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온천욕을 즐기는 것은 야외 온천이 주는 매력일 것이다.

키나발루산은 말레이시아 화폐인 1링깃 지폐의 배경 그림으로 등장할 만큼 이 나라의 자랑이기도 하다. 곤충을 잡아먹는 낭상엽과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인 라플레시아의 집단 서식지이기도 하다. 세계에 분포하는 각종 종자식물의 절반이 키나발루산 주변에 있다고 한다. 이 천연의 자연은 세계도 인정했다. 키나발루산 주변은 2000년 유네스코가 28번째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인천∼코타키나발루는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말레이시아항공이 정기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약 4시간30분.

코타키나발루=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때묻지 않은 원시의 자연 ‘생태계 천국’

>>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보르네오 섬에 있는 코타키나발루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도시다. 말레이시아 사바주 청사가 있는 도시로 동남아의 정취를 모두 갖추고 있다. 바다의 낭만이 있고, 열대의 산이 갖는 원시성이 있으며, 내륙에서 전해지는 전통 보존의 열망도 있다. 자연과 삶이 거칠지만 조화를 이룬 땅이다. 이곳은 태풍이나 홍수 등 재해를 입은 적이 없을 정도로 축복받은 땅이다. ‘바람 아래의 땅(The Land Below The Wind)’이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다.

◇바다에 인접한 코타키나발루의 모스크는 모든 갈등과 두려움을 포용한 듯하다. 모스크 앞을 가득 메운 물이 이를 상징한다.
코타키나발루는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말레이반도의 쿠알라룸푸르와도 비교된다. 도시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혼자 걸어보는 것. 혼자 걸어도 두려움이 없다면, 도시의 이미지는 일단 성공적이다. 1시간을 걸어보지만 매연이 별로 없다. 그러고 보니 동남아 여러 도시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오토바이가 없다. 이는 소음이 없고, 매연이 없는 이유다. 대신 맑은 공기와 푸른 녹음이 있다. 또 여유가 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조급함이 없다.

바닷가 근처 산악지대에서 불어온 시원한 바람 덕분인지, 열대 특유의 끈적끈적한 습기도 없다. 배회하던 숙소 주변을 벗어나, 시내로 방향을 튼다. 차를 이용해 시내를 돌아보니 사바주 청사 건물과 모스크 사원, 중국 불교 사원이 눈에 띈다. 원통의 주 청사는 멀리서 바라보아도 작품이다. 전쟁의 폭격에도 견딜 만하다는 관광청 직원의 설명은 사실일 것이다. 바닷가 근처의 모스크는 물의 정원이다. 모스크에 모인 이들에게 종교적 갈등은 없을 것이다. 앞에 바라다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듯, 세상을 넓고 투명하게 대할 터이니까. 언덕에 위치한 중국식 불교 사원은 동남아 각지에서 볼 수 있는 유형이다. 거대한 부처상은 방문객마저 주눅 들게 한다.

항구 도시이기에 바다를 접하는 것도 훌륭한 경험. 코타키나발루는 가히 해상의 천국이다. 툰쿠 압둘 라만 해상국립공원에서는 물고기를 잡을 수 없다. 사피, 마누칸, 마무틱, 수룩 등을 품은 바다는 해상공원으로 보존되고 있다. 산호와 백사장을 보존하기 위해 지정한 것이지만, 실은 물고기가 보호되고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이 보호된다. 물고기의 천국이 주는 혜택은 사람에게도 전해진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바다 생물의 삶을 상세하게 곁눈질해도 되기 때문이다.

◇해상공원은 물고기의 천국이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물고기를 보는 젊은 여성도 즐거워한다.
고속 유람선을 타고 30분 걸려 도착한 마누칸 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파란 빛깔의 바다가 에메랄드 빛으로 변하자, 여행자들이 흥분한다. 하지만, 이도 잠시. 유람선이 정박지로 이용되는 ‘나무로 만든 다리’에 가까이 가자, 바다 속 물고기들이 눈에 띈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물고기들이 물속을 배회한다. 마치 물속의 바위나 은폐물이나 되는 것처럼 사람은 무시된다. 다만, 여행객이 주는 빵 부스러기를 먹으려고 주변으로 몰려들 뿐이다. 산호와 물고기들이 펼치는 ‘수중무’에 여행자들은 야외 공연장의 관람객일 뿐이다.

이곳은 숫제 물고기의 해변이다. 여행객 중 한국인으로 보이는 20대 커플에게 말을 건다. “고기 많아요? 손에 잡히기도 하나요?” “너무 많아요. 재미있어 죽겠어요. 다리를 물어요.” 한국에서는 쉽게 건넬 수 없는 질문과 대답이다. 열대의 낭만 바다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풀어놓는다.

‘나무 다리’에는 코타키나발루로 나가는 배를 타려는 여행객과 물고기를 보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 백사장이 보인다. 말레이시아 사람과 일본인, 유럽인들이 서로 어울려 백사장을 수놓는다. 백사장 뒤편으로는 방금 바비큐 파티라도 열었는지 그릴이 가득하다. 백사장을 좀 더 벗어나니 목재로 지어진 20여채의 산장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열대의 낭만과 신혼여행의 기쁨을 느끼려는 이들이 산장의 즐거움을 만끽할 것이다.

◇코타키나발루 인근에 있는 마누칸 섬의 해변은 에메랄드 색감을 자랑한다. 햇빛에 잔뜩 그을린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바다를 거닐고 있다. 이들에게 바다는 근심과 걱정을 날려버리는 ‘넓은 놀이터’다.
시내도 좋고 바다도 좋지만, 이곳에서 전통을 제대로 접하지 못하면 섭섭하다. 사바관광청 직원은 전통을 되살려낸 ‘마리 마리(Marimari)’ 전통 마을을 추천한다. 숙소에서 차를 이용하자 25분도 안 돼 숲 속의 정원이 나타난다. 짙은 열대의 식물이 서로 파란 하늘을 보겠다고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곳에 마을이 나타난다. 정문에 도달하자 “문화적 다양성은 우리가 가진 문제라기보다는 우리의 자랑”이라고 직원이 웃음 가득 머금고 설명한다.

조성된 마을의 정문이라고 할 만한 곳을 통과하자, 사바 지역 부족들의 각기 다른 5종류의 주택들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전통을 되살린 주택에는 각 부족의 후손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물론 상주하는 이들은 아니다. 오전에 출근해서, 오후에 퇴근하는 게 이들의 일상이다.

이들의 조상은 어떻게 살았을까. ‘불의 발명’은 인류의 의식주 문화를 바꾼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한반도의 조상은 부싯돌을 갈아 불을 만들었다. 이곳 보르네오에 살았던 열대의 조상은 야자수 나무를 벗기고 그 껍질을 갈아 불을 만들었나 보다. 전통의 모습을 재현하는 21세기의 후손들이 제법 익숙한 솜씨로 불을 만들어내자, 현장을 찾은 서양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앤드루, 너 집에 가서 또 시험해보겠군, 난 안 봐도 안다.” 신기해하는 아들이 집으로 돌아가 모험심을 발휘할 것을 어머니는 눈치챘나보다.

즐거움은 아이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오전 일찍 마을을 찾은 여행자들은 점심 때 먹을 음식을 주문하고, 즐거워한다. 대나무 통에 쌀을 넣어두고 불을 지피면 2시간 뒤, ‘원시 자연의 특식’이 제공되리라. 마당을 오가는 열대의 닭들은 사람이 주는 먹이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서 야생의 음식을 잔뜩 챙겨 먹고 다니는 눈치다. 금세 사라졌다가 모습을 드러내는 게 이곳의 닭들이다.

사바 과거로의 여행은 한나절로는 부족하다.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고 소화하고 나면 사바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현지의 특성을 오롯이 간직한 문화를 사랑하는 유럽 여행자에게는 이곳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코타키나발루=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남해바다 품은 가을 산사 ‘호젓’

여수 금오산 향일암

가을 산이 여러 빛깔을 더해 간다. 바다는 여름의 치열함을 지나 겨울의 고요함을 준비하고 있다. 단풍에 대한 유혹도 만만치 않지만, 산과 바다를 동시에 접하고 싶은 마음에 남해안을 눈여겨보았다. 통영과 목포, 여수 등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엑스포로 남해안 시대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른 전남 여수가 먼저였다.

◇향일암의 풍경은 바다에 떠 있는 ‘자유의 소리’다.
향일암을 품은 금오산에 올랐다. 돌산대교를 이용해 돌산읍을 지나 40분쯤 차를 타면 이곳 초입과 마주한다. 돌산읍 율림리 임포마을. 금오산은 바다를 코앞에 두고 있어, 어느 산보다도 가파르다. 거북이 경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형상을 한 게 금오산(金鰲山)이다. 한문의 글자를 풀이하니 ‘쇠금’과 ‘큰바다거북’이다. 경북 구미의 금오산(金烏山)과는 한자 자체가 다르다. 거북에게서 거북선을 떠올리고, 이내 이순신 장군을 추모한다. 여수처럼 장군과 인연이 많은 땅이 또 있을까. 먼 곳에서 쳐다보면 이곳은 단애 절벽의 바위산이 웅크린 거북의 등처럼 보인다고 여수 사람들은 말한다.

산을 오르다 보니 일부러 새긴 것처럼 돌마다 얕게 파여 갈라진 ‘금’이 있다. 오랜 세월 지탱해 온 거북의 등 같다. 부모와 함께 산을 찾은 아이들도, 처음으로 금오산에 오른다는 대학생도 신기한 표정이다. 여수와 세계박람회의 내용을 보다 자세히 알기 위해 이곳을 찾은 만화가들도 이 모습을 스케치한다. 이들이 담아낼 금오산과 여수의 모습이 벌써 궁금해진다.

◇남해 바다에 우뚝 솟은 금오산에 오른 ‘젊음’이 즐거워 한다. 늘 생기를 불어넣는 바다와 산을 동시에 접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쉽게 생각하고 구두만 신고 온 양복 입은 신사의 모습이 안타깝다. 급경사에 잘못하면 미끄러질 것 같은 걱정에 다가가 손을 잡아준다. 가파른 계단과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40여분 오른다. 카메라와 가방만을 메고 산을 오르는 것도 힘이 드는데, 이곳에서 바닥을 다지고 철근 계단을 만든 이들의 고충은 얼마나 심했을까. 간혹 두 팔까지 빌려 ‘네 발’로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그들의 노고에 대해 한마디씩 말을 덧붙인다. “기적을 이루었네. 헬기도 뜨지 못할 곳에 어떻게 계단을 만들었을까.”

1m씩 해발 고도가 높아질수록 ‘나’의 시야도 넓어진다. 처음에는 돌산도의 최남단 임포마을이 눈에 들어오더니, 이내 여수 시내가 눈앞에 펼쳐진다. 드디어 323m 정상에 올랐다. 바다 한가운데 가파르게 떠 있는 금오산에서 마음껏 바다공기와 산의 공기를 마셔본다. 호사가 따로 없다.

산의 정상에서 남해를 바라보니 바다와 하늘의 색깔이 닮았다. 수평선을 구별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남해를 오가는 배들은 조각배처럼 작아보이고, 이곳 정상에서 쉬고 있는 ‘바다 등산객들’의 마음은 하늘처럼 넓어 보인다. 돌산도의 짙은 녹음은 가을을 알리기 시작하고, 해안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는 여름 바다의 낭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다. 바닷바람은 시원하고, 햇볕은 따뜻하니 그 계절을 짐작하기조차 힘들다.

정상의 시원한 바람을 뒤로하고, 금오산이 자랑하는 향일암을 찾는다. 대개 산을 오르면서 향일암을 찾게 되지만, 거꾸로 정상에서 향일암으로 내려가니 기분이 남다르다. ‘태양을 향한 암자’라는 향일암을 ‘바다와 태양을 품은 사찰’로 해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향일암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연말연시 이곳이 자주 추천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다. 향일암은 전국 4대 관음기도량 중의 하나다. 강화 보문암, 양양 낙산사 홍연암, 남해 보리암과 함께 전국 불자와 여행객들이 향일암에서 기복하는 마음은 더 간절했을 것이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해수 관음 도량으로 ‘원통암(圓通庵)’을 세운 때가 640년 전후라고 하니, 후세인들이 바다 근처 암자에서 1400년 가까이 염원을 빌어온 것이다.

금오산의 다른 곳처럼, 향일암 주변에는 바위가 많다. 향일암 경내에도 바위들이 만들어놓은 공간에서 ‘깨달음’을 얻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집채만한 바위들이 만나 만들어 낸 좁은 통로와 그 공간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나, 뚱뚱한 몸을 최대한 세워서 좁은 틈을 지나는 어른이나 이곳의 모습에 취한 듯하다.

대웅전 앞 난간에서 바다를 내려다본다. 금오산 정상에서처럼 굽어볼 정도는 아니지만, 남해를 오가는 배들은 여전히 작다. 저들에게 행운과 여유로움을 선사하소서.

여수=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남해안 시군 "여수 박람회 후광 효과를 노려라"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개최 성과를 나누려는 남해안 인근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적극적이다.

전남과 부산 경남, 전남 3개 광역 지자체는 여수를 축으로 동북아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지난 9월 밝혔다. 이들 3개 지자체는 남해안을 동북아의 해양관광과 물류·경제 중심지로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일명 ‘남해안권 발전종합계획’. 3개 지자체는 종합발전계획 최종안을 이미 정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획에는 남해안 시대를 주창하고 나선 경남도가 주도했다.

개별 시군을 중심으로 살펴봐도 모두 적극적이다. 전남 광양과 순천, 영남권의 부산, 남해, 하동 등 인근 시군이 눈에 띈다.

우선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유치에 성공한 순천시. 순천시는 여수세계박람회 개최에 따른 후광 효과를 노리겠다는 포석이다. 지역 여론의 일부 우려가 있으나, 정원박람회를 열어 생태도시로서 순천의 이미지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순천시는 지난 6월 정원박람회 유치 성공 직후부터 순천을 생태문화 수도로 가꾸겠다는 포부를 연이어 밝히고 있다. 순천만 갈대길, ‘읍성가는 길’ 등을 포함해 2014년까지 ‘남도 삼백리 길 탐방로’을 조성하겠다는 게 대표적이다. 자연과 역사 자원을 활용한 남도 삼백리 길 탐방로로 순천의 맛과 멋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여수와 통합 논의에 따른 여진이 여전한 광양은 2012년 광양~묘도~여수와 거제 마산을 잇는 이순신대교가 개통되면 그에 따른 수혜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전주~광양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광양만권을 포괄하는 지역으로 입지를 다지겠다는 구상이다. 바다의 광양만권과 육지의 여러 도로로 인접 시도와 접근성이 강화되면 효과가 클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바다로 여수의 건너편인 영남권 지자체도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남해와 하동군이 대표적이다. 두 지자체는 여수와 남해를 잇는 한려대교 이용객을 적극 유치하겠다는 복안이다. 또한, 여수까지 가는 연안 여객선을 유치해 관광객을 유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크루즈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할 계획이다. 사천과 통영시도 여객선 정박시설을 마련해, 여수~사천~통영~부산 항로를 적극 개발한다는 공감대를 확인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은 대규모 숙박시설이 부족해, 숙박 문제가 난제로 등장하고 있다.

부산은 여수 공항이 협소한 점을 고려해, 항공기나 선박을 이용하는 외국인 입국자 유치에 적극 뛰어들 구상이다. 김해공항과 부산항 국제여객선터미널을 통해 들어오는 일본인 입국자들이 아무래도 다른 지역에 비해 편의시설이 많은 부산에서 체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호남 없인 나라도 없다”는 충무공과 여수의 인연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이제 20일 뒤다. 1968년부터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을 지켜온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외로움을 벗어나게 된다. 10월 9일 광화문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선다. 당장 수도 서울에서부터 성군 세종대왕과 성웅 이순신 장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더 커질 것이다.

물론 두 영웅에 대한 후세의 존경과 사랑의 마음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대왕과 장군이 조선 팔도에 남긴 추억꺼리도 다양하다. 주로 한양에 머물며 선정을 펼쳤던 세종대왕에 비해, 충무공과 각 지역의 인연은 남다르다. 그래서인지 충무공과 관련된 축제와 인연을 강조하는 고장도 많다. 충무공이 태어난 서울을 비롯해, 외가이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산, 한산대첩과 명랑대첩의 배경인 통영과 진도 등 전국에 걸쳐 폭넓게 분포한다.

충무공과 인연을 어느 지역보다 강조할 만한 고장이 2012년 엑스포가 열리는 전남 여수다. 충무공은 1591년 2월 13일 전라좌수사로 임명돼서 임진왜란 와중인 1593년 7월 14일까지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에서 거주했다. 수영이 한산도로 옮겨진 뒤에도 이곳과 인연을 맺었으니, 충무공은 약 8년 동안 전라좌수영과 함께했다고 할 수 있다. 왜의 침략에 대비해 1479년에 설치돼 1895년까지 존속된 전라좌수영과 여수 수군사령부는 417년 동안 300명 이상의 사령관과 인연을 맺었다. 이들 중 충무공은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었다면 곧바로 나라도 없어졌을 것이다’는 뜻이다. 조선 실학자 유득공이 1795년 편찬한 이순신 문집 ‘이충무공전서’에 들어 있는 글이다. 충무공이 이 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여수를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전라좌수영의 장교와 병사들은 대부분 인근 지역에서 어업을 생계로 이어온 이들이었다. 그래서 충무공은 호남을 중심으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충무공을 따르던 조선 해군과 호남 민중이 지킨 여수 등 남해 앞바다는 ‘승전의 기운’이 넘치던 곳이었다. 이를 통해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킬 수 있었고, 왜군이 남해와 서해 바다를 건너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었다.

충무공은 이곳에서 거북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손수 제작과 싸움을 진두지휘한 거북선 전투로 연전연승의 기록을 이어갈 수 있었다. 거북선이 있어서 가능한 기록이고,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거북선이 머물며 숨을 고르던 ‘승리의 시발점’이 여수였다. 전라좌수영 여수에 머물던 충무공과 그의 해군들은 경상우수영과 경상좌수영까지 진출해 왜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여수에서 조선 해군의 사기와 힘이 ‘충전’됐고, 여수에서 왜군의 두려움이 시작했다. 400년이 지난 뒤에도 여수가 충무공과 인연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또한, 다른 어느 지역에 비해 ‘충무공 마케팅’이 타당성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라좌수영의 객사였던 여수 진남관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전남 여수시가 8월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를 관광코스로 개발해 시범 운영했다. 일정은 모두 3종류였다. 가장 긴 것은 1박2일이었으며, 하루, 한나절 코스도 마련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관광객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뒤늦게라도 여수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충무공의 뜻을 기릴 수 있어서 좋았다는 평이 우선 눈에 띈다. 급조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평가 또한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여수와 충무공의 끈과 인연’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타당하다.

여수는 꽤 오랫동안 충무공을 기억하고 자랑해 왔다. 전라좌수영의 객사인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이 충무공의 사당인 충민사(사적 제381호), 거북선을 건조한 것으로 알려진 선소,  흥국사, 충무공의 공훈을 기리는 타루비(墮淚碑보물 제 1288호), 충무공의 어머니가 난을 피해 잠시 머물던 이충무공자당기거지, 충무공의 지휘를 받으며 호국불교의 전통을 이은 승병들이 훈련을 받은 흥국사 등 충무공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먼저, 충민사. 충무공을 기려 세운 사당이다. 전쟁 직후인 1601년에 세웠으니 벌써 400년이 넘었다. 선조가 직접 이름을 내린 사액서원으로, 충무공을 기린 최초의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아산의 현충사보다는 103년, 통영의 충렬사보다는 62년 앞섰다. 충무공과 같은 시간을 보냈던 여수 사람들의 애정이 드러난 사당으로 볼 수 있다. 충민사 앞에는 궁궐과 왕릉 앞에 주로 서 있는 하마비(말에서 내리라는 표지석)가 있다. 충무공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됐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충민사는 대원군의 서원철폐령과 일제의 철거로 잠시 모습을 잃었으나, 광복 이후 복원됐다.

충무공이 숨을 거둔지 6년 후인 1603년 휘하 군사들이 장군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타루비에는 애통함이 묻어난다. 비문은 ‘영하수졸위통제사 이공순신입단갈명왈타루 개취양양인사양우이망기비즉루필타자야 만역삼십일년추립(營下水卒爲統制使 李公舜臣立短碣名曰墮淚 蓋取襄陽人思洋祐而望其碑則淚必墮者也 萬歷三十一年秋立)’이라고 적혀 있다. ‘영하의 수졸들이 통제사 이순신을 위하여 짤막한 비를 세우니 이름은 타루이다. 중국의 양양 사람들은 양호를 생각하면서 그 비를 바라다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린다는 고사에서 인용한 것이다. 1603년 가을에 세우다’는 내용이다.

조그마한 어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해양도시로 성장한 여수가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군사도시로 이름을 알렸다. 전라좌수영을 중심으로 외침을 극복하고, 승리의 계기를 마련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충무공과 생업에 종사한 토착민들이 있었다. 역사는 이를 인정했는지 2012년 이곳에서 세계박람회를 열어 그 뜻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릴 수 있게 됐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