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트라이데 거리 예쁜 그림 간판들 눈길
모차르트가 외롭고 힘들 때마다 찾은 곳
왜 그럴까. 모나지 않은 점도 좋지만, 글자보다는 그림으로 간판이 만들어진 게 재미있다. 그림으로 만든 간판이라. 오래전 글을 못 읽는 이들을 위해 상징성 강한 그림 간판으로 내건 게 계기가 됐다. 상인들의 프로의식이 이만 하면 어느 군주의 애민정신에도 뒤지지 않는다.
이왕 들어섰으니, 가게의 간판을 쳐다본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주전자 모양의 간판은 무엇을 나타낼까. 이방인 처지에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데 그림을 보고 상상한 그대로다. 주전자와 음료를 파는 가게다. 그렇다면, 가위 모양의 간판은.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 본다. 옷 수선 가게다. 그 옛날 이곳에 들어선 글을 못 읽은 사람은 한없이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당시의 예술가처럼 오늘날의 여행자는 이 거리에서 예술적 의미를 찾아본다. 생활 속에서 구현되는 디자인 예술이 따로 없다. 물론 이곳에는 서민들의 삶도 스며들었을 것이다. 정원의 거리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올 때마다 싫증이 안 난다는 게 이 거리의 장점이다. 수백 년 지난 가게의 간판만 수백 개가 넘지 싶다. 그래도 주의할 게 있다고 한다. 가게의 일부 후예들이 약간은 질 떨어지는 물품을 판매하는 일도 있다는 게 오래된 여행자들의 조언이다.
간판 구경을 마무리할 때쯤 잘츠부르크의 상징인 모차르트의 생가를 접했다. 그의 원래 이름은 테오필루스 모차르트. 그러다가 ‘신의 총아’라는 뜻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로 이름을 바꾼다. 14세 때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여행은 이처럼 한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을 온전히 바꿀 수 있다.
모차르트 생가는 4층짜리 노란색 건물이다. 그가 태어난 때는 1756년 1월 27일. 25세까지 잘츠부르크에 머물렀던 그가 생가에서는 17년을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1917년 국제 모차르테움 협회가 그의 생가를 인수하면서 생가의 기능이 바뀐 것. 1층에서부터 4층까지 곳곳에 그와 가족이 사용한 듯한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의 유물이 보인다. 거장의 체취는 이렇게 후대에 전해진다.
기념관에서는 각종 연주회도 열린다. 그중 7월과 8월의 토요일 밤에 들려주는 ‘더 베스트 오브 모차르트’ 콘서트가 인기 최고라고 한다. 촛불을 켜 놓은 채 듣는 모차르트 음악은 어떤 선율일까. 눈 내리는 겨울의 선율과는 다를 것이다. 오스트리아와 잘츠부르크가 문화 산업의 핵심과 출발지로 삼을 만한 곳이다.
오스트리아의 공적인 기관만 그런 게 아니다. 모차르트 음악의 공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바로 모차르트 효과(모차르트 이펙트)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아이들이 영특해지고, 수리과학 실력이 좋아진다는 믿음 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의 연구이다 보니, 신뢰도도 높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고독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선율을 남긴 것과는 별개로. 그 고독에 생전의 모차르트는 잘자흐 강의 흐르는 물길 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봤다고 한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그가 찾은 곳이 게트라이데 거리였고, 잘자흐 강이었던 셈이다. 35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온 힘을 다해 대작을 만든 과정은 고독에 뿌리를 둔 것인지도 모른다. 그를 느끼고 온 뒤에 듣는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바니’의 선율이 이전과는 다르다.
잘츠부르크=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모차르트가 외롭고 힘들 때마다 찾은 곳
잘츠부르크에서 도보 여행자의 발길을 잡는 곳이 게트라이데 거리다. 여행자가 방송국 카메라 기자라면, 이 거리에서 꽤 오랫동안 서성거릴 듯하다. 카페와 음식점, 기념품점 등이 거리의 양쪽을 가득 채웠다. 어느 가게 하나 모나지 않고 아기자기하다. 이곳에서는 눈이 피로하지 않다. 풍경을 보듯 눈이 호사를 누린다. 좁은 골목 사이로 보이는 예쁜 간판은 이곳 걷기 여행의 백미다. 네온사인에 휩싸인 다른 도시의 휘황찬란한 간판과 달리, 소박한 미를 간직하는 이곳이 한없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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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차르트 생가.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 잘차흐 강과 게트라이데 거리에서 가까운 이곳에서 살았다. |
이왕 들어섰으니, 가게의 간판을 쳐다본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주전자 모양의 간판은 무엇을 나타낼까. 이방인 처지에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데 그림을 보고 상상한 그대로다. 주전자와 음료를 파는 가게다. 그렇다면, 가위 모양의 간판은.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 본다. 옷 수선 가게다. 그 옛날 이곳에 들어선 글을 못 읽은 사람은 한없이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당시의 예술가처럼 오늘날의 여행자는 이 거리에서 예술적 의미를 찾아본다. 생활 속에서 구현되는 디자인 예술이 따로 없다. 물론 이곳에는 서민들의 삶도 스며들었을 것이다. 정원의 거리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올 때마다 싫증이 안 난다는 게 이 거리의 장점이다. 수백 년 지난 가게의 간판만 수백 개가 넘지 싶다. 그래도 주의할 게 있다고 한다. 가게의 일부 후예들이 약간은 질 떨어지는 물품을 판매하는 일도 있다는 게 오래된 여행자들의 조언이다.
간판 구경을 마무리할 때쯤 잘츠부르크의 상징인 모차르트의 생가를 접했다. 그의 원래 이름은 테오필루스 모차르트. 그러다가 ‘신의 총아’라는 뜻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로 이름을 바꾼다. 14세 때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여행은 이처럼 한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을 온전히 바꿀 수 있다.
모차르트 생가는 4층짜리 노란색 건물이다. 그가 태어난 때는 1756년 1월 27일. 25세까지 잘츠부르크에 머물렀던 그가 생가에서는 17년을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1917년 국제 모차르테움 협회가 그의 생가를 인수하면서 생가의 기능이 바뀐 것. 1층에서부터 4층까지 곳곳에 그와 가족이 사용한 듯한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의 유물이 보인다. 거장의 체취는 이렇게 후대에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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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으로 내건 간판이 아름다운 잘츠부르크의 게트라이데 거리. 아기자기한 간판들이라 자주 쳐다봐도 눈이 피곤하지 않다. |
오스트리아의 공적인 기관만 그런 게 아니다. 모차르트 음악의 공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바로 모차르트 효과(모차르트 이펙트)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아이들이 영특해지고, 수리과학 실력이 좋아진다는 믿음 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의 연구이다 보니, 신뢰도도 높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고독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선율을 남긴 것과는 별개로. 그 고독에 생전의 모차르트는 잘자흐 강의 흐르는 물길 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봤다고 한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그가 찾은 곳이 게트라이데 거리였고, 잘자흐 강이었던 셈이다. 35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온 힘을 다해 대작을 만든 과정은 고독에 뿌리를 둔 것인지도 모른다. 그를 느끼고 온 뒤에 듣는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바니’의 선율이 이전과는 다르다.
잘츠부르크=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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